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합의한 ‘워싱턴선언’은 한국 정부가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준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씨를 지핀 ‘한국 핵무장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한국 핵무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핵 족쇄’가 강화됐다며 NPT 의무 준수 결정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대중 칼럼니스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핵무장 논의가 조선일보에서 본격화된 모양새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4월26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 ⓒ연합뉴스
▲미국 현지시간으로 4월26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 ⓒ연합뉴스

조선일보, 워싱턴선언 두고 “핵 족쇄”

한미 정상은 선언문에서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한국의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며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하였다”고 했다. 또 양국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핵심은 NPT 의무 확인이다. NPT에 따르면 핵무기 보유국은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양도하지 않아야 한다. 또 비보유국은 핵무기를 제조·획득하면 안 된다. 한국은 1975년 NPT에 가입했으나,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을 놔두면서 남쪽도 핵무장을 하거나 핵 공유를 하면서 핵군축을 하자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며 핵 도미도를 경계했으나, 올해 1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대한민국에 전술 핵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핵무장론에 불을 지폈다.

▲4월27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4월27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조선일보는 워싱턴선언과 NPT 의무 확인에 대해 “핵 족쇄”라고 표현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조선일보는 27일 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를 내고 “워싱턴선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 핵 무력화보다는 한국 핵개발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 한미 동맹은 우리 안보의 초석으로 이는 앞으로도 바뀔 수 없다. 다만 우리를 지키는 쪽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이 자체적인 방위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

조선일보의 핵무장론 논의 중심에는 김대중 칼럼니스트가 있다. 조선일보 주필·고문 등을 역임한 그는 과거부터 올해까지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김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핵무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말인가>(2011년 2월7일), <동북아의 무핵 외톨이>(2012년 7월9일), <미국의 총기 허용, 한국의 핵 보유>(2016년 1월19일), <우리도 핵을 갖자>(2019년 1월29일), <2000여기 핵탄두 계속 가졌다면... ‘우크라이나’서 배운다>(올해 1월10일) 등 칼럼을 통해 한국이 핵무기 보유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핵무장론 중심에 있는 김대중 칼럼니스트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사진=미디어오늘
▲​김대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사진=미디어오늘

김대중 칼럼니스트가 과거부터 일관된 논조를 보인 것과 달리, 조선일보 논조는 변화를 겪었다. 차학봉 도쿄특파원은 2012년 1월 칼럼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일본 정치인을 “극우파”라고 소개했고, 조선일보는 그해 6월 사설 <日, 北核·中 군비확충 빌미 삼아 핵무장 길 닦나>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이시하라 도쿄 도지사를 두고 “일본 핵무장을 정치 상표로 삼는 극우 포퓰리스트”라고 했다.

2012년 7월 한국에서도 핵무장 논의가 나오자 조선일보는 <전문가들 “핵무장, 실익 따지기 전에 가능성 자체가 제로”> 보도를 내고 한국 핵무장 논의는 현실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전문가들은) 유엔(UN) 안보리가 경제 제재에 나설 경우 산업 전반에 치명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핵무장 득실을 따지기 앞서 가능성 자체가 희박하다는 얘기”라면서 “한국은 지난해 무역 의존도가 97%에 이르는 대표적인 교역국가다. 이런 우리가 핵무장을 할 경우 다른 나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16년 2월16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2016년 2월16일 조선일보 사설 갈무리.

2016년 이후 핵무장 논의 급진전…“최후 수단”

하지만 박근혜 정부를 맞이해 조선일보의 논조가 급변했다. 조선일보는 2016년 핵무장론을 논의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논의는 해볼 수 있다는 것. 유용원 군사전문기자는 2016년 1월 칼럼에서 “일본처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 능력을 갖는 핵무장 선택권 전략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해 2월 조선일보는 사설 <'核 개발' 극단 선택 하기 전에 위기 끝내는 게 최선이지만>을 내고 독자 핵무장 논의를 가볍게 여길 순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핵무장을 “바람직하지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지만 우리가 극단적 궁지에 몰리게 됐을 때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생존을 위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최후 수단”이라고 표현했다. 핵무장 논의에 대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1월13일 조선일보 사설.
▲2019년 11월13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핵무장 논조는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강해졌다. 조선일보는 2019년 11월 <美 지휘관까지 "주한 미군 필요한가" 韓 핵무장하면 필요 없다> 사설을 내고 “미국이 주한 미군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라면 우리로선 어쩔 수 없다. 그 경우 한국민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핵무장을 포함한 모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韓 전술핵’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북·중에 메시지 될 것> 사설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미국 전술핵의 공유 또는 재반입, 자체 핵무장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비확산을 중시하는 미국이 수락하긴 어렵겠지만 계속 두드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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