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역무원으로 재직하던 한 여성이 근무 중에 살해당한 사건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좋아하는데 안 받아줘서 남자 직원이 대응한 것’이라고 말해 파문이다.

여성계는 ‘여성이 남성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폭력을 유발했다는 거냐’, ‘스토킹 안 받아주면 살해해도 된다는 것이냐’ 등 분노를 쏟아냈다. 더 이상 서울시의원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은 지난 16일 시의회 본회의장 시정질문에서 “미뤄봤을 때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남자 직원이 한 거 같다”고 발언했다. 이 시의원은 “서울교통공사 정도를 들어가려면 나름대로 열심히 아마 사회생활하고 취업 준비를 했었을 서울 시민의 청년일 거다. 피해자도 마찬가지겠죠”라며 자신도 군대가는 아들이 있다는 언급도 하면서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진짜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라고 말했다.

공개적인 발언으로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까 살해했다’는 주장을 폈다. 스토킹 여성혐오 살해사건을 가해자 시각에서 2차 가해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성정치네트워크는 17일 논평에서 “귀를 의심치 않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여성은 남성 직원이 좋아한다고 하면 자신의 자율적 의사 판단 없이 응해야 하는 존재란 말인가. 여성이 남성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서 남성으로 하여금 폭력을 유발케 했다는 말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을 여성이 남성직원을 안 받아줘서 대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KBS가 17일 아침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광장 영상 갈무리
▲이상훈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이 지난 16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을 여성이 남성직원을 안 받아줘서 대응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KBS가 17일 아침 뉴스에서 보도하고 있다. 사진=KBS 뉴스광장 영상 갈무리

 

여성정치네트워크는 “여성을 비주체적으로 성적 대상화하며, 여성을 자기결정권의 주체로 보지 않는 여성비하이자, 폭력행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피해자책임론을 공공연하게 설파하는 여성혐오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피해자가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경찰에 고소하고 사법 당국에 호소하는 등 국가시스템의 문을 두드렸을 뿐 아니라 피를 흘려가면서도 비상벨을 눌러 가해자를 잡힐 수 있게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단체는 “근무현장에서 스토킹범죄자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한 여성의 죽음에 온 국민이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며 “서울시의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시의원이 남성가해자의 폭력적인 서사를 두둔하는 행위는 단 한 번이라도 용서받기 어려운 시민 위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신당역 살인사건 가해자의 폭력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망언을 서슴지 않은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 이상훈 의원은 즉각 사퇴하라”며 더불어민주당에게도 스토킹범죄 피해자의 죽음을 모독한 이상훈 시의원을 영구 제명하라고 촉구했다.

민현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상훈 시의원 발언 이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좋아하는데 안받아줘서… 그래서 살해?”라며 “이상훈 서울시 의원은 이 발언에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민 전 의원은 “또 어물쩡 넘어간다면 아무리 법적 조치를 강화해도 이 같은 끔찍한 사건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같이 비판이 쏟아지자 이상훈 시의원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는 “16일,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 중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대한 저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신당역 사건은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될 사건이었습니다. 저의 경솔한 발언으로 피해자와 유가족께 깊은 상처를 드린 점,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썼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은 문제가 커지자 16일 저녁 이상훈 시의원 발언 매우 부적절하다며 피해자와 유가족, 그리고 시민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즉각 윤리심판원에 회부하여 징계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도 이번 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해 뭇매를 맞았다.

김 장관은 지난 16일 신당역 사건 현장에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일각에서는 이번 범죄,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이거를 여성과 남성의 어떤 그런 프레임으로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아닌 개별적 사건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김현숙 여성부 장관이 지난 16일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현장에 설치된 추모공간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이번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JTBC 영상 갈무리
▲김현숙 여성부 장관이 지난 16일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 현장에 설치된 추모공간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이번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JTBC 영상 갈무리

 

김 장관이 이 같은 발언을 사과하라는 비판이 나왔다. 진보당은 이날 논평을 내어 이번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는 발언을 두고 “망언을 내뱉었다”며 “‘여성혐오’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 건지 실로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진보당은 “신당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성혐오가 집약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며 “김 장관은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구조적 성차별과 성폭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하고 당장 망언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이 사건을 낳게 한 근본적인 원인으로 가해자를 불구속한 법원과 사건을 방치한 서울교통공사도 그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논평에서 “이 여성은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가해자로부터 불법촬영 및 협박, 스토킹 피해를 겪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며 “그러나 법원은 직장 동료에 의한 여성폭력의 위험성에 대한 검토 없이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성인지 감수성 없는 판단으로 구속영장을 기각시켰고, 서울교통공사의 안이한 대응으로 가해자는 여성의 근무 스케줄표에 접근해 근무 정보를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여성단체연합은 “법원은 위협을 느낀 여성이 처한 상황과 목소리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일터였던 서울교통공사는 노동자가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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