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3년 만에 나온 8집 ‘외침’에서 안치환은 정말로 ‘내내’ 외친다. 미국을 향해, 언론을 향해, 그리고 세상을 향해.   메시지는 더 강해졌다. 본인 스스로도 “너무 외쳐서 다음 음반은 ‘숙연’이라고 해야 할 듯”이라고 말할 정도다. 무엇이 그렇게 안치환씨를 외치게 만들었을까. 안씨는 무엇과 타협해 온 걸까.    그 해답은 8집 음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안치환, 미국을 향해 외치다

   
▲이창길 기자 photoeye@
안치환은 모두 15곡을 담은 8집 음반중 무려 다섯 곡에서 미국을 비판하고 있다. 주한 미군의 장갑차에 스러져간 미선이와 효순이의 명복을 빌며 ‘양키 고 홈’을 외치는 <피묻은 운동화>, 겉으로는 세계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부르짖지만 그 속내는 제국주의의 야심이 가득 차 있다면서 ‘Fucking America, Dirty America, No! America’를 외친 , 이라크 침공을 비롯해 끊임없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을 비판한 .

고 김선일씨의 피살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는 <총알받이>에서는 월남전에 이어 대를 이어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 군인을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대한민국 군인인 넌 그저 미군의 총알받이일 뿐’이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안치환은 “이라크 파병을 강요받는 한국의 상황이 안타까워서 만든 곡일 분 이 노랫말의 내용이 고생하는 대한민국 장병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미 대사관 앞에 늘어선 행렬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은 과연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준다.

“우리가 평화를 원하든, 통일을 원하든 현실적으로 미국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자주적인 노래를 만들고 싶은데, 미국 대사관 앞에 늘어선 수많은 한국인의 현실 등 곳곳에서 굴욕적이고 의존적인 미국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가 있다. 세상을 바로 보려고 하면 거기에는 항상 미국이 있었다.”

미국을 주제로 한 노래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8집 음반을 위해 20여 곡을 놓고 선별 작업을 할 때, 주위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내가 만일>처럼 서정적인 사랑 이야기도 한 곡쯤 넣자고 제안했다. 메시지가 너무 강해 팬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치환과 자유 구성원들은 다섯 곡을 모두 음반에 담아야 한다고 우겼다. “솔직히 <내가 만일>류의 노래에 한때 맛(?)을 들인 것도 사실이다(웃음). 그러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음반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한테는 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중의 입맛과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은 것, 그것이 이번 음반이 갖는 가장 큰 의미다.

에두르지 않는 직접적인 화법, 강렬한 메시지와 사운드는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한 곡 한 곡 작업을 끝내고, 이들을 하나의 음반으로 묶어놓고 보니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란다. 10여년 동안 남의 녹음실을 빌려 작업을 해 오다, 올해 처음으로 꿈에 그리던 녹음실을 갖게 되면서 음악적인 퀄리티도 훨씬 높였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안치환은 8집의 느낌을 ‘강해졌다’기 보다는 ‘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 언론을 향해 외치다

안치환의 외침 가운데 또 눈에 띄는 것은 언론을 향한 대목이다.

   
▲ 사진제공=참꽃
‘더러운 펜으로 그대 배부른 자여 일그러진 너의 얼굴을 보라. 그래, 너희가 써 갈기고 휘두르는 대로 갈 길을 빼앗긴 채 끌려가 줄까…탐욕으로 얼룩진 그 야합의 시간과 진실을 사살한 잔인한 웃음소리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그대 가슴에 꽂히리라’

<부메랑>은 과장과 축소로 진실을 왜곡하고, 소속사와 사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언론인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구독신청을 하지도 않았는데, 1년 가까이 집으로 한 보수 신문이 배달돼 왔다. 넣지 말라고 여러 차례 써 붙였는데도 계속 들어와서 가끔씩 신문을 보긴 했는데, 처음에는 기사와 사설을 보면서 ‘웃기는 논조네’라며 조소를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게 이렇게 됐구나. 정말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소위 ‘조중동’이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이 신문들을 보는 사람들이 나처럼 이들의 논조에 세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대부분의 노래를 곡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직접 만들어 온 안치환이지만, 언론에 대한 비판은 참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몇 번이나 쓰려다 결국 쓰지 못하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지었던 정지원씨에게 가사를 부탁했다. 정씨 역시 언론에 대한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던 터라 며칠 뒤에 가사가 도착했다.

