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작가 장진성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MBC 보도는 허위이며, MBC와 기자 등이 장씨에게 1억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MBC 탐사 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지난 2021년 1월 <유명 탈북작가 장진성, 그에게 당했다. 탈북 여성의 폭로>, 같은 해 2월 <탈북 작가 장진성 성폭력 의혹 2탄- 침묵 깬 피해자들>이라는 보도를 통해 장씨 등에게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보도에서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장씨와 전아무개씨는 2021년 2월 MBC와 홍아무개 MBC 기자, 제보자들인 A씨와 B씨를 상대로 2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재판장 성지호)는 지난 27일 MBC 보도를 허위로 판단하고 MBC와 홍 기자, 제보자인 A씨와 B씨가 공동하여 장씨에게 1억 원,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전씨에게 3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 쟁점이 된 MBC 보도 내용은 ‘전씨가 A씨를 준강간하고, A씨의 나체 사진을 찍어 장씨에게 전송했으며, 장씨는 나체 사진을 이용해 A씨를 협박하며 네 차례 성폭행했다’는 내용이다. 전씨는 2016년 장씨로부터 A씨를 소개받아 2개월 교제하다 헤어진 관계였고, 또 다른 제보자 B씨는 A씨와 동거하던 이로, 당시 A씨는 MBC 보도에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고 전씨와 장씨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 상암동 MBC 사옥.
▲ 상암동 MBC 사옥.

A씨는 2021년 1월 강간,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물소지등), 강요 혐의로 장씨를 고소했으나 경찰은 그해 8월 혐의없음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당시 장씨는 “경찰의 7개월 넘는 조사 끝에 무혐의 결정이 나왔다”며 “휴대폰 포렌식은 물론 지난 6년 동안 썼던 회사, 개인 카드 내역 일체를 제공했다. 그 외 5차의 조사에서 고소인의 거짓을 뒤집는 전화와 문자, 해외출입국 자료, 카톡, 정황상 증거들을 충분히 제시했다”고 했다.

장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증거분석 결과 피해자의 나체 사진은 확인되지 않았고, 강간을 당했다는 장소에 관한 진술을 번복하는 등 피해자 진술이 객관적 증거 자료에 배치된다는 것이 불송치 사유였다. 검찰도 장씨와 전씨의 강간 등 혐의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장씨와 전씨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방송금지 가처분을 심리한 법원도 수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 2021년 10월 “이 사건 방송 내용은 허위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MBC는 방송 내용이 허위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소명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MBC 스트레이트 해당 분 재방송, 다시보기 방송 등이 금지된 것이다.

지난 27일 MBC 보도를 허위로 판단한 서울서부지법 제12민사부도 “수사기관에서 원고 장씨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A씨의 나체 사진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장씨가 2021년 1월, 전씨가 2020년 12월 각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은 확인되나 나체 사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 진술은 일관되지 않고 객관적 증거와 배치되며 상식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일례로 A씨가 최초로 장씨에게 강간당한 장소를 강남구청 인근 호텔에서 송파구청 인근 호텔로 번복한 것에 재판부는 “수사 진행 경과를 살펴 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장씨를 죽이기 위한 비리나 약점을 알려달라”며 전씨를 협박한 사실 등을 이유로 “도저히 강간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판결문을 보면, A씨는 전씨에게 “이 새끼(장진성) 좀 죽이게 도와줘”라거나 “(자신과 동거하는 B씨가) 중국에서 사람도 죽인다”, “오빠(전씨)랑 나랑 관계 와이프가 알면 좋지는 않을 것” 이라며 장씨의 비리를 거듭 요구한다.

피고들은 “A씨가 오래 전 강간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서 이와 같은 시도를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들의 강간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왜 B씨 폭력이 언급돼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고 ‘범죄의 증거 수집’ 목적으로도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으며 오히려 허위의 증거를 작출하기 위한 시도로 보일 뿐”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가 언급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개별적 구체적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라는 취지이고, 이와 같이 비상식적 행태에 대해서까지 용인하며,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가볍게 믿으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했다. A씨와 B씨가 장씨 약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며 경찰을 사칭하거나 국가정보원과의 인맥을 언급하는 등 상식에 벗어난 언동을 한 것도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봤다.

재판부는 MBC 스트레이트 보도 ‘공익성’은 인정했지만, 보도에 적시된 허위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 즉 ‘상당성’이 있다고 판단하진 않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 해도, 허위 사실 적시가 원고들(장씨·전씨)에게 입힐 치명성을 고려할 때 MBC와 홍 기자는 적시 사실의 진실성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이 MBC 보도 위법성을 조각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A씨와 B씨는 장씨에게 깊은 원한 내지 부정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홍 기자는 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알았던 것으로 보이는 바, 그 동기를 더 철저히 조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장씨는 이와 다른 사건에서 강제추행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재판부는 “별개 사건일 뿐 아니라 행위 태양과 경과 등에서 상이하기 때문에 상당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했다.

▲ 서울 상암동 MBC사옥.
▲ 서울 상암동 MBC사옥.

재판부는 “MBC와 홍 기자가 A씨와 B씨의 진술을 객관적, 과학적 증거와 대조해 검토했다거나 원고들과 A씨, B씨의 주변 인물 등에 대한 광범위한 검증 작업을 거쳤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허위 사실 보도로 인해 원고들은 기존의 정상적 가정·사회생활 및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게 됐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피해를 입게 됐다. 원고들의 피해는 산술적 경제적 수치로 계량화하기 어려워 충분한 손해의 전보가 사실상 곤란한 바 이런 사정을 위자료 산정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피고들에게 금전 배상을 명하는 것만으로는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는 데 부족하다”며 MBC가 관련 보도 재방송, 다시보기 방송, 광고, 컴퓨터 통신, 인터넷을 통한 게시 등을 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고 명했다.

판결 후 피고 측은 항소 의사를 밝혔다. A씨와 B씨의 소송대리인인 김종휘 변호사는 “우리는 당연히 항소한다”고 했다. 홍 기자도 “항소는 당연히 한다”고 했다. 보수 성향의 MBC노동조합(제3노조)은 “MBC가 성폭행범이라고 공개적으로 2회에 걸쳐 고발 보도한 사건이 총체적인 허위 보도로 판명나는 초유의 상황이다. 이 방송은 피고발인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렸고 사회적 매장에 해당하는 피해를 낳게 됐다”며 프로그램 폐지를 주장했다. 장씨는 A씨와 B씨를 겨냥해 “사법부가 판결문에 명백한 허위라고 적시한 것만큼 상당한 죄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무고죄 고소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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