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기자들이 “현장 목소리를 무시한 데스크의 일방적 논조 강요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서울경제 노동조합이 지난 19일 공개한 공정보도위원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경제 기자 가운데 87.8%가 ‘회사 논조에 맞추느라 자기 검열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기자들 83.3%가 ‘서울경제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그 가운데 63.9%는 우편향으로, 36.1%는 극우편향이라고 답했다. 

편집부의 경우 ‘회사 논조를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제목을 단 적 있느냐’는 질문에 12.5%가 ‘거의 매일 있다’, 30%가 ‘자주 있다’, 45%가 ‘가끔 있다’고 답했다. 취재부서의 경우 답변자 79.4%가 ‘무리한 논조 맞추기와 기획 기사 때문에 출입처에서 난감하거나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3.8%는 디지털 전환, 기자 포상제도 추가 신설, 조직문화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건 김현수 편집국장의 공약과 관련,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 서울경제 노동조합이 지난 19일 공개한 공정보도위원회 설문조사 결과.
▲ 서울경제 노동조합이 지난 19일 공개한 공정보도위원회 설문조사 결과.

노조는 “기계적 중립은 고사하고 현장 목소리를 무시한 데스크의 일방적 야마(기사의 핵심 주제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 강요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의견이 상당수를 이뤘다”며 “우리 신문은 정치 스펙트럼상 자유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보수 신문에 해당한다. 기자들은 회사가 진보 신문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현장 목소리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주장과 제언만 담긴 사설 같은 기사는 지양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진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기자 수가 예년에 비해 절반 수준인 42명에 불과했다며 “기자들의 절망은 설문 응답률에서도 드러났다”면서 “문제를 제기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는 자조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경제 A 기자는 “편향된 시각으로 일반 독자들의 관념과는 동떨어진 분석과 논조로 일관한다”고 토로했으며 B 기자는 “회사 방침이나 논조라는 이유로 편향된 기획들이 많다. 이는 다양한 구독자 유입과 기자들의 취재 범위를 축소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기자들은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누군가에게 지령을 받은 걸까 싶을 정도로 맹목적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주구창창 규제 개혁이라는 화두에 집착한 나머지 동어반복에 그치고 있다”, “회사의 매출 구조는 이해하지만 언론으로서 재벌 총수들을 신격화하지는 말자”, “기업들이 단기 이익을 위해 내는 목소리가 신문을 통해 과잉 대표된다”, “겉핥기식 기사에 논조가 매우 편협하며 자기 복제 기사가 남발하고 있다”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출입처에서 ‘사람 다시봤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끄럽다”거나 “윤석열 정부를 너무 봐주는 게 아니냐 ‘한경(한국경제신문)보다 더 오른쪽 같다’는 얘기를 출입처에서 듣는다”는 자조적 목소리도 나왔다. 박홍용 노조위원장은 “공정보도위에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구체적 사례가 제시되지 않아 다소 추상적 논의로 흐른 면이 없지 않다”면서도 “정치 기사에 관해 우편향이 심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현장에서 겪는 상황과 데스크들의 판단에 괴리가 있어 저연차 기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초 임기를 시작한 김현수 편집국장은 20일 통화에서 “서울경제는 창사 때부터 시장경제와 기업 활성화, 자유민주주의 및 법치주의라는 원칙 하의 편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여든 야든, 이 원칙에 어긋나면 비판했고 원칙에 부합하는 행보에는 긍정 평가를 내려왔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이번 설문을 보면 ‘정부 정책이면 비판하고 보자는 식’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 윤석열 정부도 서울경제의 비판·감시 대상이었다”며 “우리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든 비판해왔기 때문에 ‘우편향’이라는 지적엔 동의하지 못하고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김 국장은 “본질은 소통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편집국장으로서 다양한 소통에 나설 것이며, 특히 젊은 기자들 생각을 세심하게 들을 것이다. 우편향 지적은 아쉽지만 기자들이 지적한 것을 살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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