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 사이, 그 경계선에서 죽을 때까지 고통받는 삶이 있다. 김용균씨처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다 원청 또는 회사의 부주의로 재해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간 청년 노동자들이 살아갈 날은 50~60년 이상 남았다.” (한겨레 탐사기획팀 취재진)

한겨레가 최근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획기사를 통해 치명적인 산업재해로 장애나 질병을 얻어 노동력을 100% 상실한 중장해인(장해 1∼3급) 중 20~30대 청년 187명(2022년 4월 기준)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지난 15일 서울 공덕 한겨레 사옥에서 한겨레 탐사기획팀 정환봉, 장필수, 김가윤 취재기자와 이화섭 미디어기획부장, 백소아 사진기자를 만나 청년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다친 채로, 절단된 채로 가장 오래 살아야하는 세대 주목해”

“‘절단방’이라는 단체 카카오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 카톡방에는 젊은 나이에 일하다가 절단 사고를 당해 상해 처리도 되지 않거나,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해 앞으로도 최저시급만큼의 장해연금을 받게 된 청년들이 너무 많았다.” 산재를 당한 젊은 청년노동자들에 대한 글을 읽은 장필수 기자는 글을 작성한 필자에게 곧장 전화해 구체적 경위를 물었다. 

“이게 정당하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앞으로도 평생을 절단된 상황에서 살아야하는데, 사고 직전에 최저임금을 받았다고해서 최저임금만 받는 삶인 것은 아니다.” 장필수 기자가 말했다. 장 기자는 다친 채로, 절단된 채로 가장 오래 살아야하는 취약한 청년 세대에 주목했다. 

▲ 살아남은 김용균들 인터렉티브 페이지 갈무리.
▲ 살아남은 김용균들 인터렉티브 페이지 갈무리.

청년 중장해인은 낮은 보상금, 5인 미만 사업장, 골절이라는 세개의 공통된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장필수 기자는 “하청이고 실적 압박에 놓일 수밖에 없는 영세한 구조일수록 작업은 더 단순해진다. 단순해진 작업은 처음에 진입하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담당하게 된다. 그런 현장일수록 골절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숙련도가 떨어질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숙련도가 떨어지는 작업장이 그런 사람들을 유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취재 중 중장해인 182명->187명으로 늘어…

기자들이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을 통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받은 20~30대 중장해인의 상해에 대해 담긴 엑셀 자료에는 한 두줄의 사고 경위, 상해 유형 등이 남겨져있을 뿐이었다. 이름이 있는 경우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름이 적혀있다고하더라도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가려져있었다. 

장필수 기자는 “사람이 죽거나 여러 명이 다치면 조사가 나가기 때문에 기록이 꼼꼼하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런 사례가 아니면 노동자 본인이 쓰거나, 본인이 쓸 수 없을만큼 많이 다치면 주변 동료가 쓰거나 하는 것이다. 굉장히 부실하게 쓰여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사진=한겨레 제공.
▲ 사진=한겨레 제공.
▲ 한겨레 7월12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 한겨레 7월12일 아침신문 1면 갈무리.

처음 기자들이 자료를 받은 1월에 청년 중장해인 수는 ‘182명’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취재를 진행한 4월에는 ‘187명’으로 늘었다. 기자들은 병원,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에게 전화하거나, 지역과 재해 경위를 조합해 검색해 기사를 찾아보는 등 조각조각 정보를 맞춰보며 ‘살아남은 김용균들’을 찾기 시작했다. 사업장에 전화를 하면 예민하게 반응하며 산재를 숨기려고 하는 경우도 많았다. 장필수 기자는 “그래도 도와주려는 분들도 많았다”며 “취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도와주겠다고 자기가 찾아보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 한겨레 7월12일 아침신문 갈무리.
▲ 한겨레 7월12일 아침신문 갈무리.

장필수 기자는 그 중 제철소 협력사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두 살의 사회적 연령이 된 이희성(31·가명)씨를 만났던 과정을 떠올렸다. 관계자가 제보를 해줬지만, 희성씨의 집주소를 찾을 수 있는 자료는 ‘a아파트, 몇 동인 것 같다’는 관계자의 기억 하나였다. 1000세대가 넘는 a아파트의 등기를 떼보려했지만 임대아파트여서 등기를 떼도 건설사 이름으로만 나왔다. 근로복지공단에서도 개인정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두 살의 사회적 연령이 된 이희성(31·가명)씨와 어머니. 사진=한겨레 제공.
▲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두 살의 사회적 연령이 된 이희성(31·가명)씨와 어머니. 사진=한겨레 제공.

장필수 기자는 광양으로 내려가 관계자를 직접 만나 희성씨의 이름, 체격, 나이대 등을 들었다. “해당 동 128세대 중 집 앞에 킥보드, 자전거가 있거나 하는, 어린 아이가 사는 집같아 보이는 20세대를 제외했다. 희성씨는 혼자 집 밖에 나갈 수 없으므로 집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초인종을 눌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필수 기자는 아파트 맨꼭대기 17층에서부터 모든 호수의 벨을 누르며 ‘이희성씨를 찾고 있다’고 물었다. 그리고 14층에서 희성씨를 만났다. 

