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열린 간담회에 어린이 활동가들이 참석해 발언하자 정치인들이 어린이를 선동했다는 주장과 어린이를 폄하했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어린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점이란 비판이다. 이 소식을 전하는 언론에선 ‘어린이 활동가’ 대신 어린 여성을 지칭해오다 최근 지양하는 표현인 ‘~양’으로 표기했다.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청소년·양육자 간담회’에 초등학생인 김한나 활동가는 “어린이가 무얼 아냐고 하지 말라”며 “저는 활동가이고 제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운을 뗀 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의견을 말했다. 그 외에도 어린이·청소년·양육자들이 발언했다. 

이날 국회 간담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은당 우원식 의원(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저지 총괄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 대표는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관련해서 실질적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미래세대 활동가 여러분, 양육자 활동가분들의 말씀 잘 들었다”며 “당장 시급하며 장기적으로 미래 세대에 크게 피해를 끼칠 게 분명한 핵 오염수 배출 문제에 총력 단결해 대책을 강구하고 저지할 때”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에서 비판 논평이 나왔다. 황규환 국민의힘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재명 대표가 휴가 기간 궁리한 것이 고작 그렇게나 위한다던 ‘미래세대’를 정쟁과 선전·선동에 앞세우는 것이었나”라며 “이재명 대표가 7명의 어린이를 비롯한 활동가들을 초청해 ‘오염수 해양 투기 저지 간담회’를 개최했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토론회인지, 자리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무엇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이 정쟁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서 나온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다. 

황 수석부대변인은 “고작 6살밖에 안 된 아이에게 활동가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모자라,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밝힌 아이의 입에서는 ‘핵 발전소보다 더 무서운 말을 써야 한다’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제일 싫은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상상했다는 것이다’라는 민주당 정치인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이 쏟아졌다”고도 했다.

▲9일 조선일보 기사
▲9일 조선일보 기사
▲ 9일 중앙일보 기사
▲ 9일 중앙일보 기사

이를 두고 김한나 활동가의 양육자인 남궁수진 활동가는 황 수석부대변인에게 SNS 메시지로 “김한나 활동가는 그동안 탈석탄법, 노키즈존 등에서 적극 자기 목소리를 내온 활동가인데 어린이 활동가의 활동을 제대로 알아보기는커녕 일곱 살이라고 폄훼했다”며 “한국은 UN아동권리협약에 가입됐는데 (협약에서) 아동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고 보냈다. 

이어 남궁 활동가는 “간단한 검색으로 알 수 있는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성명을 낸 황 수석부대변인은 성명의 내용을 재검토하고 김한나 활동가를 비롯한 모든 어린이 활동가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에게 아동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진심으로 사죄하라”라고 했다. 

언론이나 민주당 정치인들이 ‘활동가’라고 부른 이유는 어린이 당사자들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에는 조선일보(조선NS)에서 <8살 어린이를 “활동가” 소개... 대통령 성토케 한 野 ‘오염수 간담회’>란 기사가 보도됐는데 남궁 활동가는 해당 기자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기사 틀은 유지한 채 남궁 활동가의 입장 일부가 기사에 추가됐고, 황 수석대변인에게 답을 받지 못했다. 

이날 민주당에서도 국민의힘 비판 입장을 냈다. 안귀령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어린이들을 폄하한 것에 대해 즉각 사과하십시오>란 논평에서 스웨덴 출신 그레타 툰베리는 15세부터 활동가로서 기후위기에 경각심을 울리고, 캐나다 출신 활동가 세 번 스즈키는 12세에 1992년 지구정상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한 사례를 거론하며 “세계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어린이 활동가들을 조롱하지 않았고 어린 나이에 정치에 관심을 둔다고 매도하지도 않았다”며 “어린이들도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황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내가 작성한) 논평에서 아이들이 의견을 말하는 것을 안 된다고 한 적이 없다”며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럴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정치 영역에 그 아이들을 세우고 이용한 민주당에 대해 비판한 것”이라고 했다. 

