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드라마제작사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고발된 지 8개월이 지났다.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고발 대상인 6개 드라마는 모두 종영했다. 이에 고용노동부가 사건처리를 지연하며 불법계약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판과 함께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의 전반적 고용실태 문제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공동행동’ 소속 8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정책토론회를 열고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고용실태와 문제점,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9월16일 KBS와 KBS가 설립한 몬스터유니온 등 드라마제작사 5곳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고발 대상인 드라마는 ‘국가대표 와이프’, ‘꽃피면 달 생각하고’, ‘태종 이방원’, ‘연모’, ‘학교 2021’, ‘신사와 아가씨’ 등이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고발된 KBS 5개 드라마 중 한 드라마당 60~70명 스태프가 있고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은 비율은 60~70% 정도다. 

하지만 고발 이후 8개월이 지났음에도 노동부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처리가 지연되는 사이 고발한 6개 드라마는 모두 종영했다. 고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드라마 촬영 현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공동행동의 법률대리를 맡은 강은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드라마 제작은 단기 프로젝트성 사업이므로 근로기준법 위반을 수사하는데 시간이 지체되면 제작현장은 사라지고 현장의 근로자들도 뿔뿔이 흩어져 추후 수사가 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방송현장은 비정규직 백화점, 노동자의 사각지대”라며 “사실상 고용노동부, 방통위 등 관계부처 기관에서 방송노동자 관련 문제에 대해 수수방관했다. 방송노동자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 방송사 권력에 대하여 소극적으로 대응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강은희 변호사는 “작년 진행된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노동실태 긴급접검 조사 내용에 따르면 드라마제작 현장 비정규직의 근로계약서 체결 비율은 20%대”라며 고용노동부가 드라마 제작 현장을 대상으로 2018년, 2019년에 진행한 2차례의 근로감독에서 드라마 제작 현장 스태프는 근로자라고 판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수의 스태프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일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고용실태와 문제점,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고용실태와 문제점, 제도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 현장. 사진=윤유경 기자.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방송사의 갖가지 편법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김기영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점점 촬영지는 경제적 이유로 멀어지고 있고, 많은 스튜디오들은 경기도 외곽으로 옮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스텝들에게 강요되고 있다”며 “방송사와 제작사는 촬영간 8시간에서 10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스탭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은 3~4 시간 밖에 되지 않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대부분의 드라마 스태프의 경우 일급으로 계산하여 급여를 지급 받는다. 주 52시간을 일하던 60시간을 일하던, 4일을 일하면 급여는 아무런 수당도 추가되지 않고 4일치 급여만을 받고 있다”며 “1일 8시간을 기준으로 하고 연장되는 근로시간에는 연장수당이,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야간에는 야간수당이, 1주에 하루는 주휴수당이 주어져야 한다. 현재와 같은 일급 형태가 아닌, 현재의 일급을 1/8로 나눈 시급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최충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사무관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방송 현장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기본적으로 근로감독관들이 알고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며 “미진했던 부분이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근로감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KBS 드라마 고발 사건은 검찰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200여 명이 넘는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을 따져 물어서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 있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드라마 제작이 끝났다고 해서 범죄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시정지시 불이행에 대한 엄중 조치, 관계부처 적극적 협의 필요해”

정기 감독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근로감독과 단체교섭 실시 등 방송스태프 노동권 보장을 위한 개선방안도 제시됐다. 이용우 변호사는 정기감독과 사후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상파3사 뿐만 아니고 지역민영방송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정기감독을 실시해 전체 방송의 고용형태, 고용조건 등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불시감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정지시만 하고 끝날게 아니라, 정확하게 시정지시가 됐는지 확인감독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며 “노동자성이 확인되는 순간 노동법 위반의 제반 사안들이 다 확인되는 셈이다. 연차 휴가 미부여, 연차 수당 미지급 등 부분들이 정확하게 시정될 수 있도록 사후조치를 엄정하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홍태화 영화인신문고 사무국장은 영화제작현장 노동자성 인정 사례를 들며 단체교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화 제작사는 방송 현장과 달리 스태프와 적극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영화 스태프는 76.0%로 실태조사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고,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스태프는 0.9%에 그쳤다. 

▲ 2020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출처=영화진흥위원회. 
▲ 2020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출처=영화진흥위원회. 

홍태화 국장은 “영화계는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 노동조합법상의 단체교섭을 시작했다”며 “영화노조에서 운영하는 ‘영화인신문고’는 영화산업내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체불, 산업재해, 부당해고, 저작권 분쟁등 다양한 부당 피해를 해결해오고 있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대화와 책임 부처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도 제시됐다. 강은희 변호사는 “방송 제작 현장은 소관부처가 많아, 실질적인 방송 제작 현장 개선 업무는 그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며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고용노동부 등 사이에 단체교섭을 이끌어주고 방송 제작 현장 개선 업무를 담당할 하나의 책임 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충운 사무관도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며 “노동부의 근로감독 필요성도 있지만, 노사정 협의 등 제도적 논의들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근본적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노사간 협의체를 넘어선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지상파 3사·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스태프지부가 참여해 드라마 현장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위해 2019년부터 논의를 이어 오던 4자 협의체는 현재는 활동을 멈춘 상태다.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 협의체로는 개선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며 “방송사, 제작사, 노조와 정부부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설치해 협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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