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고등학교 시절 학교 폭력으로 전학 조치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정순신 신임 본부장이 미성년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그의 연수원 동기가 소송대리인을 맡아, 아들 전학을 막기 위해 각종 법적 대응에 나섰다는 사실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미디어오늘은 정 본부장 아들 정아무개군(이하 정군)이 강원도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를 상대로 ‘전학 처분’이 골자인 재심결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 판결문을 입수했다. 정군과 학교 폭력 피해자 A군은 2017년 강원도 소재의 유명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1심인 춘천지법 제1행정부(재판장 성지호)는 지난 2018년 9월4일 정군 측 청구를 기각하는 원고 패소 판결을 냈다. 3개월 전에 이뤄진 정군의 전학 처분은 타당하다는 것이다. 본안에 앞서 제기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도 9월3일 기각됐다. 집행정지는 이후 1심 선고 뒤에도 신청하는데 이 역시 기각됐다. 정군은 미성년이기 때문에 부모인 정 본부장과 부인 조아무개씨는 법정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소송대리인은 정 본부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7기)인 판사 출신 송개동 변호사(법무법인 우송)였다. 

1심에 불복한 정군 측은 항소했으나 2심은 2019년 1월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그해 4월 정군 측 상고를 기각하며 재판을 확정했다. 정군은 2019년 2월 전학 조치된 뒤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알려졌다.

▲ 검찰 출신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 사진.
▲ 검찰 출신 첫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 사진.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상시적 언어폭력

입수한 판결문에 적시된 학교폭력 사안조사 보고서를 보면, 정군은 2017년 1학기 체력검사 이후부터 피해 학생인 A군에게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라는 언어 폭력을 반복했다. 한 학생은 정군이 A군의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빨갱이”라는 말을 쓴 적 있다고 증언했다.

보고서에 기록된 학생들 증언과 진술서에 따르면, A군이 점심식사를 위해 정군의 식탁으로 와서 앉으려고 하면 “더러우니까 꺼져라”라며 자리에서 내쫓거나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등 무시하는 발언을 퍼부었다.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A군 증언)라는 말도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줬다.

정군과 A군은 토론 동아리 회원이었는데, 정군은 A군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표결에 부쳐 동아리에서 내보내기도 했다. 후배들 앞에서 A군이 말하려고 하면 의도적으로 “돼지는 가만히 있어”라며 말을 자르기도 했다. 정군이 평소 아버지 자랑을 하며 “내 아빠 아는 사람 많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 받고 하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는 증언도 적시돼 있다. 

당시 A군은 정군과 또 다른 가해자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온 몸의 떨림 현상, 즉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증세로 30%였던 내신이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하락했다.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자살 시도까지 이어졌다.

A군은 2018년 3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죽을 생각 밖에 안 들었다”며 “힘든 학교인데 그런 것까지 당하니까 그냥 내가 참고 전학 갈까 생각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설득해주셔서 신고하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정군은 “말이 많이 거칠었던 것 같다”며 “아무 말이나 막 던지고 했던 점 죄송하다. A군에게 돼지, 빨갱이라고 불렀다”고 했으나 자치위원은 “가해 학생이 깊이 반성하고 진실을 모두 말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너무 유감스럽다”고 했다.

“출석정지 받으면 수업 못 듣게 돼” “부모가 선도 막아” 

판결문에 적시된 피고(강원도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정군의 어머니 조씨가 ‘서면사과, 교내봉사 40시간, 출석정지 7일, 특별교육이수 10시간, 보호자 특별교육이수 10시간 등 처분 조치를 이행했느냐’는 위원 질의에 “교내봉사하고 출석정지 부분은 기말고사 바로 앞과 뒷부분이다. 그걸 다 받으면 (정군은) 12일의 수업을 못 듣게 되니까 완전히 엉망이 돼버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는 미뤘다”고 말하는데, 이에 위원은 “정군이 처분받은 12일 동안 그것을 이행하면 고등학교 생활의 마비가 온다, 흔들린다고 말씀했는데 피해학생 A군은 1학기 내내 학교를 못 나온다”고 지적했다.

