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교육현장을 뒤흔든 이른바 ‘킬러문항’ 22개 사례를 공개하자 기자들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변별력 약화 우려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대체로 복잡하고 까다롭고 ‘결과적으로’ 정답률이 낮은 유형의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문제가 빠지면 변별력이 낮아지지 않느냐, 쉬운 수능이 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에 꼭 킬러문항이 있어야만 변별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되풀이했다. 이른바 킬러문항을 제거하니 변별력 약화가 우려되는 풍선효과 문제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6일 오후 서울본관 브리핑실에서 사교육 경감대책 및 킬러문항 공개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오승걸 교육부 책임교육정책실장이 공개한 ‘킬러 문항’은 모두 22개이며, 국어 7개, 수학 9개, 영어 6개였다. 연도별로는 2021학년도 수능 1개, 2022학년도 수능 7개, 2023학년도 수능 7개,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7개다.

킬러문항의 정의를 두고 오 실장은 “현장교사 및 전문가들이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판단하였다”고 규정했다. 오 실장은 “킬러문항들이 공교육 과정 이외의 다른 배경지식을 가진 경우 쉽고 빠르게 풀 수 있거나 의도적인 함정으로 실수를 유발하는 등 문제풀이 기술을 익힌 학생들에게 유리하여 공교육 과정 내에서 성실하게 학습한 학생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국어의 킬러문항의 경우 오 실장은 “고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문과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배경지식을 가진 학생들은 쉽고 빠르게 풀 수 있는 반면, 배경지식이 없이 독해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부 문항은 문제풀이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내용 파악을 어렵게 하고 선택지의 의미와 구조도 복잡하게 만들어 의도적으로 학생들의 실수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 2022학년도 국어 수능 8번 문제의 경우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예술의 위상을 설명하는 지문으로 ‘정립, 반정립, 수렴적 상향성, 절대정신’ 등 철학 영역의 전문용어를 다수 사용하면서 지문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지목했다. 또한 2023학년도 국어 수능 17번은 과학과 수학 분야의 지문을 제시해 국어 독해력보다 과학 및 수학 개념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가 문제 해결에 큰 영향을 줬으며, 보기 내용을 이해하고 추려내야 할 정보량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문제였다고 지목했다.

수학 킬러문항을 두고 오승걸 실장은 △여러 개의 수학적 개념을 결합해 과도하게 복잡한 사고 또는 고차원적인 해결 방식을 요구 △사교육에서 고급 수학이나 대학 과정 등을 선행학습한 학생은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어 학생 사이의 유불리를 발생시키는 문제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이번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 공통 22번 문제의 경우 세 가지 이상의 수학적 개념이 결합되어 문제 해결 과정이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접근 방식을 요구해 공교육 과정 학습만으로 풀이방법을 생각해 내기에는 어려움이 크다고 해석했다.

