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희 여사가 6월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김건희 여사가 6월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서울국제도서전을 주최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의 개막식 축사를 이유로 언론 출입을 막아 논란이다. 개막식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선정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오는 일이 벌어지면서 SNS상엔 예술인과 참가자들의 보이콧 움직임이 인다.

국내 최대 도서전인 서울국제도서전이 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했다. 이날 김건희씨가 축사를 하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이 문학전문지와 민영통신사, 종합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들의 개막식 행사 진입과 취재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졌다. 도서전은 출협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문학신문 뉴스페이퍼’는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김건희씨가 왔다는 이유로 기자들 진입도 허가되지 않는다. 허가된 기자만 진입 가능하다며 문학기자들도 밖에서 대기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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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신문 뉴스페이퍼 트위터 갈무리

당시 현장에서 취재를 제지 당한 매체들에 따르면, 출판·문학 담당 대여섯 명의 기자들이 개막식 전 코엑스에 마련된 프레스룸 앞 개막식 장소에 들어가려 하자 설치물과 경호원들에 의해 제지 당했다. 이들은 사전에 출협 측으로부터 배부 받은 프레스증을 내밀었으나 “(김건희) 여사 님이 오셔서, 여사 님이 가신 다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현장에 있던 ‘문학신문 뉴스페이퍼’ 이민우 편집장은 “도서전을 8년째 취재해왔는데 진입을 금지 당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문학 작가와 담당 기자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워 많이 당황했다”며 “가장 중요한 건 축사와 개막식에서 인사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인데 사전 고지 없이 제지 당했다”고 했다.

이 편집장은 “바깥에서라도 망원카메라로 촬영하려 했지만 경호원들이 찍지 말라며 카메라를 뺏으려 했다”며 “경찰과 경호원에게 안에 들어간 기자는 누구냐고 물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결국 행사장에 누가 왔고 어떤 말을 했는지 연합뉴스 기사를 보고 알게 됐다”고 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개막식이 끝나자 몇몇 전시관을 둘러본 뒤 책 6권과 굿즈 캔들 3개를 현장 구매했다.

▲개막식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선정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왔다. 사진=문학신문 뉴스페이퍼 제공
▲개막식에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소설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선정에 항의하던 예술인들이 강제로 끌려나왔다. 사진=문학신문 뉴스페이퍼 제공

한편 대통령경호실 경호원들이 소설가 오정희씨의 도서전 홍보대사 위촉을 비판한 예술인들의 개막식 참가를 물리력으로 막으면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송경동, 정보라 등 예술인 10여명이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거됐다.

송경동 시인은 페이스북에 “순식간에 수십여 명이 달려들어 폭력적으로 이격시킨 후 연행해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며 “끌려나온 후 정체와 사유를 물으니 대통령경호법 위반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이 편집장은 “경호원들이 작가들을 상대로 프레스룸 입구를 기역 자 모양으로 인간띠를 만들어 서 있었다”며 “(작가들이) 무대로 뛰어들어간 것도 아니고 진입로 입구에서 갑자기 진압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연대와 ‘블랙리스트 이후(준)’ 등 문화예술단체들은 이날 개막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문학과 도서출판을 대표하는 국제행사의 홍보대사로 ‘블랙리스트 실행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앞서 출협의 정책팀장인 홍태림 미술평론가가 오정희씨 홍보대사 해촉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히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가수 이랑 트위터 갈무리
▲가수 이랑 트위터 갈무리

연이은 논란에 15일부터 일부 도서전 참여자가 도서전 보이콧을 선언하고 있다. 도서전의 프로그램 사회를 맡은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트위터에서 언론 취재 금지와 예술인 퇴거 현장을 인용한 뒤 “6월17일 서울국제도서전 ‘기후위기 앞의 삶’ 북토크 프로그램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각종 SNS에 도서전 예매를 취소한 뒤 이를 인증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출협 홍보담당자는 대통령실 요구에 따라 취재를 제한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담당자는 통화에서 “(대통령실로부터)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행사하는 경우 일반 기자들이 출입할 수 없고 ‘풀취재’만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대통령이나 부인의 행사 참여 사실은 보안상 미리 고지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같은 이유로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사전 공표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불편함을 이해하고 죄송하지만, 취재가 완전히 불가능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 여사는 축사를 하고 얼마 안 있다가 떠났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예술인을 강제로 끌어낸 조치에 대해선 “대통령 경호실은 신원조회를 거쳐 한정된 인원만 행사장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걸 넘어 진입 시도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오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이유에는 “6명을 위촉했는데 연령대가 다른 한국문학의 대표적 작가를 소개하는 기획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출협은 14일 올린 입장문을 통해 “출협은 (오정희 홍보대사 위촉 관련) 홍보물 완전폐기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밝혔고 향후 추가적인 언론노출이나 공개 행사 자제 등의 노력을 하기로 구두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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