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다음 소희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아빠, 나 콜수 못 채웠어.”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에 등장한 메시지다. 영화는 인터넷과 IPTV 해지를 원하는 고객에게 역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해지방어 부서’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홍수연 학생이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한다. 이 메시지는 영화 속 소희(김시은 배우)의 모티브가 된 홍수연 학생이 아버지에게 보낸 내용과 동일하다.

이 사건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회사가 직원들 입단속을 했지만 노조와 시민사회의 공론화와 언론의 집요한 취재가 맞물려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소희의 상황은 실제 사건의 인물이 처한 노동 환경과 대부분 일치한다. 원청 LG유플러스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도 같다. 

기사 한줄 토대로 추적, “학교마다 전화 돌려 수소문”

현재 2017년 콜센터 실습생 사망 사건 기사는 포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까지 보이지 않는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 2017년 1월 사고가 발생했지만  어느 사업장인지, 어떤 경위인지, 유족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LB휴넷은 ‘무노조’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청소년 인권 운동 활동가이기도 했던 강문식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은 “학생 한 명이 투신했다는 기사가 단신으로 나왔다”며 “그러나 신원이나 학교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아서 학교에 다 전화를 돌려 수소문했다”고 했다. ‘사망한 학생이 어느 업체에서 일했냐’고 물었을 때 대부분은 ‘무슨 소리냐’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반면 한 학교에선 ‘지금은 대답할 수 없다’고 답하면서 학교를 특정할 수 있었다. 희망연대노동조합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의 도움을 받아 고인의 이름과 유가족의 집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사고 후 한 달이 흐른 시점이었다.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언론의 관심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연재기사를 통해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조명했던 허환주 프레시안 기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3월 초에 기자들을 불러서 전북에서 간담회를 했는데 잘 안 됐다. 2017년 3월 당시 탄핵 정국이었고,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둔 시점이다 보니 기자들이 대부분 오지 않았다. 참소리 문주현 기자와 저 두 명 뿐이었다”고 했다.

허환주 기자는 콜센터 현장을 취재하기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사무실 들어가서 한마디 들어보려고 하면 다들 할 말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자기가 얘기해봤자 어떤 도움이 될지 확신도 없었으니 얘기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며 “그러던 중 회사가 고인을 모독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 전현직 직원들이 취재에 응하기 시작했다. 전북CBS에서 첫 기사를 크게 내서 반향이 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이 사건 취재 과정을 담은 허환주 기자의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에 따르면 LB휴넷은 고인이 가정불화와 자해 이력이 있고 산재처리가 이뤄지지 않자 유족이 기자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소희가 처한 상황, 현실과 판박이

영화 속 소희와 현실 속 홍수연 학생의 상황이 얼마나 비슷했는지 묻자 허환주 기자는 “놀랄 정도로 거의 다 똑같았다”고 했다. 특히 영화 후반부 형사 오유진(배두나 배우)이 콜센터, 학교, 교육청 등을 찾아다니며 진상을 파헤치는 흐름은 취재 기자의 동선과 유사하다. 허환주 기자는 “영화 나오기 전에 감독님이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다. 책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하셨다”고 했다.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영화 도입부에 교사는 특성화고 학생인 소희에게 ‘대기업 사무직’이라고 회사를 소개한다. 소희가 “하청 아니냐”고 묻자 교사는 ‘급’이 다르다고 답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원청 ‘한국통신S플러스’는 ‘LG유플러스’다. 고인은 LG유플러스 콜센터 업체 LB휴넷에서 일했다. LB휴넷은 협력업체지만 단순 하청이 아닌 LG그룹 일가가 운영하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속 노동 환경은 실제 상황을 거의 그대로 구현했다. 소희는 ‘해지방어’ 부서에 발령받아 일했다. 콜센터 업무 자체가 성추행과 폭언 욕설 등에 취약하지만 ‘해지방어’는 ‘욕받이’로 통할 정도로 어려운 업무다. 해지를 원하는 고객들은 불만이 있거나 화가 난 경우가 많은데 이를 상대해야 하는 데다 오히려 이들에게 위약금을 강조하고 혜택을 제시하며 인터넷 유료방송 등 상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 홍수연씨가 아버지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 홍수연씨가 아버지와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불만을 품고 해지하려고 전화한 사람을 설득해서 다시 사용하도록 마음을 돌려놓는 거잖아요. 현장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세이브팀(해지방어) 일은 경력자가 해요.”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에 나온 LG유플러스 콜센터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의 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제 홍수연 학생은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남아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현실이 영화보다 더욱 가혹한 면도 있다. 홍수연 학생의 문자메시지를 보면 ‘나 오늘 귀책 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귀책’, 그러니까 실수로 해지 방어를 못하게 되면 자신의 녹취를 듣고 받아 쓰는 업무를 시키거나, 상담을 잘 한 다른 직원의 녹취를 듣게 했다. 