지난 2022학년도 기하 30번의 경우 기하 문항으로 출제되었으나 사교육에서 고급 수학이나 대학 과정에서 배우는 ‘벡터의 외적’ 개념을 활용하여 해결할 수도 있어 과도한 심화학습 및 선행학습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어 킬러문항을 두고 오 실장은 △전문적인 내용 또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어서 영어를 해석하고도 그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웠고 △공교육 수준보다 어려운 어휘와 길고 복잡한 문장을 사용해 해석을 어렵게 하였다고 제시했다. 그 사례로 교육부는 이번 2024학년도 6월 모의고사 33번 문제의 경우 지문이 추상적이고, 빈 칸을 포함한 문장 구조가 복잡해 영어 해석과 내용 이해를 어렵게 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지난 2023학년도 수능 34번 문제의 경우도 추상적인 개념과 일반적인 소재를 동시에 활용해 학생들이 구문을 해석하더라도 내용 이해가 어려웠고, 공교육 수준보다 어려운 어휘 및 복잡한 문장구조로 지문이 구성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오승걸 실장은 국영수 외에도 사회탐구나 과학탐구에서도 킬러문항이 출제되고 있다는 지적을 들어 향후 사회탐구, 과학탐구 문항들도 엄밀하게 점검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기자들은 변별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쏟아냈다. MBN 기자는 “킬러문항이 상대평가 속 소수 최상위권 학생을 변별하기 위해 등장한 만큼 상대평가가 유지되는 한 변별력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KBS 기자가 “킬러문항점검팀이 최근 일주일 동안 점검했다고 이해했는데, 이미 대통령이 6월 모평에 킬러문항이 나왔다고 했는데, 대통령은 어떤 기준을 근거로 교육부보다 먼저 킬러문항이라고 얘기한 것이냐”고 묻자 이 부총리는 “킬러문항이라는 용어는 계속 교육 현장에서 있었던 얘기여서 대통령이 지적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부총리는 “교육부가 대통령 지시나 학생과 학부모의 눈높이에 빨리 맞추지 못하고 너무 경직적으로 이 문제를 대응했던 거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늦게나마 이걸 바로 잡아서 오늘 발표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겨레 기자가 “교육부가 킬러문항이라고 밝힌 22개 문항을 보면 선정위원은 학생들이 풀기에 고난이도라는 점이 대체적으로 일치하는 것 같다”, “이런 문항들을 제외하면 결국 수능 난이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문항들을 배제하되 변별력과 적정 난이도를 확보할 방안은 무엇이냐”고 질의했다. 이에 이 부총리는 “전문가들 의견은 킬러문항 자체가 수능의 원칙에 맞지 않아 배제하는 것”이라며 “(원칙과)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실제로 평가에 있어서 변별력은 어떤 면에서 본질 아니겠느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 의견이 많다. 학부모, 학생들께 안심하시라는 말씀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국영수 사례별로 킬러문항 정의를 한 것과 관련해 ‘향후 출제의 원칙 같은데 이런 점이 모두 수능을 쉽게 낸다는 표현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위에 제시한 원칙들을 준수하면서 상위권 변별력을 확보하는 방안이 있느냐’는 국민일보 기자 질의에 이 부총리는 “킬러 문항 제거는 공교육 내에서 다루지 않은 문항들,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은 문항들을 핀셋으로 제거하겠다는 것”이라며 “공정성의 확보다. 사교육 유발의 정점에 있는 문제의 제거”라고 답했다. 그는 “이러한 조치가 결코 변별력 확보라는 중요한 수능의 역할을 약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승걸 실장은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여러 가지 난도를, 고난도 문제를 출제할 수도 있고 중위 또는 하위 난도를 통해서 충분히 변별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현장의 전문가들의 의견”이라며 “그런 관점에서 충분히 변별을 하는 적정 난이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올해 수능에서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한 설명은 충분할지 몰라도 올해 수능에서 어떤 난이도의 어떤 변별력 있는 문제가 나올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측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불안해할 것 같다’는 MBC 기자 질의에 이주호 부총리는 “공정 수능에 대한 조치가 사실 당연히 지켜져야 될 교육과정 내에서 다룬 것을 출제한다는 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원칙이나 유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을 도려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혼란이 최소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설명에도 ‘킬러 문항보다는 쉽지만 여전히 어려울 수 있는 문제들을 강화한다’로 읽히지 않느냐는 EBS 기자 질의에 이 부총리는 “킬러 문항이 단순히 아주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며 “킬러 문항은 학생들이 공교육 내에서 준비할 수 없는 문항”이라고 답했다. 그는 “공교육 내에서 출제하는 원칙을 확립하면 본질로 돌아가고, 얼마든지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바로 그렇게 됐을 때 물수능이 되는 게 아니냐’, ‘킬러문항을 빼고 물수능이 아닌 수능은 어떤 수능인가’라는 이어진 질문에 이 부총리는 “킬러문항이 없어도 반드시 물수능이 된다, 킬러문항이 있을 때 반드시 불수능이 된다는 거는 사교육의 논리”라며 “왜 킬러문항이 있어야 변별력이 있느냐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번엔 연합뉴스 기자가 “똑같은 질문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듣는 입장에서 정말 이해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며 “킬러문항이 어려운 문항이 아니라고 강조하는데, 아까 백브리핑에서 ‘2021학년도 킬러문항 예시는 왜 적냐’고 물어보니 ‘그때 물수능이어서 그랬다’고 했고, ‘킬러문항이 정답률이 꼭 낮은 것 아니냐’는 데 대해 ‘뽑아놓고 보니 정답률이 실제로 낮더라’고 했다”고 반박했다. 이 기자는 “결국은 킬러문항이 없으면 변별력은 전체적으로는 조금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걸 계속 부정하려고 하니까 모순되는 발언이 나오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주호 부총리는 “킬러문항을 굳이 안 내도 교육과정 내에서 내도 어려운 문제, 쉬운 문제, 또 중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킬러문항을 내서 변별도를 유지한다는 논리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 부총리는 “킬러문항을 뻬도 난이도 조정으로 변별력을 갖출 수 있는 게 교육평가의 기본이자 원칙”이라며 “그걸 지켜서 하겠다는데 계속 지금 다른 말씀을 하시니까 저희들이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