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구독 예산을 집행해온 서울의 한 구청에서 제대로 종이신문을 배달하지 않아 세금이 누수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는 구독료를 납부하는 곳(지자체)과 신문을 실제 받아보는 주체(통장)가 다른 계도지 관행으로 국민 세금이 신문사에 대가 없이 흘러들어갔음에도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가 이 사안을 조사 중이다. 

계도지는 군사 정권 시절 정부 시책을 주민들에게 전달해 계도한다는 명목으로 신문을 통반장(이장)에게 지급하는 관행이다. 지자체가 합리적 기준 없이 신문사 수익을 보장해주고, 신문사는 지자체 관련 홍보성 기사를 써줘 ‘관언유착’이란 비판이 제기돼 왔다. 또 상당수 신문이 독자인 통·반장 의사와 무관하게 배포되고 있다. 

서울 중랑구 한 지역의 A씨는 지난해 4월부터 통장(統長·행정 구역의 단위인 통을 대표하여 일을 맡아보는 사람)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6일 갑자기 집에 서울신문이 배달됐다. 처음에 A씨는 ‘잘못 배달됐나’ 싶었는데 다음날에도 신문이 왔다. 그러다 다시 8일과 9일에는 신문이 오지 않았다. 동주민센터에 물었더니 통장이라서 신문이 배달되는 거라고 답했고, A씨는 계도지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A씨는 왜 자신이 4월부터 통장 일을 했는데 왜 이제 들어오는지 물었지만 이유를 들을 수 없었다.  

이후 A씨는 동주민센터와 A씨가 속한 동 소속 통장협의회 및 동료 통장 등에게 관련 사안을 문의했다. 동료 통장에게선 ‘지난 5년간 신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동주민센터에서 알아본 결과 동에서 통장 80%가 신문을 받지 못했다’ 등 말을 들었다. A씨가 속한 동에서만 벌어진 일인지, 중랑구 내 다른 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 중랑구청에서 상당수 통장들이 계도지를 받아보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진=pixabay
▲ 중랑구청에서 상당수 통장들이 계도지를 받아보지 못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진=pixabay

A씨는 중랑구청에 지난 5년치 계도지 예산집행 내역을 정보공개청구했다. 이 자료를 보면 중랑구는 매년 2억 원 이상을 계도지로 집행하고 있었다. 세부 내역을 보면 2018년 2억1685만5000원(통반장 1230명), 2019년 2억3905만4000원(통반장 1351명), 2020년 2억4253만2000원(통반장 1360명), 2021년 2억4628만5000원(통반장 1378명), 2022년 2억8401만1000원(통반장 1388명) 등이다. A씨가 속한 동의 경우 지난해 기준 계도지 예산 2000만 원(통반장 105명)이 넘는다. 

예산을 집행한 중랑구청, 통반장을 관리하는 중랑 지역 동주민센터, 예산을 받아간 신문사들, 실제 배달을 맡은 신문보급소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통장들 사이에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됐다. 종이신문 쇠퇴와 함께 코로나 이후 배달 노동자들이 음식 배달 등 플랫폼업계로 빠져나가면서 신문 배달 인력이 부족해 계도지는 배달을 안했거나 실수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부터, 누군가 작정하고 중간에서 예산을 횡령했을 거란 의혹까지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말 통장들이 참석하는 연말 모임을 앞두고 계도지 예산을 받는 한 신문사 측에서 통장협의회에 두 차례 돈을 건냈고, 통장협의회는 연말 모임 회식비와 통장들에게 수건을 지급하는 데 쓰고 남은 돈을 불우이웃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수차례 동주민센터와 구청 측에 ‘일단 통장들에게 확인해서 신문을 받지 못한 통장 현황을 조사할 것’을 요구했지만 구청 측은 서울신문에서 조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은 계도지 예산을 가장 많이 받는 신문사다. 구청 측은 통장들 연락처를 서울신문에 넘겼고, 이에 통장들은 ‘개인정보 넘기는데 동의하지 않았다’며 구청 측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 국민권익위원회는 중랑구에서 벌어진 계도지 미배달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다. 사진=pixabay
▲ 국민권익위원회는 중랑구에서 벌어진 계도지 미배달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이다. 사진=pixabay

A씨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에 중랑구청 관계자들과 A씨가 속한 동주민센터의 동장을 조사해달라며 지난 4월 공익신고했다. A씨 측은 “구청에 신고했지만 진상을 적극 밝히고 구민들 예산을 환수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그냥 넘어가자면서 신고자를 간접적으로 회유했고 현재까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직무유기 역시 비위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덮으려는 부패 행위”라고 했다. 지난 1월 A씨는 동장과 통장협의회장 등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신문 담당 직원이 나이가 어린데 징계를 받으면 가혹하지 않냐’는 발언이 있었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중랑구청이 진행한 통반장 신문 미배달 조사 결과 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했다. 이에 중랑구청은 “공정한 업무 수행 지장 등”을 이유로 비공개했다. 또한 미디어오늘은 최근 5년간 서울신문과 계도지 계약을 체결한 서류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중랑구청은 관련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권익위 조사 중”이라며 비공개 사유를 설명한 뒤 “조사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중랑구청 관계자는 “구청에서 신문사에 (통장) 명단을 주면 신문사에서 각 보급소에 배송을 해달라고 하는 시스템인데 신문사 쪽에선 보급소가 제대로 배달을 못했다는 입장”이라고 전하며 구체적 사실관계에는 말을 아꼈다. 

사건이 불거지며 서울신문 등을 담당하던 중랑 지역 보급소 관계자는 일을 그만뒀다. 해당 배급소 관계자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권익위는 지난해 통장협의회가 신문사에서 받은 연말 회식비에 관해 조사에 나섰는데 지난달 말 통장협의회는 회의를 열고 자신들 계좌 내역을 권익위에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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