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지난 4월15일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많은 스타 정치인을 만들어냈다.
4·15 총선 스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민주노동당 노회찬(48·사진) 의원이다. 노 의원은 당시 특유의 해학과 위트가 담긴 어법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노회찬 어록’이 유행할 정도였다. 일부 네티즌들은 기존 정당들의 문제점을 속시원하게 비판하는 그를 보며 ‘노회찬 국회 보내기 운동’까지 제안했다.

노 의원의 대중적 인기는 진보정당에 대한 일부의 거부감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고 민주노동당도 10명의 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언론들은 총선 전후 노 의원을 모시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노 의원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깜짝 스타’라는 평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1980∼1990년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성장했다.
서울 인천 부천 등에서 용접공으로 현장노동자 생활을 하던 그는 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창립하며 노동운동에 깊숙히 발을 담갔다.

노 의원은 1992∼1995년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대표를 역임하며 진보정당 육성의 기틀을 다졌다.
당시만 해도 운동진영 일부에서는 진보정당 육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노 의원은 1995∼1998년 진보정치연합 대표를 지내면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국민승리 21’을 거쳐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는 과정에도 깊숙히 관여했다.

민주노동당 부대표와 사무총장 등을 거친 그는 2002년과 2004년 선거대책본부장으로서 선거를 이끌었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 이후 원내 3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정당 지지율 면에서는 1, 2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은 채 부동의 3위를 유지하고 있다.

노 의원은 최근 ‘한겨레 21’이 발표한 ‘차세대 리더 여론조사’의 ‘대중적 지지도’ 부분에서 15위에 올랐다. 고건, 강금실, 박근혜 등 선두권 인사들과는 차이가 났지만 열린우리당의 신기남, 이부영 등 전·현직 당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은 그의 후순위로 밀렸다. 노 의원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원내에 진출한 이후 왕성한 의정활동에 나서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고 있으며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상의 문제점을 폭로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노 의원의 왕성한 의정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는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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