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대일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명령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배상금을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닌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부담하겠다고 공식 발표해 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우리 정부가 역사의 정의를 부정하고 일본에 굴종하는 길을 선택해 국민은 능멸당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기자들도 박진 외교부장관을 향해 “역사에 남을 해법”, “일본 피고 기업의 배상금 참여 견인하지 못한 반쪽짜리 해법”, “너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담긴 질문을 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오전 11시30분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내적 의견수렴 및 대일 협의 결과 등을 바탕으로 이같이 발표했다. 박 장관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 및 피해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또한, 이 재단은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동 판결금 및 지연이자 역시 원고분들께 지급할 예정”이라며 “이 재단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하며 미래 세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해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더욱 내실화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 재단이 부담할 재원과 관련해 박 장관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또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에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즉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대법원 판결 관련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부담한다는 제3자변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e 브리핑 영상 갈무리
▲ 박진 외교부 장관이 3월6일 오전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대법원 판결 관련 우리 정부 산하 재단이 부담한다는 제3자변제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e 브리핑 영상 갈무리

외교부는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질문을 세 개만 받겠다고 개수를 제한했다. 뉴스1 기자가 “정부의 이번 강제동원 해법 발표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결국 일본 피고 기업의 직접적인 배상금 참여는 견인하지 못했다,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해법에 대한 소견을 답해달라”고 했다. 이 기자는 “이번 해법 발표를 두고 대통령의 정상외교 일정에 짜 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외교부의 입장과는 달리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을 어떻게 보느냐고 질의했다.

박 장관은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또 국위에 걸맞은 우리의 주도적인 대승적인 결단”이라며 “피해자들에게는 실질적 대안을 제시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또 새로운 노력을 제시한 것”이라고 답했다. 박 장관은 “지금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외교, 또 경제, 또 안보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장기간 경색된 이런 한일, 경색된 관계를 방치하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 국민을 위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해법이 한일 양국에게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 미래로 가는 새로운 역사의 기회의 창이 되기를 바라고,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쪽짜리 해법이라는 지적에 박 장관은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에 박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일본의 기시다 총리도 같은 생각”이라며 “이것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해서 역사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 두 정상이 지난해 뉴욕과 프놈펜에서 두 차례 만나서 양국 정상이 강제징용 판결 관련해서 조속한 문제 해결의 의지를 표명한 바 있고, 이를 위해 외교당국 간의 협의를 가속화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저희 외교부와 대통령실은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KBS 기자가 “일본의 명확한 호응 조치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 한국 정부가 먼저 배상안을 발표했는데, ‘물컵의 반이 먼저 찼다’고 했는데, 나머지 반은 어떻게 채울 것이냐”, “재원과 관련해서 그럼 일본 기업도 배상에 확실하게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냐,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만 배상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고 확신하느냐”, “일본에 비해서 한국이 너무 많은 양보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은 어떻게 보느냐”고 질의했다.

이에 박 장관은 “한일 관계의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우리 정부의 그런 대승적인 결단에 일본 측이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사죄 그리고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로 호응해 오기를 기대한다”면서도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장관은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적인 발전을 위해서 양국 경제계가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일본 정부도 민간의 자발적인 기여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정치권도 비판을 쏟아냈다.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 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 53인은 공동명의로 이날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정부의 해법안을 강력히 규탄했다.

김상희, 김홍걸 의원 등은 “정부 발표는 ‘일본의 사죄와 전범기업의 배상없는 돈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받지 않겠다’는 양금덕 할머님 등 강제동원 피해자의 절규를 철저히 무시하고 능멸한 것”이라며 “강력히 규탄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 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 53인이 6일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정부의 해법안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국회 의사중계 시스템 영상 갈무리
▲‘일본의 강제동원 사죄와 전범 기업의 직접배상 이행을 촉구하는 의원모임’ 53인이 6일 오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우리 정부의 해법안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국회 의사중계 시스템 영상 갈무리

이들은 “진정한 사죄와 전범기업의 배상이 포함되지 않은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 발표는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 일본에게 머리를 조아린 항복선언으로 한일관계 역사상 최악의 외교참사로 기록될 것”이라며 “대일 굴욕 외교의 나쁜 선례로 남아 향후 군함도, 사도광산, 후쿠시마 오염수 등 산적한 대일 외교현안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으며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양산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제3자 변제 해법 어디에도 일본의 ‘성의있는 호응’ 조치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번 정부 발표로 더욱 오만해진 일본이 책임있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 또한 전무하다”며 “강제동원을 특정해서 사죄한 적 없는 일본의 과거 담화 계승으로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의 사죄를 대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함으로써 윤석열정권의 참담한 역사인식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방안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강제동원은 불법’이며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법치의 부정”이라며 “정신의 훼손이며,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비판했다.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 대신 ‘미래청년기금’ 조성 발상을 두고 이들은 “한국 청년을 일본의 적선 대상으로 규정한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욕보이는 기만이자 물타기용 꼼수”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피해국이 모든 책임을 떠안고, 가해국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제3자 변제 해법을 즉각 파기 △일본의 김대중 – 오부치 선언 계승을 ‘일본의 사죄로 수용한다’는 굴욕적 결정 철회 △대법원 판결을 국기문란, 삼권분립 훼손, 민주주의 파괴행위의 중단을 촉구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도 소통관 기자회견장 브리핑에서 “친일 정권의 본질을 보여준 최악의 굴종 외교에 국민은 치욕스럽다”며 “윤석열 정권이 역사의 정의를 부정하고 일본에 굴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국민은 능멸당했다”고 비판했다.

안 수석대변인은 “국민은 국익을 위한 결단이라고 강변하는 정부를 보며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일본에 무슨 약점을 잡혔길래 그렇게 굴욕적인 외교로 일관하는 것이냐. 스스로 친일 매국 정권임을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은 친일 굴종 외교를 즉각 중단하고 강제징용 피해배상 방안을 철회하라”며 “일본의 배상을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고 국민을 배신하는 정권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맹목적 반일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환영의 목소리, 아쉬움의 목소리, 국민께서 보내주신 다양한 목소리 하나하나 경청하겠다”며 “‘미래’와 ‘국익’을 향한 대승적 결단이자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향한 윤석열 정부의 강한 의지”라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일제의 잔혹한 역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맹목적인 반일 정서는 오히려 글로벌 외교 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하며 국익에 치명적 해악을 초래할 뿐 미래를 향하는 데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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