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신라젠 투자’ 의혹을 보도한 MBC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지난 1월 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판사는 MBC 보도 공공성은 인정했지만 전언에 의존한 경솔한 보도였다고도 판시했다. 최 전 부총리가 항소하지 않아 재판은 지난 2월18일 확정됐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020년 4월1일 “‘최경환 측 신라젠에 65억 투자 전해 들어’”라는 제목으로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주장을 보도했다. 주장 요지는 이 전 대표가 2014년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5억 원, 그의 주변 인물이 60억 원을 신라젠 전환사채에 투자했다는 말을 신라젠 대표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020년 4월1일 “‘최경환 측 신라젠에 65억 투자 전해 들어’”라는 제목으로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주장을 보도했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020년 4월1일 “‘최경환 측 신라젠에 65억 투자 전해 들어’”라는 제목으로 신라젠 대주주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주장을 보도했다. 사진=MBC 보도 화면 갈무리.

MBC는 이 보도 전날인 3월31일에는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이 전 대표에게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 비위를 털어놓으라고 협박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최 전 부총리가 신라젠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보도는 검언유착 의혹 후속 보도로 왕종명 앵커는 “(검언유착 의혹의) 실체를 좀더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현재 수감 중인 이철씨를 직접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여기에는 어제(3월31일) 보도와는 또 다른,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면서 최 전 부총리 의혹을 설명했다. 

밸류인베스트코리아는 3만3000여명을 상대로 7000억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투자 사기업체로 이철 전 대표는 지난 2019년 9월 7000억원대 투자 사기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최 전 부총리 측은 보도 직후 MBC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MBC 기자와 이 전 대표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MBC 기자들을 상대로는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1월27일 이 전 대표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남부지법에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대표의 ‘최경환 신라젠 투자’ 주장을 허위로 본 것이다. 반면 의혹을 보도한 MBC 기자 등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 불기소 처분했다. 이 전 대표 주장을 전했을 뿐 명예훼손 혐의 공범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 

“충분한 진위조사 없이 보도… 상당히 경솔”

서울서부지법 민사9단독 김선희 판사는 지난 1월25일 최 전 부총리가 장모·신모 MBC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1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MBC 기자들 손을 들어줬다. 

최 전 부총리 측은 “원고(최경환)와 원고 측근이 본인 명의 또는 차명으로 신라젠의 전환사채를 인수한 적 없다. MBC 보도는 이철의 일방적 진술에만 기초했다”며 “차명, 본명 투자와 관련해 신라젠의 법인등기부 등 이철의 진술이 진실인지 여부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은 채 허위 보도를 했다. 피고들(MBC 기자들)은 이미 허위로 밝혀진 채널A 사건의 신빙성을 강화하기 위해 원고가 신라젠에 투자했지만 검찰 조사도 받지 않았다는 취지로 허위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김 판사도 보도의 진실 여부에 관해 △신라젠과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사이 전환사채 인수계약서에 원고(최경환) 이름이 없는 사실이 인정되고 △MBC 기자 측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신라젠에 투자한 재단법인 등이 원고 주변 인물에 해당하고 투자금이 원고 측 자금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최 전 부총리와 주변 인물들이 신라젠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MBC 보도 내용이 진실한 사실이라고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판사는 “피고들(MBC 기자들)은 보도 신빙성에 관한 객관적 자료가 전혀 없는데도 이철의 전문 진술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보도했다”며 “원고 이름의 투자가 없었음은 명백하게 확인되고, 그런 내용은 이철이나 신라젠으로부터 전환사채 인수약정서를 확보해 확인해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여기에 이 사건 보도 내용이 곧바로 보도해야 할 만큼 사안의 긴급성도 인정되지 않는 점을 더해 보면 피고들이 적절하고 충분한 진위 조사 없이 보도한 것은 상당히 경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국정원 뇌물 의혹 관련 조사를 받고 2017년 12월7일 오전 5시50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국정원 뇌물 의혹 관련 조사를 받고 2017년 12월7일 오전 5시50분께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적 사안으로 보도 필요성 인정”

그러나 김 판사는 MBC 보도가 최 전 부총리 비방을 목적으로 한다거나 악의적으로 이뤄진 불법행위였다는 원고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판사는 다음과 같이 근거를 들었다.

△이철 전 대표가 운영하는 밸류인베스트코리아가 2014년 3월 초부터 지속적으로 신라젠 전환사채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됐기 때문에 MBC 기자들이 ‘이철이 신라젠 대표로부터 투자자에 관한 정보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가 아니라는 점 △MBC 기자들이 보도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최 전 부총리 보좌관, 신라젠 및 신라젠 대표로부터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고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

△MBC가 보도에서 “오늘 보도하는 내용은 수감 중인 이철씨 주장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우리는 당사자의 충분한 반론을 포함해 이번 의혹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취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등 이 사건 보도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보도 신빙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 △MBC 기사는 ‘돈의 성격과 실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보도를 마쳤고, 보도 어디에도 최 전 부총리와 그 주변 인물이 신라젠에 투자했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한 적 없다는 점.

△최 전 부총리는 공적인 존재로서 MBC 보도 내용은 순수한 사적 영역이 아니라 공직자윤리법 위반 여부 등 공공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으로 보도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 이를 근거로 최 전 부총리 주장을 기각한 것이다. 

한편, 최 전 부총리 측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철 전 대표를 고소한 사건의 재판은 진행 중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오상용 부장판사는 지난 22일에 열린 이 전 대표 공판기일에 앞서 MBC 기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기자들은 법원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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