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인 알 자지라 기자가 이스라엘 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스라엘은 책임을 부인하는 한편 장례에 참가한 팔레스타인인들을 폭행하면서 국제사회와 언론계 비난이 확산하고 있다. 이 가운데 경찰의 폭행을 ‘충돌’로 표현하거나 이스라엘 입장을 검증 없이 실어온 미국 주류 언론 보도를 향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12일 알 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은 이날 새벽(현지시각) 서안 가자지구에서 쉬린 아부 아클레 특파원을 향해 총을 쏴 사살했다. 당시 아부 아클레 등 4명의 알 자지라 기자는 이스라엘 군의 서안 지구 제닌 난민캠프 급습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다. 동행한 알리 알 사무디 기자도 현장에서 등에 총을 맞아 현재 입원 중이다.

▲알 자지라는 이스라엘 군이 12일 새벽(현지시각) 서안 가자지구에서 쉬린 아부 아클레 특파원을 향해 총을 쏴 사살했다고 밝혔다.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 알 자지라 유튜브 갈무리.
▲알 자지라는 이스라엘 군이 12일 새벽(현지시각) 서안 가자지구에서 쉬린 아부 아클레 특파원을 향해 총을 쏴 사살했다고 밝혔다.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 알 자지라 유튜브 갈무리.

당시 아부 아클레를 포함한 취재진은 모두 ‘프레스’라 적힌 헬멧과 조끼를 착용했으나, 이스라엘 군은 헬멧과 조끼를 피해 아부 아클레 기자의 머리에 총격을 가했다. 총상을 입은 알 사무디 기자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촬영하려던 참이었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우리에게 떠나라거나 촬영하지 말라고 묻지 않은 채 갑자기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고 알 자지라는 전했다.

국제기자연맹, 형사사법재판소 회부


이브라힘 멜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변인은 알 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을 “저명한 언론인을 상대로 한 포괄적 범죄”라고 말했다. 알 자지라 영어방송의 최고경영자인 자일스 트렌들은 “언론인을 죽이고, 메신저에게 총을 쏘는 일은 전쟁 범죄에 상당하는 행위이고 우리는 진상을 알아야 한다”며 “언론인으로서 우리의 임무는 ‘계속 하는 것’이다.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기자연맹(IFJ)와 팔레스타인 언론인 연합(PJS) 등은 아부 아클레 사건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일하는 언론인을 체계적으로 표적삼은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사건을 회부했다. 아랍중동언론인협회(AMEJA)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다른 단체들과 함께, 쉬린의 죽음으로 이끈 행위들에 대한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한다”고 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정부와 군은 무장한 팔레스타인인의 총격 가능성을 제기했다가 국제사회 비난이 커지자 누가 총을 쐈는지 불분명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한편 이스라엘이 자국 정부가 참가하는 조사를 요구하는 데에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장례식 폭행에 알자지라 입장 내 “가장 강한 어조로 규탄한다”


아부 아클레 기자의 장례식이 13일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에서 치러진 가운데, 이스라엘 경찰이 장례 행렬을 막고 참가자들을 곤봉으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3일 알 자지라 입장을 낸 보도 갈무리
▲13일 알 자지라 입장을 낸 보도 갈무리

알 자지라는 자사 뉴스로 입장문을 내 “살해된 기자 쉬린 아부 아클레의 관을 운구하는 애도자들을 향한 이스라엘 점령군의 공격을 규탄한다”며 “모든 규범과 국제법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이 같은 폭력은 진실을 보도하는 일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 있던 알 자지라 기자는 이스라엘 군이 애도자들이 아부 아클레의 관과 함께 걷는 것을 원치 않아 폭행했다고 전했다.

한편 영미권 주류 언론이 이스라엘 군의 총격과 폭행을 두고 행위 주체나 책임 소재를 밝히지 않는 보도 태도를 보이면서 언론을 향한 소셜미디어상 비판도 가열되고 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관이 충돌 속에서 떨어졌다”고 썼다. 미국 CBS는 “아부 아클레 장례식에서 이스라엘 경력과 팔레스타인 애도자 사이 충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격투가 너무나 심해져 관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고 묘사했다. NPR은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 경찰이 아부 아클레 기자 장례식에서 충돌했다”고 제목을 썼다.

▲13일 이스라엘 경찰의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 장례식 참가자 폭행 사건을 다룬 영미 언론의 보도 제목 갈무리
▲13일 이스라엘 경찰의 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 장례식 참가자 폭행 사건을 다룬 영미 언론의 보도 제목 갈무리

뉴욕타임스는 관련 기사를 SNS 계정에 소개하며 “이스라엘 측은 ‘돌이 던져져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고 언급해 비판 댓글과 인용글이 달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알 자지라 기자을 쏜 총알을 조사하자는 이스라엘의 요청을 팔레스타인이 거절했다”며 사건의 책임을 팔레스타인 측에 돌리는 듯한 제목을 뽑았다.

미국의 진보매체 ‘민트프레스’의 선임기자 알란 맥리오드는 “‘충돌’은 언론이 폭력 사건을 보도하면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감추고 싶을 때 쓰는 단어”라며 “진지하게, 누구라도 이 상황을 ‘충돌’이란 단어로 묘사한다면 그것은 허위정보를 공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기자연맹에 따르면 2000년 이래 46명의 팔레스타인 언론인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 당했으나, 살해자에 대한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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