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페미니스트 후보’를 자처하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2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했다.

거대 양당정치를 비판해온 신 전 대표는 국민의힘 선대위 산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신 전 대표를 지지했던 여성계와 양당 정치를 비판해온 진보 진영에선 그의 갈지자 행보를 비난했다. ‘국힘행을 철회하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선대위 새시대준비위원회(위원장 김한길)는 20일 오전 서울시 영등포구 대하빌딩에서 신 전 대표 환영식을 열었다. 윤 후보가 직접 참여해 신 전 대표에게 목도리를 걸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한 후 목도리를 걸어주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출처=KBS 유튜브.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한 후 목도리를 걸어주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출처=KBS 유튜브. 

신 전 대표는 이날 환영식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여성 폭력을 해결하고 또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좌우를 넘어 전진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주셔서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도 신 전 대표에게 “어려운 결정을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며 “국민의힘도 우리 새시대준비위의 새 영입 인사를 통해 국민 지지 기반을 더 넓히고 철학과 진영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후보 직속 선대위에 기존 국민의힘 생각과 다른 분이 와서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 안에서 결론을 도출해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지예 “새 시대 열겠다고 윤 후보가 약속”

신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새 시대를 꿈꾸고자 한다”며 “제가 새시대준비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을 많은 분들께서 걱정하시리라 생각한다. 저 또한 고민이 많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는 제3지대를 형성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12월에 이르면서 사실상의 대선 구도 전환이 어렵겠다고 낙담할 때 새시대준비위가 가진 목표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시대준비위의 첫 번째 목표는 정권교체이고, 두 번째 목표는 정권교체 너머에 있는 세상”이라며 “윤석열 후보는 약속했다. 새 시대를 열겠다고 말이다. 저는 새시대준비위 일원이 되어 윤석열 후보와 함께 그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길에 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 2018년 11월28일 당시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맞이 ‘낙태죄 존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2018년 11월28일 당시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맞이 ‘낙태죄 존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신 전 대표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우선 신 전 대표가 활동했던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사과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는 “신지예 대표 결정은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와 사전 논의된 바 없다. 조직적 결정과 무관한 일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에 관심과 후원, 지지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심려와 혼란을 야기한 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여성 운동이 쌓은 노력에 찬물 끼얹어”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0일 통화에서 “국민의힘은 굉장히 오래된 정치조직이다. 성차별 문제뿐 아니라 정치 제도, 구조, 문화 등이 대부분 남성 중심적”이라며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이 차별 받는 현실을 고려할 때 외부인 몇 명이 대선 기간에 들어간다고 해서 당이 쉽게 바뀔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권 대표는 “장기간 비전과 관점을 세워 역할을 하겠다면 지켜볼 수 있겠지만 단순히 개인의 위치 강화를 추구한다면 그동안 여성운동이 쌓아온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신지예가 지금까지 쌓은 인지도는 그와 함께 현실을 바꿔보겠다고 나선 수많은 활동가들의 성과이기도 하다”며 “그들과 논의도 없이 대표직을 사임하고 국민의힘에 들어가는 것은 그동안의 공동 노력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신중한 행보로 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2018년 6월6일 당시 연이은 선거 벽보 훼손을 겪고 있는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신지예 후보 캠프.
▲ 2018년 6월6일 당시 연이은 선거 벽보 훼손을 겪고 있는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서울 수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사진=신지예 후보 캠프.

2018년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팀서울 후원위원이었던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행을 철회하라”며 “당신이 꿈꾸는 제왕적 대통령제 폐지가 현 정부 검찰총장을 지내고 삼권분립 원칙도 박살낸 채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벼락 후보’와 함께 올 리 없다”고 비판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당신이 꿈꾸는 평등한 세계가 여성혐오 팔이로 남성 청년 표심을 노리고 ‘여자가 우연히 더 많이 죽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과 어깨를 걸고 함께 올 리가 없다”며 “당신이 꿈꾸는 녹색 미래가 무한 발전주의에 찌든 채 탈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올 리가 없다.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미래가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과로해도 되는 사회’를 부르짖는 이들과 함께 올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여성 시민이 느낄 배신감, 가장 안타깝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페이스북에 “신지예씨가 국민의힘으로 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잡하다. 축하하기 어렵다”며 “신씨는 정권교체 필요성을 말하며 윤석열 후보를 돕겠다고 하는데 민주당과 국민의힘 서로간에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권교체가 진짜 교체가 맞느냐”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신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해 그 당이 조금이라도 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걱정”이라며 “서울시장 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신지예에게 기꺼이 표를 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당신께서 택하신 길에 축하를 보낼 수 없는 여성 시민들의 배신감을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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