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이후 ‘편파 심의’ 논란이 끊이지 않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직 상임위원이 과거 잘못된 심의 사례를 복기하고 사과했다. 그는 정치적 변화의 계절을 맞아 과거  심의를 복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야권(민주당) 추천으로 2~3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장낙인 전 우석대 언론홍보학과 교수가 2기 방통심의위 회의 내용을 기록한 책 ‘막장 방송? 막장 심의?’를 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을 통해 2기 방통심의위에서 문제가 된 심의 사례를 자세하게 기록했다. 

“잘못된 제재 사과, 지금 의미 되새길 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위원 9명 가운데 6명을 정부 여당이 추천하는 구조다. 방송을 통제하려 한 이명박 정부는 방통심의위를 ‘방송장악 수단’으로 썼다는 지적을 받았다. 방송사가 방통심의위로부터 제재를 받게 되면 방송사 재허가 재승인에 감점을 받는 등 불이익이 따르는 상황에서 표적 심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걸쳤던 2기 방통심의위의 ‘무리한 심의’는 법원에서 패소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나 방통심의위원들 임기 내에 소송이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패소 이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심의에 항의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 기자회견
▲ CBS '김현정의 뉴스쇼' 심의에 항의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 기자회견

장낙인 전 위원은 ‘머리말’을 통해 사과했다. “잘못된 제재 조치 때문에 오랜 시간 마음 고생을 했을 방송인들께 필자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사과를 한 바가 없다. 필자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방통심의위 위원으로서, 늦었지만 이 책의 지면을 통해 그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

20대 대선 결과 국민의힘이 집권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6대3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논란이 되는 심의가 있었다. 대선 국면에서 책을 집필했던 장낙인 전 위원은 과거 심의를 지금 짚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관련된 재판 결과들이 말해주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야 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또다시 찾아오는 정치적 변화의 계절을 맞아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몇 년 후 또 이런 책이 나오지 않도록 방송심의 시스템을 올바로 작동시켜달라는 염원을 담아 이 책을 출간한다.”

재판에서 엎어진 ‘표적’ 심의

책의 적지 않은 분량이 방통심의위가 중징계를 결정했으나 사법부가 제재 처분을 취소하거나, 혹은 관련 사안을 다룬 재판에서 제재와 상반된 판단이 나온 사례에 주목했다.

저자는 CBS ‘김미화의 여러분’, ‘김현정의 뉴스쇼’, KBS 2TV ‘추적 60분’, RTV ‘백년전쟁’ 등은 방통심의위 제재를 취소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등장한 당사자가 방송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서 봐주기 심의를 드러낸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의원 관련 보도’ 등도 다뤘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 리스트. 디자인=이우림 기자

2012년 ‘김미화의 여러분’은 팟캐스트 ‘나는꼽사리다’ 진행자인 선대인 경제전략연구소장과 우석훈 내가꿈꾸는나라 공동대표를 초청해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방송은 법정제재 ‘주의’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장낙인 전 위원은 “’김미화의 여러분‘이 법정제재 주의 제재를 받기 2주 전인 2012년 2월 명진스님이 출연했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SBS 라디오 ‘김소원의 SBS전망대-김용민의 뉴스브리핑 코너’가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향한 ‘표적’ 심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징계 결정을 한 건 ‘무리수’였고 재판에서 입증됐다. 장낙인 전 위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1심 판결이 있은 직후에 열린 전체회의 때 필자가 이 판결 결과에 대해 거론한 바 있는데 이때 복수의 여권 추천위원들로부터 나온 발언이 ‘재판은 재판, 심의는 심의’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불방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의 노보를 읽는 조합원
▲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 불방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의 노보를 읽는 조합원

방통심의위는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진실을 가리는 역할도 했다. 당시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전말’ 방송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제시한 ‘간첩 증거’가 허술하다는 점을 조명하려 했다. 그러나 KBS 사측이 방송 불가 결정을 내렸고, 내부 반발 끝에 가까스로 방송이 나갔다. 시련은 끝이 아니었다. 방통심의위가 이 방송에 ‘경고’ 중징계를 결정했다. 

책에 따르면 당시 심의에서 권혁부 부위원장(당시 여권 추천)은 “우리나라에 들어와 법적 혜택을 받으며 간첩 활동을 한 사건”이라며 ‘간첩’을 단정했다. 박만 위원장은 “추적60분은 한쪽의 주장만 사실로 인정해버려 왜곡된 여론을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으로 인해 국정원 주장이 허위이고, 추적60분 보도가 진실이라는 점이 드러났지만 역시 사과는 없었다. 장낙인 전 위원은 “방통심의위의 역사에 또 하나의 국가가 공인한 부끄러운 과거로 기록되게 되었다”고 했다.

전례 없는 종편 ‘막장 시사’ “방송심의 행태 바꿨다”

장낙인 전 위원은 2기 재임 기간 중 내용이 과했던 방송을 ‘막장 방송’으로 규정하고 관련 심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방송심의의 행태와 내용을 확연하게 바꿔놓은 것은 바로 종편 방송의 시작이었다”며 “2012년 초부터 방송심의와 관련해 종편 이전과 종편 이후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심의 건수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을 뿐 아니라 종일 편파방송을 하던 일부 종편에 대한 여권 추천위원들의 지극적 편애와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심의 업무를 합의 중심이 아닌 쟁투 중심으로 전환시켰으며 이러한 양상은 3기 방통심의위까지 이어진 바 있다”고 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제실 모습.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정무특보에 최근 임명된 장성민씨가 진행했던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사례가 대표적이다. 장성민 앵커는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을 다루며 “북한의 특수 게릴라들이 어디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돼 있는지 그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 심의에서 오동선 TV조선 보도본부 전문위원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유포돼 이를 바로잡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장낙인 전 상임위원은 “이것이 방송입니까. 제도권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인터넷 1인 방송에서 하는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채널A ‘이언경의 직언직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이 심은 간첩’이라는 취지의 탈북자 주장을 여과 없이 방영해 중징계를 받았으나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 방송보다 제재 수위가 낮았다.

TV조선 ‘뉴스쇼판’의 경우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해 박원순 시장 등을 종북으로 규정한 발언이 가장 수위가 낮은 경징계(행정지도)인 ‘의견제시’에 그쳤다. 장낙인 전 위원은 이 같은 봐주기 심의가 종편의 문제적 방송이 확산되는 데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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