김가윤 기자도 “최대한 정보를 짜맞춰 찾으면서 관련 지역이나 기관에 이런 비슷한 사례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기관, 시민단체, 관련 노조 등 조직된 곳에서도 전혀 알고있지 않았다”며 “중장해인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인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계속 신경쓰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산재 판결문 잘 나온 것이냐 물었지만…할 수 있는 얘기 없었다”

KT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다가 통신선과 고압선, 변압기가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을 당해 두 팔을 잃은 하정원씨(34·가명)는 장필수 기자에게 ‘구체적인 장해연금이 기사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사람들이 내가 일을 하지 않음에도 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공격을 받게될까봐’라고 말씀하셨다. 알고보니 실제로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으셨다.” 장 기자의 말이다. 

▲ KT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다가 통신선과 고압선, 변압기가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을 당해 두 팔을 잃은 하정원씨(34·가명). 사진=한겨레 제공.
▲ KT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다가 통신선과 고압선, 변압기가 함께 걸린 전봇대에서 작업을 하다가 감전을 당해 두 팔을 잃은 하정원씨(34·가명). 사진=한겨레 제공.

정원씨는 산재에 대한 형사 소송 판결문이 나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판결문을 받아든 정원씨는 기자에게 밤 11시반쯤 전화해 ‘판결이 잘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의견을 물었다. 장필수 기자는 “사실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었다. 그 이전 사업자들이 벌금형을 받는 것에 비해서 여기서는 책임자가 실형이 나왔기 때문에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졌다는 것이지, 절대적인 수치에 비교했을 때 이 사람이 양팔을 잃은 만큼 피해 기업이나 책임자들에게 충분한 처벌이 이뤄졌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 기자는 “내가 담당 변호사였다면, ‘솔직하게 잘 나온 거에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 기획을 준비하는 담당 기자로서 잘 나왔다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는 건설현장에서 2톤 무게의 스크루에 깔려 하반신이 마비된 김준혁(33·가명)씨의 가족을 떠올렸다. “사고가 나면 간병이나 산재 처리는 오로지 다 가족들이 하는 상황인데, 준혁씨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아 누나가 혼자서 다 처리하고 간병까지 챙겨야했다”며 “산재를 당했을 때 누나분에게 막상 어떻게 처리하고 뭐를 챙겨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업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이 책정되거나 빼먹어도 당사자는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알아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부분은 공단이나 국가에서 알려주면서 안내를 해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공간 담은 사진 기사, 인터렉티브 페이지까지

‘살아남은 김용균들’ 기획기사는 청년 중해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기자의 글을 담고 있다. 백소아 사진기자가 특히 집중한 것은 ‘공간’과 ‘물건’이다. 백 기자는 “사례자분들이 자신의 공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용기다. 그래서 더 공간에 집중했다. 또, 탐사기획팀에서 당사분들의 얼굴이 나가면 안된다고 하셔서 사례자의 물건에 집중했다”며 “사람들이 좀더 공감할 수 있게끔 최대한 어떻게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는 희성씨의 먼지 쌓인 향수병 사진을 꼽았다. “희성씨는 건장하고 저와 나이또래가 비슷해보였다. 사고 전의 사람이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먼지 쌓인 향수가 이 사람이 사고로 인해서 무엇을 잃게됐는지 보여줬다.” 백소아 기자의 말이다. 

▲ 이희성씨의 향수병. 사진=한겨레 제공.
▲ 이희성씨의 향수병. 사진=한겨레 제공.

인터렉티브 페이지에는 187명 청년 중장해인들의 나이와 산재 사건 경위가 가장 어린 나이인 15세부터 쭉 나열되어 있다. 페이지를 제작한 이화섭 미디어기획부장은 “엑셀 파일의 자료가 부실하고, 187명의 사례가 구체적인 정보가 없고 개인정보이다보니 어떻게 구현해낼지 고민이 많았다”며 “결국에 뽑을 수 있는건 나이와 사고경위였다. 187건의 사례가 많은 숫자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 독자들이 사고경위를 하나하나 눈여겨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 산재’이기 때문에 20대나 30대의 사고사례겠구나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10대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페이지를 기획할 때도 이 부분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싶어 나이를 앞에 두기도 했다”고 전했다. 

“기자의 역할, 정해진 틀 넘어 더 나은 시선 제공하고파”

장필수 기자는 사안을 바라보는 기자의 관점은 달라야한다고 강조했다. 장 기자는 “보통 기자들은 어떤 상황이 터졌을 때 전문가들의 의견에 많이 의존한다. 청년 산재에 대해 맨 처음 노무사에게 물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못들었다. 금전적 지원 부분에 있어서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사례가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니, 기사를 힘있게 끌고 나갈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결국 이 기획을 준비하며 하나하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신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정해진 틀에서 해석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기자들은 그 틀을 딛고 서서 나은 시선을 제공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 15일 서울 공덕 한겨레 사옥에서 (왼쪽부터) 김가윤 취재기자, 이화섭 미디어기획부 부장, 장필수 기자를 만났다. 사진=윤유경 기자.
▲ 15일 서울 공덕 한겨레 사옥에서 (왼쪽부터) 김가윤 취재기자, 이화섭 미디어기획부 부장, 장필수 기자를 만났다. 사진=윤유경 기자.

김가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산재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있는지에 대해서조차 국가가 현황파악을 못하고 있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껴 충격을 받았다”며 “이번 기획기사를 계기로 중장해인 뿐만 아니라, 산재를 당했지만 산재보험법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기자들과 살아남은 김용균들의 이야기는 이번주 한 편이 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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