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민족전쟁 직후 조선·동아일보는 후계 구도가 새롭게 정리된다.

조선일보 계초 방응모 사장(1883년 출생)은 1950년 6월30일 서울 장충동 자택에서 북한군 보안군에게 연행된 이후 소식이 끊겼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계초는 북송되던 중 항공기 폭격으로 사망했다.

이에 따라 1954년 5월6일 계초의 손자인 고 방일영 사장이 대표취체역(오늘날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발행인 겸 편집인에 오른다.

방일영 전 사장은 지난 1964년 11월15일 동생 방우영 전 회장에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10년 6개월 동안 조선일보 경영을 맡았다. 국가보안법 등 사회통제 체제에 반대해온 조선일보의 논조는 방우영 전 회장 체제 이후부터  보수우익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아일보 인촌 김성수 사장(1891년 출생)은 1952년 5월29일 부통령직을 사임한 지 3년만인 1955년 2월 18일 지병인 뇌혈전증이 악화돼 사망했다. 지난 1998년 발행된 ‘문화민족주의자 김성수’(저자 김중순)에 따르면 1951년 경미한 중풍을 앓고 있던 인촌은 이승만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주일 한국대표로 신성모씨를 임명한 데 분개해 지병이 악화됐다.

인촌은 6월26일 신 전 대사 임명안이 부결됐음에도 이 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임명을  강행한 다음날 아침 음주로 인해 뇌혈전증이 악화돼 오른팔의 마비증상과 함께 언어능력에도 장애가 왔다고 한다. 전날 조병옥 등과 함께 술을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인촌의 사망은 동아일보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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