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이 추진되는 상황을 보면 검사가 이 사건을 송치받아서 (계곡살인) 3차 살해 시도만 알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상태로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기소하면 범의가 입증이 안 돼 무죄가 선고된다. 무혐의 처분해서 종결했을 것이고, 피해자 유족들은 평생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했을 것 같다. 지금도 많은 살인사건이 검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계곡살인’ 사건을 담당하는 조재빈 인천지방검찰청 1차장검사가 지난 19일 SBS ‘[단독인터뷰] ‘계곡 살인’ 지휘 차장검사 “이은해-조현수 전국 돌아다녔다”’제목의 기사에 출연해 한 발언이다. 조재빈 검사는 17분짜리 인터뷰 영상에서 12분간 사건 관련 이야기를 하고, 5분간 검수완박 관련 이야기를 했다.

▲조재빈 인천지방검찰청 1차장검사가 지난 19일 SBS ‘[단독인터뷰] ‘계곡살인’ 지휘 차장검사 “이은해-조현수 전국 돌아다녔다”’제목의 기사에 출연해 ‘계곡살인’ 사건 내용에 대해 12분간 말한 뒤 ‘검수완박’ 관련 내용을 5분간 이야기했다. 사진=SBS뉴스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조재빈 인천지방검찰청 1차장검사가 지난 19일 SBS ‘[단독인터뷰] ‘계곡살인’ 지휘 차장검사 “이은해-조현수 전국 돌아다녔다”’제목의 기사에 출연해 ‘계곡살인’ 사건 내용에 대해 12분간 말한 뒤 ‘검수완박’ 관련 내용을 5분간 이야기했다. 사진=SBS뉴스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수사 중인 사건 관련 공보는 ‘공보관’이 담당한다. 지난해 8월 법무부 훈령이 개정돼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라 수사·공소유지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공보관이 공보 업무를 전담한다. 또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 의결 없이 피의사실과 수사상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지난 19일 SBS 인터뷰 영상을 보면 조 검사는 12분간 계곡살인 사건 관련 이야기를 했다. 법무부 훈령 원칙을 깬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천지검은 그동안 훈령에 따라 공보관 외의 수사 관련자는 인터뷰하지 않았다. 사건 담당 차장검사의 이례적인 행보에 인천 경찰·지검·지법 기자단 간사인 A 연합뉴스 기자는 단체 카톡방에서 “방송 인터뷰 영상은 17분짜리였는데 대부분 계곡살인 관련 내용이고, 마지막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이 조금 들어갔다. 사건 관련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피의자들의 도피와 관련한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며 ‘공보 준칙이 무너진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B 방송사 기자는 “조재빈 1차장 검사 인터뷰는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취재의 자유라 과도하게 통제하는 건 무리다. 인권보호관 말고 다른 입을 통해 나오는 사실관계는 기사로 쓸 수 없는 것인지 우려된다”며 “기자들 스스로 취재 제한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C 종합일간지 기자는 “취재 제한이 아니라 검찰의 언론 대응 행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인천지검은 철저한 통제, 제한, 외부 인터뷰 거부 등으로 일괄해왔는데, 검수완박 이후 뜬금없이 이례적인 행태를 보인 점을 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지난 21일 연합뉴스TV ‘뉴스프라임’에 출연해 검수완박 반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지난 21일 연합뉴스TV ‘뉴스프라임’에 출연해 검수완박 반대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계곡살인 수사 검사가 사건 관련 인터뷰한 이유’에 대해 인천지검 공보관은 26일 미디어오늘에 “긴급하게 상황이 전개되는 검수완박 때문에 인터뷰에 나섰다. 계곡살인 사건 관련 인터뷰를 한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검수완박 보다 계곡살인 이야기가 많았다’는 지적에 공보관은 “언론사 측에서 사건 관련 질문을 해서 기사가 나간 것 같다. 그런데 계곡살인 사건이 검수완박에 반대해야 하는 적합한 사례이기도 하다. 경찰 송치 이후 검찰에서 전면적으로 보완 수사를 해서 사건 실체를 규명했다는 내용이라 사건이 언급됐다. 인터뷰 취지는 검수완박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법조 출입을 했던 종합일간지 D기자는 “검수완박은 자기들과 직접 관련 법안이니 목소리 낼 수 있다고 해도, 검수완박 이야기하려다가 피의사실 공표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법조 출입 기자였던 종합일간지 E기자는 “검수완박 저지를 위해 검찰 수사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거꾸로 방송 인터뷰 자체가 검찰이 얼마나 수사지휘, 종결, 공개 등의 권한을 정치적으로 검찰 집단의 이익에 맞게 사용하는지, 언론 플레이를 극심하게 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인천지검, 6일간 검찰 직접수사 성과 보도자료 쏟아내

‘검찰 직접 수사 등을 통한 중대 성폭력 사범 엄단’(18일) ‘검찰 직접 수사 등으로 서민 피해 범죄 엄단’(20일) ‘특사경 사건 송치 후 검찰 직접 수사를 통한 중요경제범죄 엄단’(21일) ‘자유형 미집행자 및 고액벌금 미납자 직접 검거해 엄정한 형집행’(21일) ‘검찰 직접 수사 등을 통한 범죄수익환수 및 자금세탁범죄 엄단’(21일) ‘20대 대선 경선 관련 언론제보 등 대가 제공 사건 수사결과’(22일).

