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4년 2월 ‘신안군 염전 노예 사건’으로 알려진 피해 장애인들은 언론과 장애인 단체 활동가, 법률가 등의 도움으로 섬을 탈출했다.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신안군 내에서 겪은 강제 노동에 대해 시민단체와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고, 신안군은 피해자들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했다. 법원은 피해자 7명이 신안군청이 지출한 변호사 비용 697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 A씨는 채소 재배를 위해 보관하던 농약(살충제)을 음료수와 혼동해 마시는 중독사고로 병원에 이송돼 생명을 구했으나 사지절단 상태가 됐다. 이에 평소 가입해둔 보험상품을 확인하고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거부당했다. A씨는 B보험사를 상대로 상해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가 3심까지 갔으나 패소했다. B보험사는 A씨에게 변호사 보수를 소송비용으로 청구했고, 법원은 A씨에게 953만 원을 B보험사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익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원고가 패소할 경우 상대방(피고)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패소자 부담주의’를 규정하는 현행 민사소송법 조항이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패소한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민사소송법 ‘소송비용부담의 원칙’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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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이종엽 변호사)는 온라인으로 ‘공익소송 패소비용 제도개선을 위한 민사소송법 등 개정 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토론회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호균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 공익소송 등 소송비용 제도개선 TF 위원)는 ‘공익소송’의 개념을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보호,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구제 등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송”이라고 정의하면서 “반드시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짚었다. 그에 따르면 대표적인 공익소송의 예시로 김포공항 소음피해소송, 여성단체들의 군 가산점에 대한 헌법소원, 버스 승차 거부와 관련된 버스회사를 상대로 한 장애인의 소송 등이 있다.

박호균 변호사는 “그런데 공익소송의 이면에는 염전 노예 사건과 같이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가 있고 사후적으로 2차 피해를 겪는 예가 적지 않다”고 설명한 뒤 “이 같은 현상은 결국 공익소송의 제기 자체를 주저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봐야 한다. 승패와 무관하게 문제 제기 자체로 잘못된 악습이나 제도에 대해 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음에도 패소했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소송비용 제도는 시급히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패소자 부담주의’가 ‘남소(濫訴, 함부로 소송을 일으킴)’를 방지하려다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폐해가 있다고 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일정한 분야의 전문영역(가습기 살균제 사건, 의료 소송 등)에서는 당사자에게 현저한 입증의 부담이 있는 경우가 있고, 전문성이 부족한 측에서 소송 제기 후 패소했다고 해 변호사 보수를 부담하게 하는 것은 2차적인 경제적 피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반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약하거나 침해하는 불합리한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박호균 변호사는 “다만 소송비용 제도는 정책적인 영역이기에 국회의 재량이 클 수밖에 없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단을 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공익소송, 전문가 소송 등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론화를 거쳐 국회에서 적극적으로 법률을 개정하는 방법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미국, ‘변호사 보수’ 각자 부담 

일본과 미국은 소송비용 중 특히 ‘변호사 보수’를 원고와 피고가 각자 부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있다.

과거 한국도 일본과 미국과 같은 제도였지만, 군사정부 시절 시민단체나 국민의 충분한 검증 없이 이뤄지는 남소를 막는다는 목적에 치중해 민사소송법을 개정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종구 단국대 법학과 교수는 “소비자가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 상대방인 기업의 소송비용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지출한 변호사 보수도 대법원 소송비용 산입 규칙에서 정한 범위 내에서 물어줘야 한다면  누구도 소액의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소비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구 교수는 “공익소송의 경우 ‘패소자 부담주의’ 예외 인정 필요성이 제기된다. 소송의 결과는 항상 불확실하다. 비용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면 소비자·인권소송 등 공익소송에 대해 후진적으로 될 것”이라고 우려한 뒤 “미국에서는 환경·노동·인권 침해 소송 등을 공익소송이라고 보고, 공익소송은 국가가 해야할 일을 국민이 대신하는 것(private attorney general suit)이라고 판단한다. 소비자가 패소하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종구 교수는 이어 “공익소송 제기 후 패소할 경우 ‘변호사 보수’만 감면대상으로 하면 된다. 변호사 보수에 관해서만 현행 규정에 예외를 둬 감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국가를 상대로 공익소송이 제기된 경우는 국가는 국민의 권익을 보호할 지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송비용 전체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승소측 불이익 회복 필요” “세금 부담 늘어” 신중론도

그러나 법무부와 법원행정처 등 관계기관 담당자들은 ‘민사소송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사소송법 개정의 타당성’에 대해 이승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사무관은 “민사소송법이 민사소송과 행정소송 등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률인 만큼,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될 경우 논란의 소지가 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승은 사무관은 “공익소송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승소한 당사자에게 응소의 정당한 사정이 있었음이 인정되는 상황임에도, 응소에 따른 경제적, 정신적, 시간적 손실 등에 대한 불이익을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승소한 국가기관 등에서 사용한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측면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 없이 국민의 부담을 가중하는 규정이 일반법인 ‘민사소송법’에 규정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창영 법무부 국가소송과 행정사무관 역시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이 있는 소송비용 부담의 문제를 일반법적 지위에 있는 민사소송법에서 직접 규율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다만,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는 것은 소송비용이 감면되는 공익소송의 범위가 상대방이 국가 등인 경우를 넘어 기업·사인인 경우 즉 모든 범위의 소송에까지 확대될 수 있으므로 다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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