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 광주시장이 자신에게 금품수수 의혹을 제기한 조선일보 기자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강 시장은 상고하지 않을 방침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4부(부장판사 강재철)는 지난달 30일 강 시장이 조선일보와 소속 기자 3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강 시장의 항소를 기각하며 원심과 같이 조선일보 측 손을 들어줬다. 이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004단독 김창보 원로법관도 지난해 6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조선일보는 2020년 10월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재판 증인으로 출석해 “2019년 7월 이강세 스타모빌리티 대표를 통해 당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고 증언했다고 보도했다.

▲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현 광주시장)이 2020년 10월12일 오전 라임자산운용 사태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도착,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현 광주시장)이 2020년 10월12일 오전 라임자산운용 사태 주범으로 꼽히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을 위증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도착,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전 회장은 1조6700억원대 라임 투자 사기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난달 11일에는 재판을 앞두고 위치 추적 전자 장치를 끊고 도주했다. “강 전 수석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는 주장은 김 전 회장이 자신의 정·관계 로비 창구로 알려진 이강세 전 스타모빌리티 대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꺼낸 말이다. 다만 조선일보 재판 보도 후 구체적 금품 수수 물증이 제시된 적은 없었다. 검찰 역시 지난해 말 증거를 찾지 못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으며, 김 전 회장도 증언 이후 “전관 변호사가 ‘강기정 정도는 잡아줘야 한다’며 여권 로비 진술을 회유·협박했다”고 말을 바꿨다. 

강 시장이 문제 삼은 조선일보 보도·사설은 2020년 10월8일자 <‘라임 전주’ 김봉현, “강기정 청 수석에게 5000만 원 건넸다”>, <“쇼핑백 5000만 원, 강기정에 보냈다” 라임 김봉현의 폭로 강 전 수석 “완전한 허위 날조”>, 10월9일자 <라임 錢主 “강기정에게 5000만 원 줬다”>, <사설 “靑 수석에 5천만 원” “터지면 다 죽어” 정권 ‘펀드 게이트’ 열리나>, 10월12일자 <사설 펀드 게이트, 돈 안줬다면 왜 줬다 진술하겠나> 등이다.

강 시장 측은 “김봉현으로부터 돈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피고들(조선일보와 기자 3명)은 원고(강기정)가 김봉현으로부터 돈 받은 것이 사실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는 기사와 사설을 게시하는 등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조선일보와 기자 3명이 공동해 2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일보 측은 “각 기사는 형사 사건에서 김봉현 증언이 나왔다는 내용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허위 내용이라고 볼 수도 없으므로 위법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 조선일보 2020년 10월9일자 1면.
▲ 조선일보 2020년 10월9일자 1면.

항소심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기사 제목 문구에 큰 따옴표를 하여 김봉현 발언을 인용하는 내용임을 분명히 나타냈다는 점, 부제목 등에 “완전한 허위 날조”라는 강 시장 반론도 기재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일반 독자는 ‘김봉현이 원고(강기정)에게 5000만 원을 건네줬다’는 것 자체를 사실로 보도하고 있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김봉현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기사 본문에 대해서도 “기사들의 전체적 구성과 내용, 문구에 비춰보면 기사는 의혹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적시하고 있다기보다는 김봉현이 그런 내용의 진술을 했다는 사실과 그런 의혹의 기초가 되는 사실들을 적시한 후 그런 사실에 비춰 의혹이 있고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보도는 김 전 회장 증언을 통해 금품수수 의혹을 제기할 뿐 이를 사실로 전제하고 보도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조선일보 사설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보면 (조선일보 사설은) 김봉현이 이강세를 통해 원고(강기정)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했으며 라임펀드, 옵티머스펀드와 관련해 정권의 실력자들이 펀드 사기꾼들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검찰 문건들이 있으며, 누구 말이 맞는지 밝혀야 한다는 논평을 기재한 것”이라며 “원고가 김봉현으로부터 5000만 원을 받은 것이 진실이라고 적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와 사설은 이강세를 통해 금융감독원 검사를 무마하기 위해 전 청와대 정무수석인 원고에게 5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김봉현의 증언을 바탕으로 원고가 김봉현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라며 “이는 라임펀드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크고,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도덕성·청렴성, 업무처리의 정당성 등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위한 것이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했다.

▲ 조선일보 2020년 10월9일자 사설.
▲ 조선일보 2020년 10월9일자 사설.

재판부는 △조선일보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실로 제기한 사항들을 허위로 보기 어렵다는 점 △사실의 근거가 되는 자료와 출처, 배경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보도한 점 △원고의 해명과 반론을 의혹 제기 기사와 함께 보도한 점 △의혹이 진실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단정적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해 “피고들은 기사를 통해 제기한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원고가 실제 돈 받은 것 같은 인상을 독자들에게 줄 여지가 있대도 기사와 사설에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강 시장은 5일 상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며 “보수언론과 다투는 것보다 시정에 집중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판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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