▲인천지검이 지난 18일부터 검찰 수사 성과 관련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사진=인천지검 보도자료.
▲인천지검이 지난 18일부터 검찰 수사 성과 관련 보도자료를 쏟아냈다. 사진=인천지검 보도자료.

인천지검이 지난 18일부터 검찰의 직접 수사로 범죄자들을 검거한 사례의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18일 ‘성폭력 사범 엄단’ 보도자료를 보면 인천지검은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경찰이 불구속 송치하거나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직접 추가수사, 경찰에 대한 재수사요청 등을 통해 숨겨진 사실을 추가로 밝혀내 중대 성폭력 사범 29명을 직접 구속해 기소했다고 알렸다. 별첨 자료에는 “피해자의 부모는 피해자가 피의자가 무서워 집 밖에도 제대로 못 다녔는데 구속돼 재판을 받는다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며 검찰에 감사를 표시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한 방송사의 F기자는 “(검사와 수사관, 공보관 등) 만남은커녕 이미 보도가 나간 사건에 대해 물어봐도 전화조차 되지 않는다. 통화가 안 되니 취재 자체가 원천 불가하고 자동응답기 식으로 문자를 남겨달라며 수신 거부한 뒤 문자로 ‘확인해드릴 수 없습니다’만 무한 보내는 공보관도 수두룩하다”며 “그랬던 공보관들이 죄다 검수완박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일부 지검에서는 간담회까지 개최하니 ‘저런 게 가능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도 안 하면서 잇속 챙기기에만 열을 올리니 차라리 검수완박이 됐으면 좋겠다는 자조도 매체 성향을 가리지 않고 나온다”고 토로했다.

F기자는 이어 “(인천지검의) 피의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힌 보도자료는 너무 의아하다. 26일 동부지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수완박이 되면 이런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국민 상대로 협박하는 것 아닌가. 경찰을 깔보는 검사 지상주의 심리가 깔려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천지검의 이 같은 언론 대응에 지난 22일 노컷뉴스는 ‘검수완박 앞에 깨진 원칙… 아쉬울 때만 손 내미는 검찰’ 제목의 기사에서 “성범죄 수사 사례를 알리기 위해 지켜오던 원칙을 깨고, 검수완박을 막기 위해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도 스스로 어겼다. 검찰도 급하면 원칙과 규정을 얼마든지 깰 수 있다는 걸 드러낸 것”이라며 “검찰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소통에 나섰는가 아니면 필요에 따라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소통하는가”라고 했다.

대구·대전지검장, 방송 출연… 제주지검장, 한국·한겨레·중앙 기고

검수완박 관련해 언론 대응에 나선 건 인천지검뿐만 아니다. 대구지검장과 대전지검장은 언론 인터뷰에 활발히 나서고 있다, 또 제주지검장은 언론에 기고글을 보내고 있다. 춘천·울산·대전·의정부·부산·창원지검 등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검수완박 반대 이유를 기자들 앞에서 설명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지난 12일부터 CBS와 JTBC, 채널A, MBN 등에 출연해 검수완박 반대 인터뷰를 하는 장면.
▲김후곤 대구지검장이 지난 12일부터 CBS와 JTBC, 채널A, MBN 등에 출연해 검수완박 반대 인터뷰를 하는 장면.

대구지검장과 대전지검장은 방송에 출연해 검수완박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지난 12일 CBS 노컷뉴스 ‘김현정의 뉴스쇼’에 전화연결로 출연했다. 또 같은 날 JTBC ‘뉴스룸’에도 출연했다. 이후에도 채널A ‘뉴스A 라이브’, MBN ‘종합뉴스’, 경향신문 등과 인터뷰했다. 노정환 대전지검장은 지난 21일 연합뉴스TV ‘뉴스프라임’,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등에 출연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은 지난 14일 ‘범죄가 처벌받지 않고 증발되지 않으려면’ 제목의 한국일보 기고를 시작으로, 한겨레(‘어느 중학생의 죽음’)와 중앙일보(누구를 위한 ‘검수완박’인가)에도 검수완박 관련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14일 한국일보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14일 한국일보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18일 한겨레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18일 한겨레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20일 중앙일보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이원석 제주지검장이 지난 20일 중앙일보에 검수완박 관련 내용의 기고를 했다.

김동찬 언론연대 정책위원장은 “법무부 훈령이 있어 검사들은 언론의 취재를 피하고 싶을 땐 기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검찰의 필요에 따라 규칙을 깬 거로 보인다. 검찰의 필요에 따른 예외가 발생하면 규칙을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며 “검수완박 인터뷰를 하려고 했는데 계곡살인 사건 질문이 있어 답변했다는 건 충분한 해명이 되지 않는다. 원래 인터뷰하기로 한 내용을 인터뷰하면 된다. 계곡살인 사건 역시 아직 의혹에 불과한 것이고 재판을 통해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구체적인 수사 내용은 피의사실에 해당할 텐데 특정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힌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이어 “다만 검수완박 관련된 인터뷰는 훈령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언론 인터뷰와 기고 역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검찰은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충분히 입장을 밝힐 수 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신문 지면, 방송 인터뷰하는 게 일반인에게는 어려운 일인데 쉽게 언론에 나설 수 있는 게 검찰이 권력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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