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마지막날, 총선과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연령제한이 25세에서 18세로 내려갔다. 이후 처음 있는 6월 지방선거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만19세(2003년 2월생) 후보가 출마한다. 특성화고 졸업, 다문화가정 출신, 여성 그리고 진보당. 소수자 정체성이 중첩된 신은진 경기도의원 비례후보를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럼에도 준비되지 않은 질문을 듣기 좋은 말로 두루뭉술하게 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들과 달랐다. 

신 후보는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후 아버지와 살았다. 다문화가정이자 한부모가정이다. 대학에 진학한 언니가 있는데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특성화고 진학을 택했다. 취업이 잘된다는 한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2학년 진학을 앞두고 담임선생님이 도제반을 제안했다. 보통 3학년때 현장실습에 가지만 도제반은 그전부터 일주일에 하루 정도 회사에 다닌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고 회사생활을 미리 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세무행정 도제반에 들어갔다. 

그가 다닌 세무법인은 현장실습생에게 교육 체계를 잘 갖춘 편이었지만 이런 회사는 드물었다. 주변 친구들을 보니 강의를 듣고 일을 배우기보다 자습을 하거나 청소, 복사, 영수증 붙이기 등 전공과 무관한 ‘잡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는 특성화고 학생들을 향후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동료로 생각하기보단 비정규직, 값싼 노동력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선 취업교육이 부족했다. 별도로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따야했다.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가 12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은진 후보 측 제공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가 12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은진 후보 측 제공

 

3학년이 됐다. 신 후보는 지난해 결성한 전국특성화고노조 조합원이다. 노조지부장이 도제반의 경우 시험만 통과하면 정규직이 되는 법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러나 학교에선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회사에 제자들 취업을 부탁할 위치에 처한 교사들이 정규직 전환까지 요청하기 어려운 현실 탓이다. 도제반은 일반반에 비해 학교에서 주는 취업처 관련 정보제공이 적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성적이 높은 학생들에게만 취업처를 따로 알려주는 불공평한 일도 겪었다. 

신 후보는 특성화고 중에서도 좋다고 평가받는 학교에서, 혜택받는 학생에 속했다. 다만 세무행정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취업을 하지 못했다. 대신 지방선거 경기도의원에 출마하기로 했다. 신 후보는 “기성정치인들이 우리를 대리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청소년 당사자가 직접 정치에 나서겠다”며 출마 이유를 밝혔다. “차별을 넘는, 10대 정치”가 그의 슬로건이다. 

신 후보와 같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 졸업 이후 처한 노동현실은 처참하다. 지난해 10월 여수 앞바다 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홍정운, 같은해 4월 평택항 컨테이너 보수작업하다 사망한 이선호, 2017년 전주 콜센터에서 업무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아무개, 같은해 11월 제주 생수공장에서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실습생 이민호, 2016년 5월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군 등 특성화고 출신 고졸노동자의 죽음은 신 후보 앞에 놓인 과제다.  

-왜 경기도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하게 됐나?

“경기도 오산 토박이로 평생 경기도에서 살았다. 교육, 주거복지, 청년일자리, 무상급식·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교복, 경기도학생인권조례와 청소년노동보호조례 등 경기도의 청소년 복지를 누리고 살았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 선별적 정책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 더욱 열린 정치환경이 필요하며 차별과 배제 없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출마했다.”

-특성화고노조 조합원이자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진보당을 선택한 이유는?

“중학교 때부터 다닌 지역아동센터가 있다. 거기서 진보당 당원들을 만나면서 자랐고, 탄핵 당시 촛불집회를 같이 가거나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특성화고에 진학하기로 하면서 특성화고노조에도 참여하게 됐다. (특성화고노조위원장도 진보당원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진보당을 접해서 그런지 은연중에 출마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진보정치의 한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노조에 가입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나?

“나처럼 도제반인 친구가 지난해 초 실습간 회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한달 정도 지나서 내게 털어놨는데 학교에서는 질질 끌다가 사건을 은폐했다. 그러다 지난해말 다시 공론화했는데 노조에서 함께 싸웠다. 그 친구는 항상 움츠리고 있고 소심해보였는데 노조와 함께 투쟁하며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면서 표정이 달라졌다. 그 변화를 눈으로 보니까 노조가 필요하구나 싶었고, 당사자의 삶이 변하는 것이 인상깊었다. 특성화고 출신 고졸노동자들에게 첫 사회생활은 더 각박하고 어렵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지만 학교에선 노동교육을 영상으로 한두번 보여주는 식이다. 형식적인 노동교육말고 노동에 대한 가치, 노조할 권리 등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노조를 하면서 부당한 노동현실을 인지했고 차별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다. 노조를 통해 청소년 직접정치의 필요성도 느꼈다.” 

-흔히 고등학생은 입시준비하는 존재로 인식된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삶은 여기서 많이 벗어나 있을 것 같다.

“특성화고 학생은 비주류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다. 실제 경기도 교육 예산을 보니 수능시험을 위해 경기도의회가 500억원 가까이 사용하던데 특성화고는 담당부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성화고만을 위한 예산이 얼마인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도제학교 예산(특성화고 도제반 학생 최저임금 예산) 고작 14억원을 두고 논란이 있더라.”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를 비롯해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측은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 학교 학생생활인권규정 전수조사 실시와 인권침해 규정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신은진 후보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를 비롯해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 측은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 학교 학생생활인권규정 전수조사 실시와 인권침해 규정 개정을 촉구했다. 사진=신은진 후보

 

신 후보가 속한 진보당 청소년특별위원회는 경기도내 486개 고등학교 규정을 전수조사해 97% 학교에서 인권침해규정을 발견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고교학칙 전수조사를 촉구했다. 

