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체제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8일 출범했다. 이례적으로 공영방송과 포털을 향한 강한 압박성 발언을 내놓은 가운데 KBS 대외방송 예산 전액 삭감안을 내는 등 대대적인 방송예산 삭감안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법제화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방통위 차원을 넘어선 정부의 일관된 기조가 보인다.

공영방송 ‘이사 교체’ 다음은 ‘예산’ 옥죄기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지난 28일 취임사를 통해 “그동안의 공영방송 개혁 노력이 단순한 리모델링 수준에 그쳐왔다면 이번 6기 방송통신위원회는 공영방송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을 선도하겠다”며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공영방송이 국민의 선택과 심판이라는 견제 속에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역대 방통위원장 취임사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정 언론을 향한 강한 압박성 발언이다.

이동관 위원장 체제의 공영방송 압박은 ‘인사교체’, ‘재허가 심사’, ‘민영화 추진’ 등 측면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는데 29일 방통위 등 부처가 내놓은 예산안을 보면 전례 없는 대대적인 예산삭감까지 추진하고 있다.

▲ 28일 오전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과천정부청사에서 6기 방통위 출범 직후 첫 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 28일 오전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과천정부청사에서 6기 방통위 출범 직후 첫 회의를 열었다. ⓒ연합뉴스

미디어오늘 확인 결과 2023년만 해도 KBS의 대외방송 송출 예산이 60억 원, 제작지원 예산이 63억 원 편성됐으나 2024년 예산안에는 전액 삭감됐다. 대외방송은 KBS가 국외에 송출하는 방송으로 방통위가 방송법에 따라 2006년 지원을 시작한 이래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건 처음이다. 

방통위는 EBS 프로그램 제작지원 예산을 전년 대비 39억 원 삭감한 315억 원을 편성했다. 전년 확정예산 대비 삭감 규모로는 역대 최고치다. 2018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EBS 프로그램이 편향됐다며 예산 삭감을 주장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EBS는 다큐멘터리에 대한 지나친 예산투입을 지양하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

방통위는 공동체라디오 활성화 지원 명목의 예산을 연 2억 원 규모로 편성해왔는데, 2024년에는 전액 삭감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가 허가한 공동체라디오사업자 수가 크게 늘어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예산 자체를 없앴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가 마을미디어 지원을 중단한 것과 맞물려 대안 미디어에 전반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방통위 소관이 아닌 다른 방송 예산도 대거 삭감이 추진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YTN사이언스에 연간 40억 원대 예산을 지급하고 있는데, 돌연 ‘전면 재검토’를 하겠다고 밝혀 예산 편성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해당 예산은 공모사업을 통해 지원됐고 내년까지 공모 기간이기에 급작스러운 재검토에 YTN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외교부가 재외동포청을 통해 YTN 글로벌센터에 지원해온 예산도 전액 삭감안이 제출됐다.

KBS 관계자는 “대외방송은 법에 따라 지원 근거가 명시돼 지원된 예산”이라며 “매년 삭감돼 지금도 빠듯했는데, 갑자기 ‘0원’이 최종안이라는 통보가 왔다. 연 100억 원대 예산이 지원된 사업인데 이렇게 될 거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에서 편성한 예산으로 정확한 사유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방송사와 방통위 등에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 위주로 조정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동관 방통위원장 등이 언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드러낸 상황에서 전례없는 대대적인 삭감이라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포털규제 협의체 재출범, 돌연 늘어난 팩트체크예산

이동관 위원장 취임에 따라 이른바 ‘온라인 뉴스환경’을 바꾸려는 시도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동관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공영방송’ 다음으로 ‘포털’을 성토했다. 그는 “포털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부여하겠다”며 “포털과 SNS 등에서 유통되는 가짜뉴스와 이로 인한 선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위협 요소”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익한 정보의 유통은 장려하되 가짜뉴스의 생산 및 유포는 엄단하겠다”며 “포털에 의한 뉴스 등 독과점 횡포를 막겠다”고 했다. 

현재 정부여당 차원에서 추진 중이거나 필요성이 언급된 포털 규제 논의는 ‘알고리즘 감시·감독’, ‘뉴스제휴심사 방식 및 제휴평가위 개편’, ‘아웃링크 등 뉴스 서비스 방식 변경’ 등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위원장이 교체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차원의 통신심의를 통해 ‘가짜뉴스’ 심의를 강화하고, 보수단체를 지원해 정부에 우호적 온라인 환경 형성을 위한 논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최근 방통위는 기존 논의 결과를 번복하면서 ‘포털 뉴스 신뢰성·투명성 2기 협의체’를 가동해 포털 규제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해 방통위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이행 차원에서 전문가 협의체를 마련해 △아웃링크 등 포털 제휴 및 뉴스 서비스 방식 △알고리즘 검증 기구 마련 등에 관해 논의했지만 ‘권고’ 기능 이상을 갖춘 규제는 과도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자 방통위는 최근 다른 전문가들로 협의체를 다시 꾸려 재논의에 나선 것이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김성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디어언론위원회 국장(변호사)은 “법제화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 권고 기능을 갖춘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정도로 운영은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포털의 제휴언론) 계약 관계에 관여할 수 있는 수준이 되고, 정치권쪽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이 (특정 언론을) 넣어라, 빼라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위헌적인 소지가 크다”고 했다.

포털을 향한 압박 결과 뉴스 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정치권의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 압박 이후 제휴평가위 운영이 잠정 중단됐다. 양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 ‘사람에 의한 뉴스편집’ 등은 정치권의 문제 제기 이후 폐지됐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정부에 비판적 글이 다수 올라온 다음 아고라 서비스가 압박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보수성향 단체의 ‘가짜뉴스 대응’을 지원하는 흐름도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는 공익사업 지원의 일환으로 보수언론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의 ‘공영방송 가짜뉴스 팩트체크 사업’에 3100만 원을 지원했다. 최근 보수성향 단체 자유언론국민연합이 개최하는 ‘2023 상반기 10대 가짜뉴스 시상식&기념토론회’에 한국언론진흥재단이 3000만 원을 지원했다. 

▲ 윤석열 정부 허위정보 및 뉴스 대응 논의 종합. 디자인=안혜나 기자
▲ 윤석열 정부 허위정보 및 뉴스 대응 논의 종합. 디자인=안혜나 기자

2024년도 방통위 예산안을 보면 한상혁 방통위원장 재임 당시 국민의힘의 압박으로 예산이 대거 삭감돼 사업이 폐지된 방통위 ‘팩트체크 사업’(인터넷환경의 신뢰도기반 조성) 예산이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다시 늘었다. 예산 규모는 10억 원이다. 방통위는 “온라인을 타고 확산돼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 기반을 마련을 위해 팩트체크 사업 신뢰성·실효성 제고, 대상별 맞춤형 교육 관련 예산”이라고 설명했다. 방통위는 관련 예산의 구체적 사업 주체 등은 정하지 않았는데, 향후 사업 주체와 운영 방식 등을 놓고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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