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한지원(46)은 젊은 마르크스 이론가다. 지난해 책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에선 4차 산업혁명, 양적 완화, 비트코인 등 오늘의 경제 이슈를 현재화한 마르크스 이론으로 재해석했다. ‘시장은 균형을 회복한다’는 주류 경제학 허점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말까지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온 그는 진보적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관(觀)을 고전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신랄하게 비판해 주목된다.

지난 3월 펴낸 ‘대통령의 숙제’에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문민화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관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짊어졌다”며 “하지만 그는 대통령 권력 개혁에 전혀 나서지 않았다. 대통령 권력은 ‘청와대 정부’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도리어 더 커졌다”고 비판했다.

한 작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와 집권 86세력은 여론과 대중 감정을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오판했고 그 결과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투기꾼 책임론, 착한 적자론과 같은 정책으로 ‘정부 실패’를 야기했다. 권력을 사적 남용한 박근혜의 탄핵으로 집권한 문 정부도 제왕적 대통령 권력에 대한 통제를 고민하기보다 전임 정권을 답습하며 스스로 불행해졌다는 진단이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한 작가를 만났다. 이후 서면으로도 추가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좌파학자인 그는 왜 우리 민주주의가 타락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 그는 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 비판에 심혈을 기울일까.  

▲ ‘대통령의 숙제’ 저자 한지원 작가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대통령의 숙제’ 저자 한지원 작가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책 ‘대통령의 숙제’ 출간 계기는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 5년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문재인 정부 평가는 쉽지 않다. 우리 진보좌파 단체들과 엮여 있는 정권인 만큼 진보진영에 대한 자기 성찰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진보좌파 진영의 결함을 함께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5년은 문 정부를 매개로 진보좌파 결함이 드러난 시절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로 불렸다. 촛불 정신은 곧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상징되는 문재인 정부에 있어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민주주의가 타락했을 때 경제와 안보에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고전적 자유주의 잣대로 분석하고자 했다. 문재인 정부 평가는 단순히 지난 정부 평가가 아니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지닌 어떤 근본적 결함을 파헤치는 것이며 새 정부를 포함해 한국 민주주의가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 문 정부 무엇에 실망했나? 

“결정적인 건 ‘적폐청산’이었다. 이 구호는 촛불집회 때부터 입길에 오르내렸는데 무엇을 바꾸겠다는 메시지인지 납득되지 않았다. 결국 이놈, 저놈 감옥 보내자는 것 아닌가? 문 정부는 윤석열을 앞세워 법을 이용한(rule by law) 지배만 이어왔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 개선보다, 법치(rule of law)의 정립보다, 반대 정파를 처벌하는 데 주력했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을 전공으로 하는 나로서 ‘소득주도성장’(소주성)도 모순 그 자체였다.”

- 문 대통령 취임 당시 시대정신으로 평가받았던 ‘적폐청산’에 부정적 입장이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퇴진행동 스태프로 참여하지 않았나? 권한을 남용하고 불법을 저지른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 않나? 

“법에 따라 위법한 사람들을 기소하고 수사하는 것 자체에 이견은 없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박근혜 때만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나? 군부 독재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아들이,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형이 구속됐다. 대통령 권한을 사적으로 사용한 결과다. 그렇다면 고질적인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남용에 대한 시스템적 성찰과 개혁 의지가 있어야 했다. 인적 청산은 상대진영의 원한을 쌓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피가 쌓이면 복수를 부르기 마련이고, 거대한 원한은 도리어 제도 개혁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태극기·조국기 부대’를 보라.”

- 문 정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소주성 핵심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지키지 못했다. 책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소주성에 대한 신뢰 여부가 아니라 여론 추이였다”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긍정·부정 여론에 비례해 인상됐다는 지적이었다.  

