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天安門) 사건 당시 시위에 참여했다가 박해를 받은 중국인 A씨가 지난 2월 난민 불인정 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

A씨의 난민 지위를 인정한 판결로 법원은 법무부 산하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이 지난 2019년 7월 A씨에게 내린 난민 불인정 처분을 취소했다. 판결은 지난 3월8일 확정됐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5년간 수감된 인물이다. 톈안먼 사건은 중국 정부가 1989년 6월 개방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학생과 시민을 군대를 동원해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A씨는 중국 정부가 국가 전복 선동으로 간주하고 있는 ‘08헌장’ 서명자 303인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08헌장은 중국 입헌 100주년, 세계인권선언 발표 60주년을 맞아 2008년 12월 중국 학자와 변호사·언론인 303명이 실명으로 중국 민주화를 촉구한 사건이다. 

▲ 중국 톈안먼(天安門) 광장. ©pixabay
▲ 중국 톈안먼(天安門) 광장. ©pixabay

이 밖에도 A씨는 톈안먼 사건 30년을 맞아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중국 정부는 톈안먼 시위에 대해 절대 사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중국 정부에 줄곧 비판적이다. 

A씨는 2018년 10월 관광·통과(B-2-2) 체류 자격으로 한국에 입국한 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 인정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국은 이듬해 7월 난민협약, 난민의정서에서 규정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난민 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A씨가 톈안먼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94년 석방된 사실은 인정했으나 톈안먼 시위는 30년 전 종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난민 신청의 직접적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A씨에 대해 “귀국 시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하나 반정부 단체에 가입하거나 중국 정부 주목을 받을 만한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아 체포 당할 이유가 없어 보이고, 2018년 4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고 함에도 한 달 후 딸과 함께 해외 여행을 다녀온 점, 2018년 9월 아무 문제 없이 출국한 점 등으로 봐 충분한 공포로 인해 자국을 탈출해 난민 신청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난민법과 난민협약이 규정하는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었다. 

난민 불인정 처분에 불복한 A씨는 법무부 장관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지난해 3월 같은 이유로 기각됐다. A씨가 지난해 4월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까닭이다. 

지난 2월15일 A씨 손을 들어준 제주지법 제1행정부는 중국에서 톈안먼 사건과 08헌장이 갖는 의미를 짚었다. 재판부는 “톈안먼 사건 당시 시위 참여자들은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처벌됐고 그 가운데서도 원고(A씨)는 징역 8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며 “이후 30여 년이 지났으나 톈안먼 사건을 ‘반혁명 폭동의 진압’으로 보는 중국 정부 입장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참여한 ‘08헌장’에 대해서도 “08헌장 발표를 주도한 류샤오보가 국가전복선동죄로 처벌되는 등 서명자 303인 중 10여 명은 감옥이나 재교육수용소에서 복역했고, 일부는 경찰 감시나 경구금을 경험했으며 일부는 여행금지, 실직 등 다양한 형태의 보복을 당했다고 알려졌다”며 “이후 08헌장 발표를 국가전복선동으로 보는 중국 정부 입장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재까지 중국에서 톈안먼 사건이나 08헌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당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인터넷 포털이나 소셜 미디어에서 ‘톈안먼 사건’, ‘6·4 사건’ 등의 단어에 의한 검색은 차단되고 있다”며 “원고(A씨)는 톈안먼 사건 당시 시위 참여를 이유로 구속 수감됐다가 1994년 석방된 이후 및 08헌장 발표에 참여한 이후 한국에 오기 전까지 매년 톈안먼 추모 행사, 08헌장 기념 행사를 열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는 2018년 10월 한국에 입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민 인정 신청을 했다”며 “원고가 중국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다른 목적(여행이나 취업 등)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는데 그가 ‘중국 정부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고 중국에 돌아갈 경우 체포·구금될 수 있다’는 주관적 공포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보이고 그 공포의 정도도 매우 크다고 할 것”이라며 “중국 내 다른 사람이 원고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느낄 객관적 공포의 유무나 정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원고는 난민법 제2조 제1호에서 정한 난민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피고(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가 한 난민 불인정 처분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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