위원이 조씨에게 “의견서 제출하신 것 읽어봤다. 아마도 잘못했다고 안 하시는 것 같다. 반성한다는 것은 의례적이고 다 이유가 있어 그렇게 됐다고 읽힌다”며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은 정말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학교 교사도 “사실 우리는 정군이 반성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군이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기가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피해 학생(A군) 같은 경우에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봐서, 저는 굉장히 많은 충격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이어 “우리도 정군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실 부모님께서 많이 막고 계신다”며 “우리가 선도하려고 해서 정군이 1차로 진술서를 썼는데 바로 부모님께 피드백을 받아서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해서 다시 교정을 받아오는 상태고, 부모님을 만나고 오면 다시 바뀌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도 교육적 조치를 최대한 강구하겠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 판단도 대동소이했다. 재판부는 “원고(정군)는 피해 학생(A군)에게 기숙사 방이나 식당 등에서 ‘더러우니까 꺼져라’,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 등과 같이 단순히 친구들 사이에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피해 학생 인격과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했다”며 “특히 원고는 후배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피해 학생에게 ‘돼지’라는 말을 섞어 모욕적인 발언을 하면서 피해 학생 말을 끊고, 피해 학생의 배구부 활동에 대해서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와 피해 학생은 기숙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원고가 친구들 및 후배들 앞에서 지속적으로 피해 학생에게 모욕적이고 무시하는 발언을 할 경우 피해 학생이 입는 정신적 고통과 상처는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해 학생에 대해 한 행위는 피해 학생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유발시키고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주는 잔혹한 행위이고, 나아가 그 대부분이 친구들이 보는 기숙사 방이나 식당에서 이뤄졌으며, 일부 학생들은 원고의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따라서 학교 폭력의 정도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모습.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2대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 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모습.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를 2대 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원고의 학교 폭력 행위는 상당 기간 계속돼 결코 우발적이었다고 볼 수 없고, 이런 행위는 다른 학생에게도 영향을 미쳐 또 다른 가해 학생까지 피해 학생에 대해 학교 폭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인다. 피해 학생은 이로 인해 다른 교우 관계에도 큰 악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고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피해 학생에게 학교 폭력을 행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큰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원고는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해 학생에게 직접 진심 어린 사과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서면 사과 조치에 따라 학교에 제출한 사과문 역시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위 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정군 측은 자신에 대한 “선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전학 조치를 내린 것이 가혹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는 사건 발생 이후 ‘별명을 부른 것에 불과하다’, ‘피해 학생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 등의 이유로 학교 폭력을 부인하고 있고, 가장 경한 조치인 서면사과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학교 자치위가 기말고사 일정을 고려해 ‘시험 전 학교 봉사와 시험 후 출석 정지 조치’를 결정한 데 대해 정군 측이 학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민사상 가처분을 통해 학교봉사 조치 이행을 유예한 것도 지적하며 학교가 정군에 대한 처분을 감경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적 고교생이라면 이 정도로 같은 피해 입는다 보기 어려워” 

정군 측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논리를 폈다. “피해 학생이 (폭언에) 이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채 웃어넘겨 정군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문제가 된 정군 발언은 당시 상황이나 대화 상대방에 따라 달리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피해 학생이 정군의 기숙사 방이나 밥 먹는 곳으로 자주 찾아와서 3~4회 정도 ‘꺼져라’는 취지로 말을 한 것뿐이다”, “피해 학생이 지나치게 말을 길게 해 중간에 말을 끊은 것뿐이다” “피해 학생이 주장하는 언어폭력 정도로 고등학교 남학생이 일반적으로 피해 학생과 같은 피해를 입는다고 보기 어렵다”, “본인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피해 학생 상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군의 언어폭력과 피해 학생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도 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고 정군의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정순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KBS, 한겨레 등 언론을 통해 “자식의 일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피해 학생과 그 부모님께도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해명했다. 그는 “아이 잘못이 있어서 해결하는 과정이 있었고, 당시에는 서로 합의했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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