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사무처장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촉구를 두고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어딨느냐”고 주장해 파문이다. 4년 여 전 배상 판결을 한 우리 대법원에게는 “얼치기 독립운동하듯 내린 판결”이라고까지 했다.

민주당은 국민에 모욕을 주는 망언이자 참담한 궤변이라며 당장 사죄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한편,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런 결정을 하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의 정체가 뭐냐”고 성토했다.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부가 발표한 한‧일 강제징용 해법에 마음깊이 찬동한다”며 “단순히 찬반 문제를 떠나서 그 방법이 떼법이 아닌 국제법에 맞는 해법”이라고 썼다. 석 처장은 “이미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톱클라스 국가”라며 “죽창가 부르는 마이웨이, 혼밥이나 하는 나라가 아니라 국제법 규범과 상식을 지켜야 국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석 처장은 “국제법상 일반원칙중 하나로, 국가 간에 특별한 사정하에서 일괄타결협정(lum sum contract)에 의해 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차단할 수도 있는 원칙이 있다”면서 “더 큰 이익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청구권 행사를 금하는 대신에 국가가 보상해준다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의 피해에 대해 국가의 대리 보상은 싫고 기어이 상대국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식의 당사자 개인 감정은 이해할 만한 여지라도 있지만, 국가가 그런 개인 피해감정을 설득하지 못하고 국제분쟁으로 끌고가는 것은 국제관계에 무지한 하지하책”이라고 비난했다.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석 처장은 “무식한 탓에 용감했던 어느 대법관 한명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도 않고 또 외교부나 국제법학회 등에 의견조회도 하지 않은채 얼치기 독립운동(?) 하듯 내린 판결 하나로 야기된 소모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이 너무나 컸다”며 “이제는, 마치 우리가 아직도 일제 식민지배하에 있어서 독립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좌파들의 비참한 인식에서 좀 탈피하자”고 했다.

석 처장은 “일본에게 반성이나 사죄 요구도 이제 좀 그만하자”며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일왕을 두고 “일본 천황”이라 칭하며 “일본 천황이나 총리가 사죄 안한 것도 아니다. 여러 번 했지만 진정성 없다고 또 요구하고 또 요구하고 ... 100년 지나서도 바지가랑이 잡아당기면서 악쓸 것인가”라고 했다. 이 대목은 고 아베 전 총리가 했던 말과 거의 유사한 주장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이 얼마나 의젓하고 당당한가”라고도 썼다.

이에 민주당은 궤변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7일 저녁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브리핑에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떼쓰고 악쓰는 나라라니 모멸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원내대변인은 굴욕적인 강제징용 배상을 ‘의젓하고 당당한 해법’이라고도 평가한 석 처장 주장을 두고 “국가관과 역사관을 의심하게 하는 참담한 망언”이라며 “석 처장의 궤변은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찾는 일본 극우의 논리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고 지적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반성 없는 일본에 납작 엎드려 배상 책임을 스스로 포기한 윤석열 정부가 당당하다니 ‘당당하다’는 말의 뜻도 모르는 것이냐”며 “아무리 대통령의 40년 친구라도 대통령의 외교 참사를 감싸겠다고 대한민국 국민을 모욕할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 원내대변인은 “이 정도로 뻔뻔하지 않고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가 될 수 없는 것이냐”며 “석동현 사무처장은 국민에게 모욕감을 주는 망언에 대해 사죄하고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과 외교부의 강제징용 배상금 제3자 변제 해법을 두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은 “보편적 인권 문제인 강제징용 문제를 이리 피해자 의사 무시하고 처리하는 걸 보면 윤석열 정부는 우파, 보수적 가치하고는 거리가 멀고, 진보적 가치도 아니고, 실리적으로 현명해 보이지도 않는다”며 “도대체 이 결정을 한 사람들이나 옹호하는 사람들이나 그 정체가 뭔가”라고 되물었다.

이 전 의원은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굴욕적 양보를 안 하면 관계 진전이 안 되나”라며 “우리만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관계란 게 진전인가, 굴종이지. 무슨 미래지향적 관계 운운하나? 억지 그만부리길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이 전 의원은 “때론 미국에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우리 국익에는 안 맞다’, ‘우린 미국과는 동맹이지만 일본과 안보동맹까지 맺는 건 신중하겠다’고, ‘일본과의 신뢰는 형성되지 않았고 국민들도 동의하지 않는다’고”라고 도 썼다.

이 전 의원은 “꽉막힌 한일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정권바뀌어 우호적 협력관계로 바뀌었으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한가”라며 “사법부의 법적 판단을 왜 행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가? 대통령이 뭔데 국민인 피해자들의 권리까지 맘대로 뭉개는가? 헌법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국회 본관 앞 계단 1층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퇴장하라고 규탄하고 있다. 사진=YTN 현장 영상 갈무리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7일 국회 본관 앞 계단 1층에서 열린 비상시국회의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퇴장하라고 규탄하고 있다. 사진=YTN 현장 영상 갈무리

 

한편,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상시국선언에 참석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힘이 없더라도 힘을 합해서 윤석열 퇴장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내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아흔다섯이나 먹어가지고 지금까지 억울할 때는 이참이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양 할머니는 “어디 윤석열은 한국 사람인가, 조선 사람인가.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를 모르겠다”며 “이런 마음씨를 가지고 무슨 놈의 나라를 이끌고 대통령을 한다고. 하루속히 물러가라고 외칩시다”라고 촉구했다.

양 할머니는 “나 그런 돈은 굶어 죽어도 안 받는다”며 “더러운 돈은 안 받는다…누구를 위해서 싸웠겠나…윤석열 말은 다 내던져버리고 우리끼리 마음 합해서 나라를 이끌어나가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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