“문 정부 인사들은 2019년부터 ‘소주성’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특히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노동계, 민주노총 과제를 문 정부가 떠안은 것이다. 저임금 문제에서 가격만 와장창 올리면 해결된다는 안이한 판단이 시장에 큰 부작용을 초래했다. 최저임금과 관련 중·고생산성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안,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개편 등도 논의될 수 있고 자영업자 중심의 산업 기반도 함께 살펴야 했다. 그러나 문 정부는 ‘기승전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폭적 임금 인상 만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우겼다. 소주성을 위해 임기 초 2년 동안 최저임금을 29%나 올렸다. 임기 후반 3년은 연평균 3%로 급격하게 낮춰 임기 전체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균 7.3%였다. 이 수치는 박근혜 정부 7.4%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 대통령의 숙제/한지원 지음/한빛비즈
▲ 대통령의 숙제/한지원 지음/한빛비즈

- 책에서 진보진영이 공유하는 이분법적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역사관은 ‘친일 잔재인 보수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요약되는데 한 작가는 “선거 민주주의의 기본인 정치적 다원성을 부정한다”고 혹평했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보수세력 뿌리는 친일파다. 이들은 분단으로 기득권을 누렸고 독재에 부역했다. 반면 진보세력 뿌리는 독립운동이다. 통일을 추구하며 민주화를 원칙으로 한다.’ 이 이분법적 선악 세계관에 따르면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보수세력을 청산하는 것이다. 반대세력을 ‘토착왜구’로 낙인찍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책에도 서술했지만 19세기 자본주의 역사와 조선 망국사를 별개로 판단한 결과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분단과 20세기 냉전시대 세계사를 단절해 사고한 탓이다. 북한과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제국주의사, 냉전의 역사, 특히 사회주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데 진보진영이 이 대목을 얼마나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세계 질서의 한 부분임을 인식하고 민족주의로의 경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주의가 타락했다고 비판했다.

“집권 세력인 대통령과 민주당 86세대, 그리고 진보 시민단체들까지 이들 그룹이 공유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건 ‘다수 여론에 따른다면 된다’는 ‘여론의 지배’다. 즉, 여론이 원하면 시장도 이길 수 있는 것(대폭적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적폐 청산)이고 일본도 이길 수 있다는 것(토착왜구·반일 프레임)이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대부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민주주의관을 ‘다수의 전제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주권을 갖고 있는 정치 체제이나 다수의 여론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흐르진 않는다. 이 때문에 민주정은 사법부를 독립시켜 엘리트(판사) 지성이 여론 독재를 견제토록 했고 입법가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구현했다. 이 과정에서 공론을 만드는 언론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엘리트와 대중 사이 긴장 관계와 상호 견제는 민주정의 필수적 조건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무너뜨렸다. 기자들은 다 기레기, 판사들은 판새, 검사들은 검새,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조리돌림하기 바빴다. 책임있는 정당과 집권 세력이라면 감정적으로 흐르는 여론을 앞장서 막아서고 설득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런 여론을 등에 업고 상대를 절멸하는 데 골몰했다.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폴리비오스는 민주주의 타락의 필연성을 주장했는데, 민주정의 혼돈은 폭민정으로 전락하고 군주정을 다시 불러온다.”

- 이명박·박근혜 정권도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주의 타락이 문재인 정권 만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나?

“보수당 정부는 엘리트주의, 성과주의를 내세우다가 역풍을 맞곤 했다. 여론을 무시하고 권위주의적 통치 권력을 남용하다가 반발에 직면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의 통치를 보였다. 후자가 더 위험하다. 대중을 동원해 정적에 린치를 가한다는 점에서 파시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자유와 평등을 후퇴시키는 걸 정당화한다. 앞서 설명했듯 민주정에서는 두 가지 축이 중요하다. 언제든 ‘다수의 전제정’으로 타락할 수 있는 대중의 지배, 언제든 부패할 수 있는 엘리트의 지배가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데, 무너진 균형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는 50.1%로 승리한 국민을 위해 49.9%로 패배한 국민을 정치·경제적으로 핍박하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았나?”

- 문재인 대통령도 2018년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발의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볼 수 있나?