지난 3월에 발표한 전수조사 보고서를 보면 “자기 반성의 시간 갖기(성경읽기, 자아성찰문 쓰기, 명심보감 읽기)”, “3회 노크하고 문 열고 선생님 앞에서 15도 허리 굽혀 인사하기”에 이어 인사멘트까지 규정하는 등 학생들의 구체적인 행동까지 통제했다. 배달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규칙도 다수 학교에서 발견됐고, 외모에 대한 통제나 연애를 금지하는 학교도 있었다. 

심지어 ‘북한을 찬양하면 퇴학’이라는 규정도 있었는데 해당 학교가 중간에 규정을 삭제해 최종보고서엔 실리지 않았다. ‘산재사고는 본인이 책임진다’는 규정 등 학교가 학생보호에 소홀한 경우도 있었다. “학교장이 허가하지 않는 정치모임 금지”, “외부 불순세력 가입”이나 “정치 관여 행위”를 금지하기도 했다. 노조활동을 사실상 금지하는 규칙도 있었다. 당 청소년특별위는 한달 넘게 이를 전수조사한 뒤 최근 학교들을 찾아다니며 피해사례를 모으고 서명을 받는 활동을 진행 중이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을 찾는 게 요즘 신 후보의 주요 일정 중 하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16~39세 청소년·청년들에게 의견을 듣고 일부를 국정과제에 반영하겠다며 ‘이청득심’ 컨퍼런스를 공지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누구나 지원 가능한 것처럼 돼 있지만 ‘특정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제외한다’는 단서가 있다. 이것 또한 차별과 배제다. 편향된 의견만 선별할 수도 있지 않나. 기성정치가 만든 판에 대리로 목소리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모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 정당가입 연령이 만 16세로 제한이 있고 부모동의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제한이 사라져야 청소년들의 정치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번에 피선거권 연령이 18세로 내려왔는데, 16세까지 낮아져야 한다고 보나?

“진보당은 정당가입 연령과 피선거권 나이가 같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만 18세가 되면 정치성향이 정립되고 최선의 투표를 하게 되나? 성인이라고 무조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배제할 이유는 없다.” 

-기성정치권, 거대양당의 청소년을 어떻게 바라본다고 생각하나?

“선거기간에만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과 청년이 미래라면서 정치적으로 배제하고 이들을 위한 정치가 없다. 윤석열 당선자도 후보 시절 ‘공정한 내일’이라며 청년들과 함께 하겠다고 했지만 현재 인수위도 청년들이 실무보좌진 정도로 임명된 상태다. 보여주기식 아닌가.” 

신 후보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출마를 결정했느냐”, “어린데도 말을 잘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칭찬의 의도일 수 있지만 어리면 미숙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며 “사회를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에 차이가 없을 텐데 나이에 대해 언급할 필요도 없지 않나”라고 했다. 이에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청년들이 직접 정치를 하도록 만드는 청년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 지난달 29일 인수위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 사진=신은진 후보
▲ 지난달 29일 인수위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 사진=신은진 후보

 

신 후보는 새 정부가 청년과 청소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듯, 교육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 앞에 찾아가 1인시위도 진행했다. 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 이미 특성화고·일반고·특목고 등 여러 유형의 고등학교가 있는데 이를 모르고 유형을 나누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인수위에 교육전문가는 보이지 않고 이명박 정부 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이 제안한 개혁안이 인수위에서 검토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 전 장관은 특성화고 중 예산지원을 독식하는 마이스터고를 만들고 특성화고 내부의 격차를 극대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새 정부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일각에선 ‘대학나온 사람들도 취업이 안 되는데 특성화고 출신들은 취업 잘 되지 않느냐’, ‘고졸이니 열악한 일자리 가는 게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본다. 이에 대한 의견은?

“취업을 하고 싶어 지원한 학생들, 취업을 못한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학교나 정부가 안전한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나. 취업률은 사실 학교에서 뻥튀기한 수치다. 많은 학생이 속았다고 생각한다. 안전한 일터, 공정한 임금은 누구에게나 적용해야 한다. 능력에 따라 누구는 보장해주고 누구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다. 누구나 좋은 일터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청년이 아닌 유권자들이 신 후보를 지지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특성화고노조와 진보당에서 활동한다고 청소년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는 것, 누구나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배우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기성세대라고 다 귀족이 아니다. 40대 이상 유권자라고 다 육아를 해봤거나 노동환경에 만족한다는 보장도 없다.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가 12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은진 측 제공
▲ 신은진 진보당 경기도의원 후보가 12일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신은진 측 제공

 

신 후보의 공약은 크게 7가지다. ‘미래정책 공동협의기구 설치’ 조례를 만들겠다고 했다. 신 후보는 “정치권의 이권다툼에 우리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배제되고 있는 청소년들이 직접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정에 청소년과 청년의 의견 수렴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공약이다. 

청소년 기본수당지원조례도 제정하고 싶다고 했다. 신 후보는 “한국 사회에선 고졸노동자에게 색안경을 끼고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기에 학력차별을 없애기 위한 블라인드 채용을 강화해야 한다”며 “자산불평등은 교육불평등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모든 청소년들에게 기본수당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현장실습 예산 확대와 공공기관 고졸노동자 의무채용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성화고 졸업생 취업지원 조례 제정, 디지털리터러시·인권·젠더·노동 등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다양성교육센터 설립, 청년들 월세 부담으로 월 10만원으로 낮추는 등 청년주거비지원 조례 제정, 청소년들의 쉴 권리와 교내외 자치활동 등을 보장하는 공간 마련, 무료심리상담 등 청소년과 청년 건강권 보장 등을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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