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노동자들이 (배달노동으로) 자신의 가정 식탁에 음식을 올려놓을 수 없다면, 여러분은 가정에 음식 배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난 11일(현지 시각) 배달라이더 노동자들에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한 미국 뉴욕의 에릭 아담스 시장이 법률 시행을 알리며 한 말이다. 뉴욕시가 2018년 우버와 리프트 등 택시 플랫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도입한 데 이어서다.

해외에서 ‘근로 계약’ 밖에 놓인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최저임금 제도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시작된 국내에서도 단순한 최저 시급 인상을 넘어 적용 폭을 넓혀야 한다는 당사자들 목소리도 모이고 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 등은 13일 국회의원회관 1간담회실에서 ‘특고·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현장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13일 국회의원회관 1간담회실에서 ‘특고·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현장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13일 국회의원회관 1간담회실에서 ‘특고·플랫폼노동자 최저임금 적용을 위한 현장실태 증언대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방송스태프와 웹툰작가, 배달라이더,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이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장시간 노동과 극도로 낮은 소득에 시달린다고 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말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배달라이더 노동자 시급은 9300원이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배달 노동자들은 주 6일 일하며 월 평균 286만 원을 벌었다. 일 평균 12시간 근무해 결국 주 72시간을 넘었다”며 “올해 최저임금(9620원)에도 못 미친다”고 했다. 조사 뒤 6개월 사이 노동 여건은 더 열악해져 시급 8600만 원이 됐다. 코로나19 국면이 끝나 물량이 줄고 배달의민족 등 기업이 배달료를 낮추고 있는 탓이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구교현 지부장은 “최저임금은 시간이 갈수록 오를 수밖에 없다보니 사용자들은 전략을 쓴다. ‘우리는 특고 쓰면 되지’라는 간단한 전략”이라며 “지금 시대에선 최저임금을 높여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적용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방송스태프도 심각한 저임금에 시달린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지난 2~6일 스태프 10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시간당 급여가 5000~8000원대라는 응답이 35%(35명)를 차지했다고 했다. 특히 저연차 방송작가와 연출, 조연출 노동자는 시간당 나눈 급여가 5000~6000원대에 그친다고 답했다.

김 지부장은 “20년 동안 급여 조건은 거의 변하지 않았고, 물가는 가파르게 올라가지만 방송계 인건비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방송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한다는 핑계로 기본 급여 자체가 너무 적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했다. 방송스태프들은 대다수가 이른바 ‘프리랜서’로, 예술인복지법은 방송사나 제작사에 서면 계약 의무를 명시했지만 이번 조사 결과 34%(35명)가 계약서 없이 일한다고 했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장. 사진=김예리 기자

특수고용·플랫폼노동은 미디어에 의한 편견에 가린 직종이기도 하다. 일하고 싶을 때를 자유롭게 택하면서 고소득을 올린다는 환상이다. 앞서 2020년 헤럴드경제 등 경제지들은 ‘배달라이더 연봉 1억’이라는 주장을 담은 기사를 내기도 했다. 구교현 지부장은 이를 두고 “일파만파 퍼진 기사를 보고 당시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많이 (배달플랫폼 노동에) 뛰어들었고, 많이 사고가 나고 많이 떠났다”며 “실은 쿠팡 라이더가 하루에 40여만 원 벌었다고 수입을 ‘인증’하는 글을 올렸고, 그 글을 본 기자가 ‘그럼 365일이면 1억 되겠네’라고 계산해 기사를 쓴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이 ‘자기 착취’ 굴레에 내몰리는 현실도 증언했다. 업무를 지시하는 사용자가 플랫폼 뒤에 숨어 있고 최저임금 등 보장 제도 밖에 있어서다. 김주환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착취로 먹고 산다”며 “보통 대리기사들은 자신들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줄 안다. 월 250만 원을 받는데 각종 비용을 ‘까고’ 나면 그에 못 미친다”고 했다. 서비스연맹이 대리기사 100명을 상대로 실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리기사의 순수입 기준 시급은 8360원 정도다.

▲김주환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주환 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김 위원장은 “플랫폼 노동은 가장 최신의 노동 형태인데도 가장 전근대(적 조건)에 놓여있다”며 “대리운전 기사 호출 플랫폼에는 각 기사가 어느 시간에 운행하고 언제 대기하는지 실시간으로 다 나온다. 오히려 (임금을 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플랫폼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임금 보장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확대되는 플랫폼 기업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우는 일”이라고 했다.

웹툰작가는 웹툰 플랫폼이 일방으로 책정한 고료를 받으며 살인적 노동에 시달린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은 “노동량과 시간엔 상한이 없고 임금엔 하한이 없다”는 말로 웹툰작가 현실을 요약했다.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하신아 웹툰작가노동조합 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보통 신인 작가가 회차당 40만~60만 원의 고료를 받는다. 회차당 65~70컷, 시나리오 외 그림 부문만 쳐도 콘티, 배경, 밑그림, 선화, 밑색, 음영채색, 후보정 작업을 70컷씩 반복한다. 최소한 20시간씩 걸리는 각 작업을 7번 하면, 140시간이 걸린다.”

이 계산에 따르면 40만 원을 받는 작가의 시급은 2850원이다. 하 위원장은 “그러나 프리랜서와 회사의 계약은 ‘사적이고 자유로운 두 존재의 대등한 합의에 의한 계약’이라며 정당하다고 간주된다”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가하는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뉴욕의 배달노동자 권리보장 제도처럼 플랫폼 노동 최저임금 적용이 꿈 같은 얘기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제도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그러나 국내 상황을 보면, 2차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서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안타깝게도 사용자위원과 공익위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논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가하는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가하는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정 부위원장은 “헌법은 이미 32조에서 국가가 모든 노동자들에 적정 임금을 보장토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라 최저임금제도를 시행하도록 했다. 도급제로 임금을 받거나 그 밖의 형태로 정해지지 않는 노동을 하는 경우에도 그에 맞는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들에게도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먼 미래도 아니며 현행법을 적극 해석해 집행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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