“알리바이용 개헌안이라고 평가한다. 대통령제 개혁을 왜 대통령이 발의하는지 의문이고, 상대 정파를 ‘적폐’로 몰아세운 상태에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인가? 공론이라는 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또 ‘강한 대통령, 약한 국회’라는 점에서 국내 정치 체제는 미국보다 남미형 대통령제와 유사하다. 그마저도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대승을 거둔 뒤에는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민주당이 ‘검찰 개혁’하듯 했으면 제왕적 대통령제도 개혁됐을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민주당이 주도하는 ‘검수완박’ 법안에 정의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해 논란이 일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검수완박은 내용도, 절차도, 시기도 모두 틀린 입법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검수완박법을 무리하게 강행한 이유는 분명했다. 문 대통령과 측근의 퇴임 후 안전, 야당이 된 민주당 의원들의 안전이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의당은 솔직히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데도 검수완박법에 찬성했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이 이권의 노예였다면, 정의당은 이데올로기의 노예였던 것 같다. 검찰이 형사사법제도의 ‘절대악’이고, 윤 정부로 검찰공화국이 될 것이란 생각이 진지한 내부 검토도 없이 지배적 생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나는 정의당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장은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서민에게 형사사법 문제는 항상 통제 받지 않는 경찰의 문제였다. 솔직히 검찰이 직접 수사해서 손해 본 노동자가 얼마나 있겠는가. 경찰 수사로 인권 침해를 받은 경험이 더 많고, 경찰이 사용자는 수사하지 않고 노동자만 족쳐서 받은 피해가 더 크다. 정의당의 현장에서 사법개혁은 사법경찰에 관한 시민적 통제가 핵심이다. 그런데도 정의당은 검찰 수사를 받은 정권 핵심 권력자와 민주당 인사들의 입장에서 발언한다. 더 강력한 경찰을 지지하고 나섰다. 정의당이 민주당에, 집권 86세대 이데올로기에 포획 당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이 문제를 책에서 민주당의 민주주의관이란 틀로 분석했다.”

- 엘리트 지성을 강조하지만 책에서는 또 한 편으로 엘리트의 지대 추구가 민주주의와 개혁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재벌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는데,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개혁 방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엘리트라는 규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성’이란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의 측면이다. 앞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건 전자 측면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후자도 봐야 한다. 후자 측면에서 중요한 건 지대를 얻는 경제·정치적 힘이다. 이 힘은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보장된다. 엘리트는 자신의 ‘지대 추구’를 보장하는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재벌의 금권이었다. 이 금권이 행정부와 의회를 포획했다. 한국 경제를 둘로 무 자르듯 나눈다면, 재벌경제와 비재벌경제로 나눌 수도 있다. 둘 사이 경제·사회적 격차가 엄청나다. 민주화 이후 여론 정치가 커지면서 최근에는 수도권 중산층의 여론 정치도 지대 추구를 보장하는 제도 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대기업 공공부문 정규직, 수도권 아파트 소유자가 그들이다. 일자리 지대와 부동산 지대는 21세기 한국적 불평등의 핵심이다. 당연히 개혁 방안은 재벌 지배구조 개혁, 이중분단 노동시장 개혁, 부동산 개혁 등의 이름으로 엄청나게 많이 나와있다. 어느 정도 학계의 합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실행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일까? 나는 책에서 이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결함으로 분석했다. 대통령 한 명만 포획하면 만사형통인 정치 체제에선 지대를 추구하는 엘리트가 손쉽게 국회와 행정부를 통해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이런 것들이 여론의 지지로 포장되기도 한다. 목소리 큰 세력이 여론을 대변하니 말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전부는 아니지만 수많은 개혁의 시작점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를 개혁해야, 한국형 지대 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이런 균열이 있어야 지대 추구 자체를 억제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이 행정부, 입법부, 심지어 사법부까지 아우르며 제도 개혁에 필요한 물길을 꽉 막고 있는 형국이다.”

-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제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본은 선진국 민주주의 표준인 의원내각제다. 다만, 의원내각제로 가려면 의회가 유능해야 하는데 한국 국회는 정부 조정을 받는 식물 국회, 여야가 극한 대치하는 동물 국회로 퇴화했다. 인간의 국회를 만들어야 의원내각제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대통령이 국회 중심의 정부 운영을 유도하며 국회에 정부 운영 능력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시행령 꼼수 대신 제대로 된 입법을 요청하고, 여러 형태의 사회적 대화나 작은 것 하나라도 여야 협치로 우선 풀어가는…. 사실 생각은 이런데 검수완박 국회를 보니 당분간 이런 기대는 접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거대 야당이 동물 국회를 선택했으니 행정부 입장에서도 먹히느냐 먹느냐 싸움으로 갈 것이다. 당장은 국민만 피곤하게 생겼다. 이 과정을 냉정하게 사회적으로 평가해 공론으로 남기는 게 중요할 것이다.”

