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나경원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동시 해임한 가운데, 국민의힘 당내 민주주의를 우려하며 윤 대통령과 ‘윤핵관’의 횡포와 독선을 경고하는 언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출마를 놓고 윤핵관 의원들과 갈등을 빚던 나 전 의원은 지난 13일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윤 대통령은 사표 수리 대신 기후환경대사직까지 해임하는 문책성 인사를 냈다.

▲ 윤석열 대통령과 나경원 전 의원. 사진=대통령실, 국민의힘.
▲ 윤석열 대통령과 나경원 전 의원. 사진=대통령실, 국민의힘.

윤 대통령의 이런 조처에 언론 평가는 박하다. 손원제 한겨레 논설위원은 14일 칼럼에서 대통령실이 ‘사표 수리’가 아닌 ‘해임’ 표현을 쓴 데 대해 “나 전 의원이 윤심을 거스르고 출마 쪽으로 한발짝 기운 듯한 태도를 보인 데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며 “일부에선 나 전 의원이 출마 의사를 꺾지 않을 경우 정치적 압박을 넘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는 등 개인적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

손 위원은 “대통령이 특정인을 당대표로 낙점하고, 거슬리는 사람들을 마구 쳐내는 일은 민주화 이후론 근례를 찾기 어렵다”며 “내부 자치와 공정 경쟁이라는 정당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행태다. 집권 여당은 정부와 더불어 국정의 양대 기둥이다. 지금 윤심의 전횡에 찍소리도 못 낸 채 휘둘리는 국민의힘의 모습은 이 기둥이 속으로부터 삭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비판했다.

이충재 한국일보 고문은 자신의 홈페이지(‘이충재의 인사이트’) 칼럼을 통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요지경”이라며 “유력한 후보들이 차례로 사라지는 광경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민심에서 가장 앞서는 주자를 갑작스런 경선 방식 변경으로 거세하더니 이제는 당심에서 선두에 나선 주자마저 주저앉히려 한다. ‘민심’과 ‘당심’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윤심’만 좇으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승민, 나경원 등 윤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반윤’ 또는 ‘비윤’ 정치인들이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정리되고 있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이 고문은 “대통령실과 ‘윤핵관’이 벌이는 무지막지한 횡포의 배경으로 ‘이준석 트라우마’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대통령과 여당이 한 몸이 돼야 국정이 순탄하고 성과를 낸다는 주장”이라며 “하지만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물아일체(物我一體)가 돼서 성공한 경우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고문은 나 전 의원에 관해 “따지고보면 원내대표 시절 ‘빠루’를 들고 설치던 ‘보수 여전사’가 국민의힘에서 왕따로 전락하는 장면은 코미디나 다름 없다. 지금 국민의힘의 면면을 보면 박근혜 탄핵 당시로 되돌아 간 모습”이라며 “그새 보수개혁을 주장했던 이들은 당을 떠났거나 찬밥신세다. 그 빈 자리를 검찰 출신의 윤 대통령이 차지했고, 이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혁신도 비전도 사라지고 남은 건 대통령 충성경쟁뿐이다. 이러니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차라리 당 대표를 윤 대통령이 지명하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고 꼬집었다.

조선일보도 우려 목소리를 냈다. 이 신문은 14일 사설에서 나 전 의원 해임 사태에 관해 “정치권에서는 이런 문제는 자주 있는 일이다. 막후에서 대화로 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것이 정치이기도 하다”면서도 “그런데 이번엔 조율이 아니라 전부 밖으로 파열음이 터져 나와 국민 앞에 현장 중계되듯 했다. 희한하고 납득 못할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사설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당대표 징계 문제로 빚어진 내홍을 거론하며 “(당시) 윤 대통령 지지율은 급락하고 국정 운영까지 흔들렸다. 정치적 해결의 길이 있었지만 정치는 완전히 실종됐다. 내부 소통이나 조율도 없었다”며 “이번에도 나 전 의원이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매사에 정면충돌해 파열음이 난다면 지켜보는 국민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박신홍 중앙일보 정치에디터는 14일 칼럼에서 “윤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당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한계 속에서 국정을 적극 뒷받침할 ‘우군 여당’이 그 누구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한배를 타고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당대표가 필수 조건”이라며 “문제는 윤심이 두드러질수록 중도층과 무당파 등으로의 외연 확대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만만찮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공방은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친윤계를 겨냥해 “누구나 참여하는 아름다운 경쟁이 아니라 특정인을 향한 위험한 백태클이 난무한다”며 “당의 중요한 자산을 배척하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 당이 분열하는 전당대회가 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14일 페이스북에 “구두 문자로 사의를 표한 나경원에게 대통령실은 ‘애정이 있다’ 하더니, 사직서를 내니 해임하고 전광석화로 후임에 누굴 임명했는가”라며 “윤핵관들은 나경원 전 의원에게 융단폭격이다. 윤 대통령께서는 일찍이 국사에 바빠 ‘당무에 개입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준석, 유승민, 나경원을 정리하는 교통순경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표적 ‘친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나 전 의원을 겨냥해 “나경원 전 의원을 지지해 준 지지층은 국민의힘 정통 보수 당원들이었다”며 “대통령을 기만하고 공직을 두고 대통령과 거래를 하려 했던 나 전 의원의 민낯이 드러난 상황에서 과연 국민의힘 정통 보수 당원들이 계속 지지할까. 도대체 왜 당내 한 줌 남은 반윤 세력들이 앞다퉈 그토록 미워했던 나 전 의원을 미화하고 찬양하고 나설까”라고 비판했다.

이에 나 전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혹자는 ‘거래’, ‘자기정치’ 운운한다. 그들 수준에서나 나올 법한 발상”이라고 반박한 뒤 “제2의 진박 감별사가 쥐락펴락하는 당이 과연 총선을 이기고 윤석열 정부를 지킬 수 있겠는가. 2016년의 악몽이 떠오른다. 우리 당이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했다. 보수 정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 여부를 공천 기준 삼았다가 패배한 2016년 총선을 거론한 것이다. 당내 ‘진윤 감별사’ 윤핵관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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