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에게 참으로 추운 네 번째 겨울이다. 그래도 많은 분들 덕분에 꿋꿋하게 버텨온 것 같다. 우리 가족 옆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늘 함께할 거라고 약속드린다.” (고 이재학 PD 누나 이슬기)

고 이재학 PD 3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3일 오후 7시, 충북 청주 민주노총 충북본부 대회의실에서 이 PD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제를 열었다. 이 PD의 방송노동 현장을 기록한 추모집 <안녕, 재피> 출판기념회도 함께 열렸다.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 PD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 사진=윤유경 기자.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 PD 누나 이슬기씨와 동생 이대로씨. 사진=윤유경 기자.

CJB청주방송과 부당해고를 다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무늬만 프리랜서’ 고 이재학 PD는 3년 전 ‘후배들을 위해서 중요한 선례를 만들겠다’며 소송을 결심했다. 그가 떠난 이후 이 PD 노력에 힘을 얻어 자신의 권리를 외친 방송계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나왔고, 특히 방송작가를 중심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등 또 다른 선례들이 쌓이는 중이다.

그럼에도 방송계의 뿌리깊은 관행과 구조적 문제 속 갈 변화는 더디고 갈 길은 멀지만, 참석자들은 이 PD를 기억하며 방송계 제작현장에 있는 많은 프리랜서들이 인간다운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하겠다는 뜻을 모았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이 PD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준비했다. 이 이사장은 “이재학 PD 당신을 기억합니다. 먼저 떠난 이한빛 PD와 지난해 그대들 곁으로 간 이힘찬 SBS PD와 만나 근심 걱정 없는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나요. 그대가 14년간 일했던 CJB 청주방송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하고 싸우다가 우리 곁을 떠난 후 우리는 그대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고 그대의 억울한 죽음을 진상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싸우고 노력해왔어요. 그대들처럼 방송노동 현장의 구조적 문제에 절규해 세상을 떠나는 청년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고, 그대들을 기억하고 더 나은 방송노동 현장과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기 모였네요”라고 말했다.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윤유경 기자.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윤유경 기자.

춘천MBC에서 11년 간 정직원과 다름없이 일하다 부당해고를 당해 다투고 있는 김남헌 프리랜서 PD도 추모제에 참석했다. 김 PD는 “부당해고를 당하고 나오니, 꼬리표가 세게 달렸다. 어디든 갈 수 없다는 걸 몇 번 겪고 나니 공황장애가 왔다”며 “‘내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무섭기는 하지만 그래도 와중에 이대로씨(이재학 PD의 동생)가 가끔 전화를 줘서 정말 큰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방송 노동 현장의 뿌리깊은 관행과 위선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고 그런 것들을 바꾸겠다고 강령에 담고 있는 언론노조는 얼마나 자기 책임을 이행하고 있는가에 대해 마음이 무겁다”며 “비정규직 노조를 언론노조 안에 구축해서 개별 노동자들의 파편화된 싸움이 아니라 산별노조 힘으로 구조적 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거름들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PD 동생 이대로씨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방송계에 많이 있는데 물론 작게나마 변하기는 했지만 아직 변한게 뭐가 있을까 싶다”며 “사용자들이 꼼수 부릴 수 있게 힌트를 많이 준 게 아닌가 생각도 드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실질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 3일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실에서 고 이재학 PD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윤유경 기자.
▲ 3일 민주노총 충북본부 사무실에서 고 이재학 PD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윤유경 기자.

언론계를 넘어 노동계 등 다수 시민사회 인사들은 이날 이 피디의 3주기를 추모하는 메시지를 영상으로 보냈다. 고 이재학PD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유경 노무사, 권두선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장과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YTN ‘무늬만 프리랜서’ 백승한 편성 PD, 김정은 MBC 방송작가 등이 이 PD를 기억하겠다고 전했다. 

노동위원회가 CBS 직원이라고 판단했지만 회사가 여전히 프리랜서라고 주장해 다투고 있는 최태경 아나운서는 영상을 통해 “사실 지금도 방송계는 너무 어렵고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다.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더 힘든 상황”이라며 “아직 어떤 것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분들과 함께 싸운다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고 이재학 PD도 함께 하고 계실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 CJB 청주방송 노동자 이재학 PD 3주기 추모 영상. 
▲ CJB 청주방송 노동자 이재학 PD 3주기 추모 영상. 
▲ CJB 청주방송 노동자 이재학 PD 3주기 영상. 
▲ CJB 청주방송 노동자 이재학 PD 3주기 추모 영상. 

 

이재학 PD가 남긴 이야기, 수많은 이재학들을 위한 <안녕, 재피>

2부에서는 <안녕, 재피> 출판기념회가 진행됐다. ‘재피’는 동료들이 이재학 PD를 부르던 별칭이었다. 이슬기씨는 추모집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재학 PD처럼 외롭게 싸우고, 하루하루 이 악물고 버티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위로이자 큰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이 PD의 친구들, 가족, 방송 노동자,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의 이야기가 담겼다. 말미에는 이 PD가 청주방송 구성원들에게 남긴 글도 실렸다. 

▲ 고 이재학 PD 추모집 '안녕,재피'. 사진=윤유경 기자
▲ 고 이재학 PD 추모집 '안녕,재피'. 사진=윤유경 기자

이대로씨는 “형이 가지고 있던 녹취록을 듣다보니 형 목소리보다 전화하고 있는 상대방과 친구들 목소리가 많이 들렸다. 이분들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면 그게 형 이야기가 되겠구나 생각했다”며 “형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다른 동료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대로씨. 사진=윤유경 기자.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대로씨. 사진=윤유경 기자.

이 PD와 함께했던 지역노동자들의 연대도 책의 주요 이야기 중 하나다.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을 위한 활동을 함께한 선지현 충북노동자교육공간 동동 대표는 “이재학 PD는 노조 조합원도 아니었고, 언론노조는 사실 지역사회에서 만나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는 지역사회의 많은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점점 늘어났다”며 “목소리 낸 노동자가 외롭지 않게 투쟁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길이다. 충북지역의 노동자들이 그런 선례를 만들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이재학 PD의 소송을 대리한 이용우 변호사도 “가장 흔한 말이지만 연대가 핵심이다. 연대가 없으면 결국 방송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당사자들이 자기 조직화를 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와 여건들이 있다. 먼저 손을 내밀어줘야 하는 것은 먼저 조직된 노동자들이다.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실제 싸우고 있는 분들을 품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또 다른 비정규직 방송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조가 우리와 하나구라’라고 하는 인식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밀했다.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용우 변호사. 사진=윤유경 기자.
▲ 3일 열린 고 이재학 PD 추모제에 참석한 이용우 변호사. 사진=윤유경 기자.

이대로씨도 “방송 현장을 간접적으로 보고 얘기를 듣다보면 방송작가들끼리, 연출자들끼리, 카메라쪽 등 노동자끼리도 편나누기가 심각하다”며 “내부에서도 기득권이 있어 아무리 연대하고 강하게 투쟁하더라도 그런 허점들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라, 내부에 있는 노동자들끼리라도 서로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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