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창길 기자 photoeye@
"신문시장의 위기는 뉴미디어의 등장이나 무료신문의 범람, 정권과의 갈등 등 외부 요인보다 독자의 신뢰를 잃은 것이 더 큰 이유다."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 창간 39주년을 맞은 22일 기념사에서 이같이 지적하고, 따라서 위기 극복의 첫걸음은 독자의 신뢰 회복이라고 강조했다.

'변화'와 '차별화'만이 신문의 살 길이라고 강조한 홍 회장은 "이제 2백만 발행부수와 연간 3천억 광고 매출을 향유하며 정권을 무차별 비판하는 것으로 신문의 영향력을 유지하던 시절은 지났다"면서 "이러한 신문은 독자가 외면하고 시장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 △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 전달 △변화하는 시대와 사회에 부응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기자들의 의식 전환 △엄격한 기자의 윤리의식 제고 △사회 변화에 따른 편집국 조직이나 취재시스템의 관행 탈피 등을 제안했다.

특히 홍 회장은 독자들이 읽기 편한 신문을 만들기 위해 타블로이드판 전환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유럽 신문들은 앞다퉈 타블로이드판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신문 시장도 커지고 있다"면서 "우리도 손에 들고 펼치기 쉬운 타블로이드판 제작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홍석현 회장의 창간기념사 전문.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
 
중앙일보가 어느덧 불혹의 연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9년전 창간의 깃발을 올린 이후 온갖 도전과 시련을 젊은 패기로 헤쳐 온 중앙일보가 이제 경륜을 갖춘 나이가 된 것입니다.

돌아 보면 중앙일보는 우리나라의 척박한 언론 환경에 던져진 한톨의 씨앗이었습니다. 그 작은 씨앗은 기존 매체들의 견제와 신매체들의 도전, 압제의 눈보라와 퇴행의 찬바람을 헤치고 기어이 ‘대한민국 대표 신문’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중앙일보, 나아가 JMN은 이제 우리나라 미디어의 표준이자 희망이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과 선배들이 공들여 가꿔 온 덕분입니다. 다시 한번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드립니다.
 
임직원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느해보다 무겁기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신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구 구독률이 40%대로 OECD국가 중 최하위권입니다. 독자의 감소는 자연히 경영 악화로 이어지고,몇몇 신문은 이미 존폐의 기로에 서 있기도 합니다.
 
더러는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습니다. 뉴 미디어의 등장이나 무료 신문의 범람,정권과의 갈등을 꼽습니다. 물론 이런 요인도 있겠지만 진정한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위기는 바로 독자의 신뢰 상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위기 극복의 첫 걸음은 독자의 신뢰 회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독자를 위한,독자에 의한,독자의 신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는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더 나아가 독자가 진정 필요로 하는 정보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관주도형, 권위주의형, 피라미드형에서 벗어나 시민참여형, 네트워크형으로 변했습니다. 한편으론 저출산시대, 여성시대, 노년시대이며 독자의 관심도 정치에서 경제로, 국내에서 세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한 시대와 사회에 부응하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변화하고 재정비해야 합니다.

먼저 기자들의 의식 전환이 시급합니다. 엘리트 의식을 버리고 독자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독자와 함께 호흡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윤리문제도 더욱 엄격해야 합니다.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오만과 특권에 젖어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편집국 조직이나 취재시스템도 기존의 관행을 과감히 탈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만의 신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신문’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독자들은 읽기 편한 신문을 요구합니다. 이에 부응해 유럽  신문들은 앞다퉈 타블로이드판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신문 시장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손에 들고 펼치기 쉬운 타블로이드판 제작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주5일 근무제 시대에 일요일자 신문을 휴간하는 것이 과연 독자 중심의 신문 제작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과제는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건이 어렵다 하여 언제까지고 주춤거리며 시간을 보낼수만은 없습니다. 편집, 광고, 마케팅 부문이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으면 돌파구가 보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JMN이 지향하는 종합미디어그룹은 시대적 대세입니다. 우리는 이미 신문 뿐만 아니라 출판, 방송, 인터넷 미디어가 어깨를 같이 하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는 필수적인 과제가 됐습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해 컨텐츠를 가공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복합멀티미디어 시대를 앞서 나가는 추진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개혁 10년’의 여정에서 선구적인 신문체제 개혁과 기사의 질적 변화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에도 ‘기사분석’을 통한 스트레이트와 해설의 분리,과감한 편집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변화는 숙명입니다. 차별화는 우리의 방향타입니다.
 
컨텐츠의 질적 차별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마케팅과 광고의 선진화, 과학화입니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의 유익을 탐하다 보면 영영 헤쳐 나오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올해 초 시작한 구독료 자동납부 캠페인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의지입니다. 선진기법을 이용한 광고영업은 경기침체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인 마케팅,선진화된 광고영업,합리적인 경영은 바로 ‘언론자유’를 떠받치는 자립 기반입니다.

이제 2백만 발행부수와 연간 3천억 광고 매출을 향유하며 정권을 무차별 비판하는 것으로 신문의 영향력을 유지하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이런 신문은 독자가 외면하고 시장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신문 제작,마케팅,광고,경영 각 부문의 구성원 모두에게 비상한 대처와 각오가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JMN 임직원 여러분,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그러나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힘들어도 ‘변화’와 ‘차별화’로 내일을 준비하면 우리의 앞날은 더욱 밝습니다. 비록 고난과 시련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우리가 서로 단결해 상생의 지혜를 모으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도를 걸으면 어떤 도전이나 유혹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갈등과 분열을 화해와 통합으로 치유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와 함께 성장하는 최정상 ‘일류신문’입니다.
 
내년 오늘이면 꽉 찬 불혹의 신문이 됩니다. 그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한국 신문의 ‘리딩 페이퍼’이자 복합멀티미디어를 선도하는 ‘리딩 미디어’가 돼 있을 것입니다. 내년 창간 40주년 기념식은 바로 이를 축하하는 자리가 되도록 합시다. 우리 함께 손잡고 내일을 향해 달립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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