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피소된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의 취재에 대해 “헌법이 보장한 음성권과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 불법 행위”라고 판단했다. 

이는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 김익환 부장판사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가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와 이명수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백 대표와 이 기자가 공동하여 김씨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이유다.

이명수 기자는 2021년 7월6일부터 12월11일까지 김씨와 48차례 통화를 하면서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 7시간 50분 분량의 통화 녹음이다. 이 기자로부터 녹음 파일을 받은 MBC 시사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이듬해 1월16일 일부 내용을 보도했고 서울의소리는 유튜브를 통해 녹취록을 공개했다. 

통화 녹취에는 △“우리는 그렇게 무속인 안 만나” 등 무속 논란에 대한 김씨의 견해 △학력 위조 논란을 제기한 비판 유튜버를 겨냥한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 등 발언 △미투(Me Too)에 부정적 견해를 밝히며 자신과 윤 대통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지지한다는 발언 △조국 수사를 더불어민주당과 김어준·유시민 등 진보 인플루언서들이 키웠다는 주장 등이 담겨 당시 언론과 국민 이목이 집중됐다. 

▲ 2월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대한민국 불교도 신년대법회에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씨가 참석해 합장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2월6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불기 2567년 대한민국 불교도 신년대법회에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씨가 참석해 합장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씨는 7시간 통화 녹취록이 공개되자 백 대표와 이 기자를 상대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서울의소리가 자신의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하고 일부를 공개한 행위는 음성권, 인격권, 명예권,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 불법 행위라는 주장이다. 반면 서울의소리 측은 “처음부터 이명수 기자가 언론사 기자임을 밝히고 김씨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기 때문에 사적 대화를 녹음한 것이 아닌, 공적 취재 활동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사건을 심리한 김익환 부장판사는 10일 판결문을 통해 “음성권은 헌법 제10조에 의해 헌법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라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동의 없이 상대방 음성을 녹음하고 이를 재생, 녹취,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설령 그것이 형사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해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상 보장된 음성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해 민사상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김 판사는 △첫 통화인 2021년 7월6일 이명수 기자가 취재 목적으로 김씨에게 전화해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라고 밝히면서 통화 가능 여부를 묻자 김씨가 당분간 언론 인터뷰를 안 한다며 취재 거부 의사를 밝히고 통화 내용을 기사화하지 말 것을 요청했고, 이 기자도 기사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점 △그 후 여러 차례 통화에서 김씨는 수차례에 걸쳐 이 기자와의 대화가 취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대화 내용을 비밀로 할 것을 당부했고 이 기자도 동의한 사실 △특히 2021년 11월15일자 통화에서 김씨가 이 기자에게 녹음 여부를 물으며 녹음을 하는 경우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하자 이 기자가 녹음을 안 한다고 대답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이에 비춰보면, 서울의소리 측이 김씨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하고 공개한 행위는 김씨의 음성권, 사생활의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김 판사는 △서울의소리 측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 배우자인 김씨가 취재나 인터뷰를 거절하자 사적인 친분을 쌓은 후 이를 이용해 김씨 발언을 녹음할 의도를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 △이명수 기자가 첫 통화부터 장기간에 걸쳐 김씨 동의 없이 녹음을 했는데도 녹음 사실을 김씨에게 소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통화 내용을 비밀로 하겠다고 하거나 녹음하지 않는다고 한 점 등에 비춰 “피고들이 설령 취재 활동이라는 정당한 목적으로 녹음을 했더래도 그 수단과 방법의 보충성과 상당성을 벗어나 사회 상규에 위배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해 10월 경기도 양평 안데르센 메모리얼 파크를 찾아 묘역에 참배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씨가 지난해 10월 경기도 양평 안데르센 메모리얼 파크를 찾아 묘역에 참배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사진=대통령실

다만 김 판사는 △서울의소리가 김씨 발언 내용을 그대로 녹음해 그 가운데 일부를 공개했다는 점 △김씨는 대선후보 윤석열의 배우자로서 언론을 통해 국민 관심을 받고 있는 공적 인물이라는 점 △김씨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관한 견해와 언론관·권력관은 유권자의 광범위한 공적 관심사로서 공론 필요성이 있고 국민 알 권리 대상이라는 점 △공개된 통화 녹취는 개인 사생활에만 관련된 게 아니라 공적 영역에 관한 내용이 대부분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동의 없는 통화 녹음 및 공개가 김씨의 음성권과 사생활 비밀 및 자유를 침해한 것은 맞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은 인정된다면서 이를 위자료 산정에 감안한다는 취지다. 김 판사는 “피고들이 원고에게 배상할 위자료는 1000만 원으로 정한다”고 판결했다. 소송비는 김씨가 90%, 서울의소리 측이 10%를 부담하라고 했다. 

판결 직후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김씨는 배상금 1000만 원을 기부할 계획이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성금이나 동물권 보호 단체에 기부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반면, 백 대표는 선고 직후 “김 여사가 입막음용으로 소송을 낸 것 같다. 항소해서 대법원까지 갈 생각”이라고 밝힌 뒤 지난 17일 김 판사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서울의소리 측 소송대리인 류재율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에 “실제 판결 주문에는 원고인 김 여사 측이 피고인 서울의소리 측에 소송 비용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는 비율로 따지자면, 원고가 90% 패소했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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