- 지난 3월 레디앙에 기고하며 “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제언이, 문재인·민주당에 대해서는 비판이 최소한 몇 개월 동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대 한국에서 사회운동이 재건 되려면 진보의 결함을 은폐하는 ‘보수에 대한 악마적 비난’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진보가 가진 결함이 은폐되는 메커니즘이 바로 보수에 대한 극렬한 반대 투쟁이기 때문이다. 절대악인 보수를 비판하면 진보가 가진 결함이 모두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일례로 광우병, 세월호,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 보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각각을 지금에 와 평가해보면, 어떤가? 광우병은 상당히 과장된 공포였고, 세월호는 지금까지도 진실 공방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박근혜 탄핵은 아무런 제도 개혁도 남기지 못했다. 진보가 보수 정부 하에서 벌인 대중운동에는 분명히 결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모두 드러났다. 이런 식이면 누가 정부를 운영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어려워진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진보가 먼저 스스로를 쇄신해야 한다. 윤 정부에서 이명박·박근혜 시절 같은 촛불 집회와 정치 투쟁으로 민심을 잃은 진보를 재포장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이런 태도에 매우 비판적이다. 이러면 정말 나라가 망한다.”

▲ 지난해 3월4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이듬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다. ⓒ연합뉴스
▲ 지난해 3월4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퇴 입장을 밝히고 있는 모습.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었던 그는 이듬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다. ⓒ연합뉴스

-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혹독한 비판으로 ‘보수로 변절한 것 아니냐’는 질타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특히 대선국면에서 문 정부 및 민주당 비판은 ‘윤석열 지지’라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을 터. 이재명보다는 윤석열이 낫다고 본 것인가?

“두 후보 지지율이 박빙이었기 때문에 이재명 후보에 대한 ‘강한’ 비판은 윤석열 후보를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박빙 상황에서 진보진영은 겉으로는 양비론을 내세워도, 속으로는 그대로 민주당이 낫다는 판단을 한다. 나는 이런 태도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바나 내세우는 공약을 보면, 더 강한 문재인 대통령, 더 타락한 민주당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윤석열 후보가 적극적 의미의 대안은 전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내세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라는 테마가, 민주당 4기를 내세우는 이 후보 보다는 한국 사회에 더 필요하다고 봤다. 이런 입장 때문에 진보 진영에서 참으로 욕을 많이 먹긴 했다. 반보수라는 철칙이 30년 넘게 유지된 진보진영이다. 이런 입장이 수용되기 어려웠다.”

- 구체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의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간단하게 말해 뭔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 것보다 하지 말 것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고, 제왕적 권력을 행사해서 달성할 목표는 최소화한 채로 국회나 사회적 대화기구 등에 자신의 권한을 넘겼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되면 욕심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자유민주주의나 법치에서, 가장 정통적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아니라 입법부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고, 대통령이 아니라 공정한 사법기관,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만들어지는 시민들의 탄탄한 규범이 법치의 요체다.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앞장서려다 권력남용이 발생하는 거고, 대통령이 법치 앞장서려다가 정치의 사법화니 사법의 정치화니 하는 현대 정치의 타락이 발생하는 거다.”

- 문재인 정부 5년, 이후 진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일본에는 ‘회한의 공동체’라는 말이 있다. 군국주의를 막지 못한 책임을 느낀 일본 지식인들의 성찰을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드러난 민주주의 타락을 제대로 막지 못한 책임은 진보에 있다. 진보진영이 ‘회한의 공동체’ 블록을 만들어내야 하는 이유다. 그런다고 민주주의 추락을 막을 수 있겠냐고도 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는 성숙을 통해 단단해진다. 회한 속에서 새로운 세대, 새로운 집단이 공론에 참여하고 숙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보다 성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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