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등 11인이 지난달 발의한 ‘댓글 국적 표기법’에 대해 사단법인 오픈넷이 “국경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여론’은 특정 국가의 국민만이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모든 사람의 의견 개진을 허용한 이상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어떠한 이슈에 대해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제되는 사실”이라며 해당 법안은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결여된 법’이라고 비판했다.

9일 오후 오픈넷은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일명 ‘댓글 국적 표기법’인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반대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화면 갈무리.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화면 갈무리.

지난달 27일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등 11인은 ‘정보통신망법’에 ‘이용자의 정보통신망 접속지 기준 국적 등 표시’ 조항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신설하자는 조항의 내용을 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서 제공하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유형별 일일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이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되는 자는 이용자의 이용 및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국적 내지 국가명, 우회 접속 여부를 표시할 의무가 있다. 또 관련 자료의 보관 및 주무관청에 대한 제출의무를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김기현 의원 등 11인은 해당 개정안 제안 이유에 대해 “최근 정보통신망에 접속하는 서버를 해외에 근거하도록 한 후 대한민국 내 특정 현안 내지 이슈에 대한 여론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직하기 위해서 해당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비판적인 댓글을 조직적으로 작성하는 집단 내지 개인들이 생겨나면서 온라인 여론이 특정 국가 출신 개인 내지 단체 등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부당하게 유도, 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그러자 오픈넷은 “사람의 모든 대외적인 의사 표현은 자신의 의사를 사회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목적, 즉,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개인 혹은 다수가 의사표현을 강하게 혹은 집중적으로 한다는 이유로 이를 ‘여론 조작’이라고 명명해 금기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의미를 몰각시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오픈넷은 이어 “소비자 운동 등의 집단 운동이나 단체 행동, 집회·시위 모두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의사 표현 행위다. ‘여론 조작의 방지’가 입법 목적으로 정당화되고 이를 위해 표현 주체의 정보를 추적, 공개하는 내용의 규제가 허용되는 경우, 비단 국적뿐만 아니라 표현 주체가 속한 집단, 지역, 성별, 세대, 정당 등의 개인정보도 공개하도록 강제하거나 수사기관이 취득하도록 허용해 공론장에 대한 국가감시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했다.

오픈넷은 “자국 내에 위치한 사람들의 의견만이 진정하고 건전한 여론이라고 정의할 수도 없으며 특정 국가 출신 개인 내지 단체 등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부당하고 유도, 조작되지 않은 대한민국 내 건전한 민주적 여론이란 그 실체도 불분명하다. 나아가 ‘작성자가 정보통신망에 접속한 장소의 국적 내지 국가명이 표시되지 않아 타 이용자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특정 이념 내지 입장을 사실상 강요받거나 그러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도 추측에 불과한 증명되지 않은 해악”이라며 “본 개정안은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부터가 불분명해 입법 목적의 정당성부터 결여된 규제”라고 비판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이용자의 우회 접속 여부를 표시하라는 것에 대해 오픈넷은 “VPN(가상 사설망)을 이용하는 접속자들을 식별해 표시하라는 것인데 이는 기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대형 VPN 업체들이 자주 이용하는 IP 주소들을 사전에 수집해 게시물 접속 IP들과 대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VPN 업체를 이용하는 접속자들의 경우에는 우회 접속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개정안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고도 지적했다. 오픈넷은 “본 개정안은 이러한 불명확한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인터넷 이용자들의 접속지와 우회 접속 여부를 추적, 수집, 공개하는 조치를 취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해 인터넷 이용자들이 자신의 위치 정보, 국적과 같은 개인정보를 추적, 수집, 공개당하지 아니할 자유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접속지 정보와 우회 접속 여부 등의 통신 정보를 파악당하지 아니할 자유인 통신의 비밀과 자유, 자신의 개인정보를 추적, 공개 당하지 아니하고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오픈넷은 “본 개정안은 또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국적(국가명) 표시의 근거자료, 온라인 댓글 등의 근거자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며 “이용자들의 접속지 등의 개인정보와 댓글 등 이용자들이 작성한 표현물의 내용까지 연계하여 사기업이 파악, 관리하도록 하고 이를 정부에 보고, 제출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는 정부와 사기업에 의한 광범위한 인터넷 공론장에 대한 감시를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이와 같은 내용의 규제는 정부 비판적 표현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위험이 높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오픈넷은 “해당 법안은 정부와 사기업의 광범위한 인터넷 공론장 감시를 부추기는 법안으로써 철회 혹은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26일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여론 조작으로 국민을 선동하는 세력이 대한민국을 흔들게 놔둘 수 없다”며 “포털 댓글 작성자 국적표기. 포털 댓글 VPN(가상 사설망) 접속 차단”을 제안했다. 2020년 총선을 전후해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인들이 네이버에서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차이나 게이트’라는 단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국민의힘의 전신인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포털 댓글 국적 공개’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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