▲ 9일 한국경제 사설
▲ 9일 한국경제 사설
▲ 9일 매일경제 기사
▲ 9일 매일경제 기사

다음날인 9일 다수 신문에서 국민의힘 논평에서 시작한 이 사안을 다뤘다. 상당수 언론에서 민주당이 어린이를 선동했다는 관점으로 이 사안을 다루면서 미성년자 차별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최근 지양하는 ‘~양’을 사용하기도 했다. ‘~양’, ‘~군’은 미성년자에게만 붙이며 굳이 성별을 구분한다는 점에서 어린이·청소년 단체들이 쓰지 말아달라고 주장해 온 표현이다. 

한경닷컴은 <'오염수 간담회'에 어린이들 출동…與 "이재명의 아동학대">란 기사에서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6세에서 10세밖에 안 되는 어린이들을 정치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이재명 의원의 행위는 인권침해이자 아동학대 행위에 다름 아니다”란 부분을 인용하며 “초등학교 2학년 김한나 양”으로 표현했다. 그 외에도 동아일보는 ‘김모양’, 조선일보는 ‘초등학교 2학년 A양’, 매일경제·디지털타임즈·경기신문 등은 ‘김한나 양’으로 썼다. 

어린이가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는 시각의 사설도 나왔다. 한국경제는 사설 <오염수 괴담 정치에 아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이재명>에서 “지식과 판단력이 아직 충분치 않은 학생들”, “누가 봐도 ‘양육자’라는 생경한 직함을 달고 행사에 함께 참여한 어른들이 주입한 견해를 읊은 데 불과하다” 등으로 평가했다. 

국회 간담회를 민주당과 함께 주최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9일 논평을 내고 “왜 그 누구도 어린이 활동가들의 자발성은 전제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어린이 활동가들의 정치적 견해를 무시하고 어린이를 수동적·비자발적 존재로 폄훼하기 이전에,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는 무엇인지 자신의 취재방식이 수동적이고 비자발적이진 않은지 자성하기를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양’이란 호칭에 대해 정치하는 엄마들은 “사전상 의존명사 양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의 성이나 이름 뒤에 쓰여, 그 여자를 친근하게 또는 대접하여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로 성(姓) 뒤에 쓰일 때는 그 대상을 낮잡은 느낌을 준다’라고 돼 있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라”라며 “군은 한자로 임금 군(君) 자를 쓰며, 양은 아가씨 양(孃) 자를 쓰는데 이는 여자 녀(女) 자와 도울 양(襄) 자로 만들어진 한자로서 성차별적 용어”라고 지적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해당 단체 정관 중 “어린이들에게 정치를 가르치지 말라는 해묵은 정치혐오에 맞서, 어린이들과 각종 사회 문제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어린이들이 특정 사안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견해를 구축해 가고, 해결 의지가 생기면 어떻게 행동할지 어린이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언지 함께 모색한다”는 부분과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 중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도록 보도해야 한다는 부분을 인용하며 이번 국민의힘 논평과 언론보도에 대한 어린이들의 입장을 전했다. 다음은 어린이 활동가들의 입장 전문이다. 

▲ 어린이 김나단 활동가가 그린 그림. 사진=정치하는엄마들
▲ 어린이 김나단 활동가가 그린 그림. 사진=정치하는엄마들

“안 가고 싶으면 안 간다. 어디를 가든 내가 결정한다.” (박서율 활동가, 초3)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거다. 난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반대하기 때문에 간 거다. 국민의힘과 그 기자 누구냐?” (백재희 활동가, 초5) 
“어린이를 모욕하지 마세요. 어린이를 얕보지 마세요. 어린이도 모르는 건 있지만 아는 것도 많아요. 어린이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버리는 걸 막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기 부모가 활동가라서 자기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그치만 그건 오해예요. 저희 어린이들도 후쿠시마 핵 오염수를 막고 싶어요. 저희 어린이들도 다 생각이 있고, 모르는 면도 많아요. 그래서 저희들은 배워가면서 이 지구를 지켜 갈 것입니다. 저희도 이 지구를 사랑해요. 지구를 잃고 싶지 않아요.”(정두리 활동가, 초2) 
“아니오. 함부로 판단하지 마세요. 제가 나오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왜냐하면 후쿠시마 오염수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리고 싶고, 어린이 의견을 전달하려고요.” (이지예 활동가, 초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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