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방송위원회(위원장 노성대)의 지상파 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 결과, SBS를 포함한 6개 민영방송사(iTV, 강원민방, 청주방송, 울산방송, 전주방송)가 KBS 대전MBC 춘천MBC와 함께 ‘2차 의견청취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SBS 개혁’이 정치권과 방송계 전반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송위의 이 같은 결정은 재허가 심사 이전부터 ‘SBS개혁’을 제기해 온 언론시민단체와 ‘민영방송 소유규제 강화’를 뼈대로 한 방송법 개정 방침을 밝힌 열린우리당의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한나라당과 동아·조선을 비롯한 일부 보수신문들이 여권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하는 ‘SBS 소유구조 개편’을 ‘방송 길들이기’라고 규정, 반대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치적인 쟁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소유와 경영분리 문제= 현재 SBS는 소유와 경영분리 문제가 재허가 심사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SBS는 현행 방송법에는 소유와 경영분리 문제가 심사대상이 아님에도 이번 재허가 추천 심사에서 이 부분이 상당히 고려돼 ‘2차 의견청취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때문에 SBS는 방송위의 이번 결정이 법과 규정을 벗어나 이른바 ‘참고사항’이 재허가 추천 결정의 배경이 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방송위측은 ‘방송법상에 명기된 큰 평가기준을 놓고 방송위가 세부항목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방송위의 한 관계자는 “소유와 경영분리 문제는 이번 재허가 심사의 세부기준에 대한 ‘착안사항’으로 포함돼있다”면서 “방송법상에도 심사기준인 공익성 구현을 평가하기 위한 내부적 세부기준이 있으며, ‘착안사항’이란 그 세부기준을 판단하기 위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방송위 고위관계자 또한 “소유와 경영문제는 방송 공영성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사안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서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과도하게 부여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방송법상에 명기된 큰 평가기준을 놓고 방송위가 그 세부항목을 구체화하는 과정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그 세부적 항목에 대해서 법에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보다는, 그것이 방송 공영성 실현이라는 재허가심사의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느냐로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영방송 장악음모?= 방송위의 이번 심사결과에 대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방송사에 대한 길들이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한나라당 미디어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고흥길)가 발표한 성명서에도 이런 견해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의 사태는 여권과 방송위, 그리고 친여 단체들의 공조현상이 뚜렷해 정권차원의 방송장악 공작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특히 SBS가 2차 의견청취대상에 포함된 것은 이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방송위원회까지 나섰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분노를 금치 못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방송계와 언론시민단체들은 한나라당의 이 같은 주장 자체가 매우 정략적인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방송위의 이번 결정을 ‘방송장악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사안을 두고, 지난 16일 방송위를 항의 방문한 것 자체가 ‘방송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언론시민단체들이 민영방송의 소유지분 제한 등 ‘SBS개혁’이 방송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해왔는데 그때는 이 문제를 전혀 주목하지 않다가, 재허가 심사를 전후해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 행태’라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조 신학림 위원장은 “이른바 ‘조중동-SBS-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수구보수 세력들의 한 축인 SBS가 ‘소유구조’ 등으로 인해 방송위와 언론시민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자, 이를 방어하기 위한 차원”이라면서 “언론시민단체와의 대결구도를 통해 수구보수세력들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PD연합회장을 지낸 이강택 KBS 시사정보팀 PD도 “한나라당이 공영방송 때리기에 나서면서 한편으로 민영방송을 ‘배려’하고 있는 것은, 향후 총선이나 대선에 대비해 유리한 언론지형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다”면서 “이는 두 번에 걸친 대선과 지난 총선패배 등을 거치면서 형성된 일종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 PD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언론개혁 차원에서 신문개혁 논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방송개혁 문제가 거론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방송개혁이 신문개혁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거론됐고, 그만큼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방송개혁 논의가 정략적인 의도에서 비롯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논의 방향= 10월중 발표할 예정인 방송위의 재허가 심사결과는 정치권과 방송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그 여파 또한 상당히 클 거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SBS 재허가 문제’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방송계가 한바탕 격렬한 ‘정치적’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언론계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이 같은 논쟁이, 과거 형식적이고 부실하게 이뤄진 방송사의 재허가 심사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겠다는 방송위의 애초 기본 취지를 훼손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지난 20일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주최로 열린 ‘방송개혁의 의제와 대안’이라는 토론회에서 김재영 교수(충남대 언론정보학과)가 “공영방송에 대한 최소한의 감시는 작동되고 있는 반면, 민영방송 등장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함에도 제도적 차원에서 민영방송을 규제하려는 논의가 아직 미흡하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방송계에서는 방송위의 이번 재허가 심사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향후 법 개정 등 제도적 차원의 뒷받침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방송법 개정을 통해 자료요청권 등 관련 규정을 강화해 실질심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행 방송법에는 소유주가 바뀔 경우 지분 ‘조정문제’를 비롯해 새로운 기업 참여를 보장할 것인지 여부 등 후속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각에서 방송위의 이번 재허가 심사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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