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인격권 명문화’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본격적인 법안 논의 국면에서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법무부는 인격권 도입으로 가짜뉴스(허위정보), 디지털성범죄 등 피해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인격권을 빌미로 폭로나 의혹 제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 5일 법무부는 인격권 및 인격권 침해배제·예방청구권을 명문화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인격권 조항을 신설하고, 인격권이 침해당할 시 손해배상 등 피해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인격권을 ‘생명과 신체, 건강, 자유, 명예와 사생활, 성명이나 초상, 개인정보 등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로 정의했다. 인격권은 개인 뿐 아니라 법인 등에도 적용된다. 인격권은 판례를 통해 인정을 받아왔지만 법에 명시되지는 않았다.

법무부는 다양한 측면의 피해 구제를 위해 인격권 명문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불법 녹음·촬영, 직장 내 갑질, 학교폭력, 온라인 폭력, 가짜뉴스 유포, 디지털 성범죄, 메타버스 내 인격 침해, 개인정보 유출 등 기존보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위정보 유포나 디지털 성범죄 등 피해자가 피해를 구제하는 과정에서 ‘명예훼손’ 뿐 아니라 ‘인격권 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의미다.

▲ 법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법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인격권 명문화 효과에 관해 “정신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때 인격권이 침해됐고 이로 인해 정신적 손해배상이 있다는 논리 구조가 성립된다”며 “이제는 소송이 많아지고 판례도 많아지면서 배상액에서도 장기적으로 액수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격권 도입의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법인의 인격권 인정 문제’와 ‘인격권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나타나는 문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손지원 변호사는 “법인의 인격권을 명문화하면 공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기업, 단체, 정당 등이 명문화된 권리에 힘입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등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며 “법인의 인격권과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명문화된 ‘법인의 인격권’에 비중을 실어주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명예훼손은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판례가 확실하게 있는데, 앞으로는 녹음이나 CCTV를 공개해 폭로한 경우 공익적 목적이라 하더라도 인격권 침해 여부는 별개로 판단할 수 있다”며 “개정안은 인격권을 타인의 초상, 성명 등 개인정보를 공개할 경우 등 구체적으로 나열했는데 과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오픈넷은 12일 논평을 통해 “타인에 대한 정보를 언급하는 모든 표현행위를 원칙적으로 불법화하여 소송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로 만들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필연적으로 크게 위축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언론 보도 및 미투 운동, 양육비 미지급자 명단 공개, 학교폭력, 폭언 갑질 등 자신의 피해사실을 알리며 가해 당사자 및 사회구성원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하는 사회고발 활동에 가장 큰 저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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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언론중재법 논란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법무부가 언론이 포함되는 상법 개정안을 낸 전례가 있다. 핵심은 인격권 보호 명문화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그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원 실장은 “언론에 의한 인격권 침해를 포함해 언론보도 피해 배상과 언론의 감시 기능의 조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언론현업단체가 요청하여 각계가 참여한 표현의자유와사회적책임위원회가 신중한 권고안을 준비하고 있고, 늦게나마 국회 언론특위도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 한다”며 “이런 논의 과정을 고려하지 않고 법무부가 법인까지 남용할 수 있는 개정안을 낸 것은 행정부의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도 관련 판례가 적용되고 있기에 인격권 명문화 이후에도 변화가 크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있다. 김성순 변호사는 “변호사, 판사 입장에서는 각각 소장을 쓰고 판결문을 쓸 때 판례를 끌어다 쓸 것인가, 조문을 쓸 것인가 정도의 차이인데 기술적으로 용이해진 면이 있는 정도 외의 특정한 효과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피해 구제가 더 활성화 된다거나, 혹은 언론에 대한 침해 가능성이 있는지 등 큰 변화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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