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상대로 한 청탁·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등을 명목으로 부동산 건설업자에게 4억3500만 원을 받은 전직 국민일보 간부가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해 판사는 보석을 유지하고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창원지방법원 형사2단독 양상익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청탁금지법 및 특정범죄가중법 위반(알선수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민일보 전직 사회2부 소속 이아무개씨(53)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4억3500만 원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건설업자 최아무개씨(69)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이씨 아버지 소개로 알게 된 사이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의 한 주택조합 사업 전반을 대행하던 최씨는 지난 2016년 5월 창원시에 아파트 건설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접수했다. 최씨로선 원활한 사업 진행과 금융권 대출 이자 부담 축소 등을 위해 신속한 시의 허가가 필요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최씨는 창원시 출입기자로서 수년 간 활동하며 공무원들과 다양한 인맥을 쌓은 이씨가 도움이 될 거라 판단, 2016년 5월 말 이씨에게 “현 창원시장이 허가를 잘 안 내준다는 소문이 있다. 허가가 신속히 나고, (아파트) 층수가 많이 깎이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취지로 부탁했다. 이씨 역시 “내가 창원시청 윗사람들을 잘 알고 있으니 좀 기다려 보라”며 “내가 윗사람들에게 부탁해서 빨리 허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 다만 허가가 나면 나중에 내게 비용을 좀 챙겨주면 된다”고 화답했다.

이씨는 며칠 뒤 최씨에게 “내가 알아봤는데 층수도 안 깎이게 해준다고 이야기가 다 됐다. 허가는 걱정하지 말고 내 말만 믿고 있으면 된다”며 공무원을 상대로 청탁·알선 행위를 했다는 취지로 말했고, 그 무렵 창원시장을 직접 만나 청탁했다는 점을 암시하면서 “내가 밥도 먹고, 차도 같이 마시고, 이야기가 다 됐다”는 취지로 안심시켰다.

▲ 공무원을 상대로 한 청탁·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등을 명목으로 부동산 건설업자에게 4억3500만 원을 받은 전직 국민일보 간부가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Gettyimages
▲ 공무원을 상대로 한 청탁·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등을 명목으로 부동산 건설업자에게 4억3500만 원을 받은 전직 국민일보 간부가 징역 3년의 실형을 받았다. ©Gettyimages

실제 창원시는 2016년 7월 최씨가 깊게 관여된 주택조합의 사업계획을 세대수 23세대(30층 538세대 신청, 28층 510세대로 건축 심의, 28층 515세대로 사업 승인)만 축소 시켜 신속히 승인했는데, 이는 최씨가 만족할 만한 내용이었다. 최씨도 이씨 역할로 예상보다 꽤 빨리 사업계획 승인이 나왔고 건축 심의보다 세대수가 축소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최씨에게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청탁·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로 3억 원 상당을 달라고 요구했다. 최씨가 한 번에 거액을 주는 것에 난색을 표하자 이씨는 “밥값, 술값 등 내 생돈이 들어갔는데 노력의 대가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거듭 대가 지급을 요구했다. 결국 이씨는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총 7회에 걸쳐 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명목으로 최씨에게 3억4000만 원을 받았다.

이뿐 아니다. 이씨는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총 3회에 걸쳐 은행 중도금 대출 관련 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명목으로 최씨로부터 9500만 원도 받았다. 최씨는 주택조합 사업과 관련해 중도금 대출을 A은행 등 몇 군데 은행에 신청했는데 대출이 늦어지고 있었다. 언론인 이씨는 “내가 도와줄 테니 나중에 대출이 되면 술값 등에 대한 대가를 좀 달라. 내가 A은행장과 윗사람들을 잘 아니까 얘기해서 대출이 빨리 되도록 해주겠다”며 A은행 관계자들을 상대로 대출 사무에 관한 알선 행위를 해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씨는 2017년 8월 최씨 부탁을 들어주고자 경남도청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친분이 생긴 A은행 경남도청지점장에게 “최씨 대출 건을 잘 좀 봐 달라”는 취지로 부탁했고, 최씨를 대동하여 A은행 창원영업부장을 찾아서는 “여기 계신 최씨가 내 친구의 아버님이다. 아주 신망 있는 기업을 운영하시고 현재 주택조합 시행사를 운영 중인데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이씨는 A은행 창원영업부장에게 중도금 대출 승인을 독촉하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대출 승인을 재촉했다.

A은행은 결국 2017년 10월 주택조합 관련 중도금 대출을 승인키로 하고 대출 협약서를 작성했다. 이에 이씨는 “중도금 대출이 실행됐으니 로비 대가로 1억 원을 달라”고 요구하며 “나도 들어간 비용이 있으니 1억 원 정도는 주셔야 할 것 같다. 접대하는데 술값, 밥값으로 많이 사용해서 1억 원으로도 남는 게 없다”고 했다. A은행장 및 A은행 직원 등을 대상으로 한 청탁·알선 행위에 대한 대가 지급을 요구한 것. 결국 이씨는 A은행 중도금 대출 관련 알선 행위 대가로 최씨로부터 9500만 원을 받았다.

이씨는 주택조합 사업계획 승인이나 중도금 대출 건은 애초부터 별 문제 없이 이뤄질 일이기에 청탁과 알선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 사이 오간 거액 역시 최씨가 2017년 4월경 이씨로부터 3만여㎡의 임야를 15억 원에 매수하기로 한 매매계약의 매매대금이라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상익 판사는 “피고인들(이씨·최씨) 사이 임야에 관한 매매계약서는 15억 원이나 되는데도 작성되지 않았다”며 “2017년 4월17일자 부동산 매매계약서가 존재하지만 이 계약서는 피고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려 하자 2022년 3월초 날짜를 소급해 작성한 계약서”라고 밝혔다. 자신들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자 뒤늦게 가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최씨도 당초 이씨에게 건넨 거액을 ‘임야 매매대금’이라 진술했으나 가짜 계약서라는 사실이 발각된 후에는 일관되게 ‘알선과 청탁의 대가’라고 진술했다.

양 판사는 언론인 이씨에 대해 “피고인의 알선수재 범행은 공무원과 금융기관 임직원이 수행하는 직무의 공정성과 불가매수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훼손시키는 것으로 죄책이 무겁다. 또 피고인이 수수한 금품이 매우 많다”며 불리한 정상을 밝혔다. 다만 △이씨가 공무원이나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위법하거나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청탁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 △동종 범죄 전력이나 벌금형보다 무겁게 처벌받은 전력은 없다는 점 △언행과 처신을 잘못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반성하고 있다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신문 구독자 모집을 대가로 경찰 간부와 수백만 원을 주고받은 혐의가 인정돼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씨의 금품 수수 사건은 언론계에 큰 충격을 줬다. 이씨는 현직 기자 신분으로 지난해 5월 구속됐고 국민일보는 그해 6월 이씨를 해고하고 사장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경남도청 중앙지 출입기자단도 공식 사과문을 통해 “개인적 일탈이었다고 해도 경남도청 중앙지 출입기자단 회원의 한 명이 일으킨 일이기 때문에 기자단 모두가 도의적으로 깊은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이씨는 경남, 부산, 울산 지역의 모든 취재를 총괄하는 국민일보 경남지역 본부장으로 2008년부터 경남도청 기자단 간사로 활동하며 경남 18개 시·군청, 경남경찰청, 검찰청 등을 출입한 기자였다. 이 때문에 기자의 출입처 유착 및 기자단의 정보 독점, 언론인의 이해충돌에 관한 비판이 언론계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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