▲ 실제 LB휴넷 사무실 모습. 팀별 실적을 게시하고 있다.
▲ 실제 LB휴넷 사무실 모습. 팀별 실적을 게시하고 있다.

영화 속 콜센터는 성과 지표를 게시해놓고 경쟁을 부추기는데 실제 사무실 역시 해지 등록율을 게시해놓고 있었다. 홍수연 학생은 이중계약서를 써 160만 원 대 월급을 받는 것처럼 계약서에 쓰여 있지만 실제론 110만 원 밖에 못 받거나 이보다 적게 받을 때도 있다는 사실도, 월급이 적게 나와 항의를 했는데 그 다음달에 준다는 답을 들은 적 있다는 점도, 교사는 현장을 점검해야 하지만 이를 태만히 했던 모습까지도 영화와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사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소희에 앞서 소희가 소속된 팀의 팀장이 목숨을 끊는데, 2014년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현실에선 3년의 시차가 있어 두 인물이 같은 시간대에 일하진 않았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실제 이 직원은 노동착취와 소비자 기만 등 문제를 폭로하는 투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고용노동부는 이 업체를 초과근무수당 미지급 등의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리했다. 

강문식 정책국장은 “영화에선 2014년 당시 사고 가족이 업체와 합의한 것처럼 나오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며 “이 팀장의 아버지께서는 계속 노력하셨고, 2019년 산재를 인정받게 된다. 홍수연 학생 사건 대응이 이뤄지면서 팀장에 대한 산재신청 등 논의가 이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청 LG유플러스는 끝까지 노코멘트였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영화의 후반부 형사 오유진은 분노한다. 콜센터도, 원청도, 학교도, 교육청도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기 때문이다. 처음 LB휴넷은 연장 근무를 강요한 적 없다는 입장이었다. 진상이 알려지자 5개월이나 지나서야 과도한 노동, 이중계약서, 감정 노동과 실적 경쟁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정작 이 같은 경쟁을 부추긴 원청 LG유플러스는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허환주 기자는 “원청은 끝까지 노코멘트였다”고 했다. 영화 속에선 이 같은 원청의 태도가 실질적으로 관리를 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하는 본사 직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학교와 교육청은 홍수연 학생의 죽음을 ‘실족사’라고 했다. 전북교육청은 홍수연 학생이 과거 자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개인 탓으로 돌렸다. 강문식 국장은 “한 장학사가 실제로 학생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죽음이라고 했었는데 이 대사가 영화에 거의 그대로 나왔다”고 했다.

‘다음 소희’ 막으려면

콜센터 노동과 특성화고 문제. 사고 이후에도 열악한 노동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2021년 7월 월간 노동리뷰의 ‘콜센터 노동의 취약성’ 보고서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감정노동, 실적 압박과 노동통제, 열악한 노동환경과 불안한 고용구조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지난 1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인권개선 방안마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성화고 학생들의 제도적 구조적 학습권 침해, 현실 실습제도가 노동시장 이행에 미치는 유의미한 효과 관찰 전무, 특성화고 학생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조사와 자료 미흡 등 문제가 나타났다.

허환주 기자는 “콜센터의 경우 일부 소소한 변화는 있다. 과거엔 점심시간조차 없었는데, 현재 통신사는 점심시간에는 콜을 받지 않는다. 전화를 할 때 욕설을 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메시지가 나온 것도 홍수연 학생 사건 이후 개선된 점”이라며 “콜센터는 이런 소소한 변화라도 있었지만 특성화고 문제는 사실상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문식 국장은 “이후엔 ‘안전 문제’만 계속 강조된다. 큰 사고만 안 터지면 된다는 식의 태도다. 본질적으로 노동 시장 측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땜빵식 접근만 이뤄진다”고 했다. 그는 “교육부 공식 통계인 ‘하이파이브’(교육부 산하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포털 사이트 통계)를 교육부 스스로 신뢰하기 힘들다고 한다.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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