정부가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시를 대비한 비상계획 ‘충무3300’과 ‘충무9000’을 마련했다는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통일부가 6일 “국가안보에 관련한 사항을 무책임하게 보도했다”며 6개월 취재거부 결정을 내리는 한편 형사고발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 출입기자단도 이날 중앙일보가 결과적으로 신의를 져버렸다며 3개월 동안 기사송고실 출입금지 결정을 내렸다.

중앙일보측은 이에 대해 “통일부의 일방적인 비보도 요청에 대해 독자와 언론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보도한 것으로, 통일부와 기자단의 결정은 지나치다”며 반발하고 있다.

   
▲ 중앙일보 5일자 1면
중앙일보는 지난 5일자 <북한 급변사태 대비 정부의 비상계획은…‘충무 3300’ ‘충무 9000’>이라는 1면 머릿기사에서 “유사시 북한으로부터 대량 난민이 밀려올 경우 이를 수용하는 방안을 담은 계획이 충무 3300이며 충무 9000은 김정일 위원장 체제가 무너질 경우 북한 지역을 비상통치하기 위한 계획”이라며 “(충무 9000의 경우) 북한 체제의 완전 붕괴시 우리는 북한 내 비상통치기구인 ‘자유화행정본부’를 설치해 본부장을 통일부 장관이 맡으며 총독 이상의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충무 9000)”라고 보도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충무 3300에 대해 “완전 체제붕괴에 앞서 나타날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총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탈북자 시설을 경기도 화성을 비롯한 각 시·도 지역의 공공건물 위주로 이미 지정했다”고 보도했다.

통일부 "무책임한 보도로 국가안보에 부정적 영향"

중앙일보의 이 같은 보도는 4일 통일부 국정감사장에서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충무계획을 질의하고 이를 정 장관이 시인한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국감장에서는 통일부측의 요청으로 충무계획 관련 속기록이 삭제됐고, 이후 통일부 공보관실에서는 충무계획이 국가기밀이며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언론이 비보도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중앙일보 이외 다른 매체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보도가 나온 뒤 통일부는 5일 저녁 대변인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중앙일보 보도내용은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며 △중앙일보와 해당 기자(이영종 기자·통일부 출입)에 대해 6개월간 취재를 거부하고 △국가안보 사안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파장을 우려,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대변인은 이어 “국가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공보관실 관계자는 6일 오전 “국감장에서 충무계획에 대한 발언이 나온 뒤 곧바로 수차례 이메일과 보도자료, 문자메시지를 통해 보도자제를 요청했고, 정문헌 의원측도 비보도 요청을 했는데도 중앙일보가 보도를 했기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라며 “이번 결정에 따라 앞으로 6개월 간 중앙일보는 통일부가 주재하는 브리핑, 공개발표 및 설명, 각종 회담장에 일체 출입할 수 없고, 통일부는 개별 취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기자단 “중앙일보 신의 저버려…형사고발은 과도”  

한편 통일부 출입기자단도 6일 오전 기자단 회의를 갖고 “현장에서의 비보도 요청에 중앙일보가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이를 보도한 점은 문제가 있다”는 데 뜻을 모으고 중앙일보에 대해 기사송고실 3개월 출입정지 결정을 내렸다.

기자단은 그러나 통일부의 형사고발 방침에 대해서는 기자의 기사작성을 원천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보고, 형사고발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날 오후 정동영 장관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기자단 간사 역할을 맡고 있는 연합뉴스 장용훈 기자는 “(중앙일보 출입정지 결정은) 결과적으로 통일부 요청을 수용키로 한 기자단의 신의를 져버린 만큼 내린 결정”이라면서도 “통일부 내에서 형사고발 언급까지 거론되고 있는 것은 기자들의 취재와 기사작성에 큰 제약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날 오후 정동영 장관을 만나 이 같은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사를 작성했던 중앙일보 이영종 기자는 통일부와 기자단의 징계는 지나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 기자는 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공개된 국감장에서 의원의 질의에 장관이 시인했고, 기자단이 자체 회의를 열어 합의한 것도 아니다. 국회 속기록을 삭제하고 통일부가 비보도 요청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쓰지 말아야 하느냐”며 “이 사안 보도가 국가안보에 명백하게 위해를 가한다고 보기보다는, 독자와 언론의 알권리라는 측면과 공개해도 무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보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 기자 “보도 가치 있다고 판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기자는 “정부가 이 문제를 민감하다고 생각했으면 애초부터 비공개 회의를 요청했어야 했다”며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느냐. 그러면 탈북자 문제도 전혀 쓰지 말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기자단의 입장은 다소 다르다. 연합뉴스 장용훈 기자는 “우리가 통일부 요구를 수용한 이유는 어느 나라든지 유사시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고, ‘통일부가 총독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내용이 자칫 북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며 “특히 남북장관급 회담시 남측 수석대표로 참가하는 정동영 장관이 유사시 ‘총독’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북한측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장 기자는 “이같은 대책이나 계획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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