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은 어느 때보다 ‘여성 배제’ 논란이 큰 선거였다. 20대 남성 표심잡기에 나선 정치권은 ‘청년 정치’를 표방하며 성별 갈라치기를 시도했고,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흐름과 함께 여성 배제 정치를 앞세웠다.

‘여성 배제’는 개표방송에서도 반복됐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하 여세연)은 20대 대선이 끝난 이후 MBC·KBS·SBS·JTBC 4개 방송사에서 실시한 TV 개표방송과 대선 다음날(3월 10일) 진행된 특집방송을 중심으로 진행자와 패널 참여자의 성비를 조사해 지난달 24일 발표했다. MBC와 KBS의 경우는 라디오 개표방송도 포함했다.

분석 결과 4개 방송사의 개표방송에 참여한 패널 참여자들 중 여성비율은 17.3%에 불과했다. 여성이 정치에서 주변화되어 있는 현상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일반적인 이야기들은 남성의 역할로 상정하고, 여성 패널에게는 젠더 이슈만 물어본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패널 성비불균형 여전…MBC, 54명 패널 중 여성 단 2명

4개 방송사 전체 진행자 중 여성 비율은 42.9%였다. 방송사별로 살펴보면, KBS는 56.9%, JTBC는 43.2%였고, MBC와 SBS는 각각 32%와 32.4%를 나타냈다.

실제 방송 내용을 살펴보면, 메인 진행자가 여성과 남성 두 명이라고 하더라도 남성이 개표방송 전체를 이끌어가는 경향이 여전히 나타났다. 남성이 주도권을 잡고 진행하고, 여성은 이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에 머무른다는 설명이다. 권수현 여세연 대표는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중요한 멘트나 발언들이 주로 남성 메인 앵커 발언 속에서 나오는 상황”이라며 “여성에게 더 많은 진행의 기회와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 성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 성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패널 참여자의 성비 뷸균형은 더욱 극명했다. 4개 방송사의 개표방송에 참여한 패널 참여자들 중 여성비율은 17.3%였다. 패널의 여성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MBC로 54명의 패널 참여자 중 여성은 단 2명(3.7%)이었고, KBS 또한 41명의 패널 참여자 중 여성은 단 4명(9.8%)이었다. SBS와 JTBC의 여성 패널 참여자는 30%대 수준이었다. 

MBC 라디오 개표방송의 경우 4명의 진행자(표창원, 이진우·서경석, 허일후)가 모두 남성일뿐만 아니라 16명의 패널이 모두 남성이었다. MBC 대선 개표방송과 관련해 여성 패널 참가자는 사실상 이언주 전 국민의힘 의원 한 명뿐이었다. 이언주 전 의원은 개표방송 직전에 진행된 ‘MBC 뉴스외전’에 출연했고, 3월10일 ‘MBC 특집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KBS의 경우 TV 개표방송과 특별방송에 출연한 패널 중 여성 참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진행자와 패널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선거 방송.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진행자와 패널 모두 남성으로 이루어진 선거 방송.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진행자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패널은 모두 남성이다.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진행자가 여성과 남성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패널은 모두 남성이다.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특정 남성 패널 중복 출연, 총 31명 출연자 중 여성 정치인 5명 

특정 남성 패널이 4개 방송사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에 장시간 출연하는 모습도 확인됐다. 특히 MBC와 KBS에서 빈번했다.

MBC TV 개표방송의 경우,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MBC 라디오 ‘정치인싸’팀인 김준우(변호사), 장성철(대구카톨릭대 특임교수), 천하람(변호사), 현근택(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을 그대로 섭외하여 4부부터 6부까지 진행하도록 했다. 또한 MBC 라디오 개표방송에서도 ‘정치인싸’팀은 11부부터 13부를 진행했다.

KBS TV 개표방송의 경우, ‘K큐브’ 코너로 KBS 방영 프로그램인 ‘정치합시다2’의 패널 유시민(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전원책(변호사), 박성민(정치컨설턴트), 정한울(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을 섭외하여 1부부터 4부까지의 개표방송을 진행했다. 박성민은 3월 10일 KBS 대선 특집방송 출연, 전원책은 SBS 라디오 개표방송에도 출연했다.

이는 기존 시사프로그램과 라디오 진행자의 남성 편중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세연은 “방송사는 다양한 관점을 견지한 이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고 새로운 전문가를 발굴하려는 노력 대신 기존의 남성 스피커를 섭외하여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4개 방송사의 TV와 라디오 대선 개표와 특집 방송에 출연한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성비도 살펴본 결과 총 31명의 출연자 중 여성 정치인은 김은혜(국민의힘), 박영선(더불어민주당), 이언주(국민의힘), 이혜훈(국민의힘) 장혜영(정의당)으로 5명, 16.1%에 불과했다. 이는 21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19.0%)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여세연은 “한국 정치의 성별화된 특징, 여성이 정치에서 주변화되어 있는 현상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다”고 밝혔다. 

▲ 네 개 방송사 선거방송에 출연한 여성 정치인 5인 중 2명(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이혜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 네 개 방송사 선거방송에 출연한 여성 정치인 5인 중 2명(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국민의힘 이혜훈)이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사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제공.

 

미디어 재현 방식에 따라 정치 인식 변화해…의식적 노력 필요

여세연은 “미디어가 중년 남성들만 모아놓고 정치를 논하고 평하는 이미지를 계속 보여줄수록 사람들은 정치를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미디어가 정치를 어떻게 재현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디어는 특정 집단이나 영역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공고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편견과 차별을 깨는 방향과 내용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50대 고학력자 남성이 독점한 한국정치는 대다수 시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향후 미디어는 정치를 재현하는 데 있어 성별균형과 다양성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강화 등의 사안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중심이 됐고, 정치인들도 스스로 젠더 갈라치기를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면서 이슈로 만들어왔다”며 “지워진 목소리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하는데 방송사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순히 비단 선거방송의 문제만이 아니다“라며 ”인정받고 있는 여성 정치평론가들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사프로그램 등의 방송에서도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수현 여세연 대표도 “남성은 모든 의제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반면, 여성에게는 유독 젠더 이슈만 물어본다”며 “여성 정치학자 중에는 선거, 국제관계 등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논하는 영역에 동일하게 연구하는 교수들이 많은데, 이런 여성들은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은 의식적으로 성비를 고려해 섭외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