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선일씨 피살 사실이 공식 확인된 지난 23일 새벽, 신문사들은 돌아가던 윤전기를 세우고 일부 지역에 신문을 2차 발송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그나마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들의 경우에는 서울에서도 도심 일부 지역 가판에만 김씨 피살 소식을 담은 신문을 배포할 수 있었다. 신문들은 24일자에서 일제히 ‘김선일씨 피살’ 오보에 대해 경위를 설명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분주했던 23일 새벽= 경향신문은 23일 0시 기사를 마감하고 제작한 40판 신문까지만 해도 <“김씨 곧 석방 가능성”>을 1면 머릿기사로 내보냈으나 새벽 2시 외교통상부가 김씨의 피살을 공식 확인함에 따라 45판 신문을 다시 제작해 배달했다.

세계일보는 22일 오후 6시 발행한 10판을 시작으로, 20판(밤 10시30분), 40판(밤 11시30분), 45판(23일 새벽 1시)까지 <“김선일씨 살아있다”>를 1면 제목으로 보도했다가 23일 오전 3시께 김씨 피살 소식을 담은 50판 신문을 발행했지만 역시 서울 시내 일부 지역에만 배달됐다. 
조선일보도 평소보다 1시간 40분 늦은 오전 4시 50분에 인쇄를 끝냈으며, 이에 따라 한정된 독자들에게만 김씨 피살 사실이 보도된 신문을 배달할 수 있었다.

△숨겨지지 않는 흔적들= 미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 발생에 따라 신문들은 1시간만에 1면부터 해설면까지 5∼6개면을 교체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제외한 신문들은 사설은 미처 바꾸지 못해 일부 신문은 ‘석방 교섭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등 22일자 상황을 전제한 사설들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했다.  1면 머릿리사 제목에서 ‘김씨 피살’을 ‘처형’으로 표현한 데 대한 독자들의 비판도 빗발쳤다. 한국일보가 50판에서 <김선일씨 처형됐다>, 서울신문이 20.5판에서 <이라크 납치단체 김선일씨 처형>이라는 제목을 썼다.

이와 관련해 서울신문은 24일자 ‘편집국장이 독자께 드리는 편지’에서 “서울 일부 지역에 발송된 신문에서만 김씨의 피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며 “피살 소식을 전한 신문에도 ‘처형’이라는 잘못된 단어들을 사용했다”고 고백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의 경우 초판보다 더 늦게 제작한 신문에서 오히려 김씨의 생존 사실을 더 확정적으로 보도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경향은 10판에서 1면 머릿기사의 제목을 <”김선일씨 살아있다”>로 달았다가 40판에서는 경호업체 관계자의 입을 빌어 <”김씨 곧 석방 가능성”>으로 바꿨다. 1판에서 ‘김선일씨의 생존’은 경호업체 관계자의 주장으로 처리하고 생존 여부에 대해서는 정부도 “확인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도했던 한겨레는 7판에서는 1면 머릿기사 제목을 <”김선일씨 살아있다”>로 바꿨다.

△’적극적 대응 못했다’ 경향·한겨레 내부 논란= 신문들이 대거 오보를 낸 이후 경향신문 안에서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향은 김씨 피살 소식을 담은 45판을 찍어 2차 발송까지 했으나 분량이 많지 않아 일부 지역 가판에만 배포가 됐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지부(위원장 양상우)도 지난 24일 발행한 ‘진보언론’에서 회사 측의 안일한 대응을 비판하고 24일자 신문에 낸 사과사고에 대해서도 ‘솔직하지도, 친절하지도 못한’ 사과라고 비판했다.

한겨레 노조는 “다른 신문의 사과문들은 피살 사실을 접한 뒤 윤전기를 바로 세워 몇만부 가운데 몇만부를 새로 찍었다는 등 비상체제를 어떻게 가동시켰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한겨레에서는 이 부분이 쏙 빠져있다”며 “한겨레에서는 비상체제에서 당연히 작동해야 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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