하지만 <부메랑>이 보수 신문만을 비판한 노래는 아니라는 점을 안치환은 분명히 했다.

“보수건 진보건 진실을 가리고 대중의 이성을 흐리게 만드는 언론 전반과 언론인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것이다. 진실을 알리고,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저지르는 ‘만행’을 노래하고 싶었단다.

기자들의 자질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잊지 않았다.

“기자라면 회사의 이익보다는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위 ‘언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회사의 입맛대로 진실을 왜곡하는 행태는 정말 잘못된 것이다. 공부 안 하는 기자도 문제다. 예전에 새 앨범을 내고 한 신문사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질문 내용이 과연 내 음악을 들어보기나 하고 온 것인지 의문일 정도였다. 어떤 기자는 ‘매향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안치환은 한국 언론이 대중문화, 특히 대중음악 부문에 있어 문화사대주의를 유포하고, ‘편식증’만 길러줬다고도 비판한다. 특히 “대중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채워줘야 할 방송”이 상업적인 메커니즘 속에서 다양한 음악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편식을 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단 다양한 음악들을 들려준 뒤에 대중이 각자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지금의 대중은 이미 음악적 입맛이 획일화돼 조미료 맛에 길든 사람이 다른 맛을 느낄 수 없는 상태처럼 돼 버렸다.”

  # 진보 진영에도 외치다

안씨의 비판은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사의 기자를 향해서도 가해졌다.

   
▲ 사진제공=참꽃
“우리가 바라보는 대중문화는 왜곡되고 조작된 것일 수 있다. 우리에게 노출된 문화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문화는 서로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에는 자본의 논리대로 움직이는 문화만 도배되고 있다. 스스로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사의 기자라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문화가 무엇이고, 이러한 문화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누가 있는지 찾아다니고, 또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기자도 있는 것 같다.”

진보를 향한 외침은 이 외에도 있다. 그가 10여 년 동안 수없이 서 온 진보 진영의 공연 현장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안치환이 비판하는 진보 진영의 공연 문화가 갖는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그동안 꾸준히 시민단체 행사에 참여해 온 음악인에 대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안치환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음악을 하는 후배들이 시민단체로부터 무료로 공연을 해 달라는 요청에 시달리는 것을 많이 봐 왔다”고 말한다. “속상해도 행사의 성격에 따라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TV에 몇 차례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가수들을 엄청난 개런티를 챙겨주고 데려올 때는 정말 큰 배반감을 느낀다고.

이 문제는 결국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악적 지향점이 맞지 않는 가수들을 같은 무대에 세우는 것으로까지 번진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없고 음악적으로 사회 문제를 고민하지도 않지만, 안치환의 표현대로라면  “몇 차례 방송에 들락거리면서 얼굴을 알린” 가수들과, 꾸준히 사회비판을 해 온 음악인들을 같이 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지만, 행사 본연의 목적과 내용을 채워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내용’을 담아낼 가수가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언젠가 한 공연에서 “엔터테이너가 되려는 자들은 쌓여있지만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려는 자는 많지 않다”고 말했던 것처럼.

  # “세상 속에서 세상을 노래할 것”

이번 음반이 나오면서 안치환은 한 음악 선배에게 “난 왜 나이가 들수록 노래 색깔이 강해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선배의 대답은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야. 아직도 너의 시선이 그 곳에 머문다는 것은…”이었다.

그렇다. 안치환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자신이 음악적으로 후퇴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많은 음악을 듣고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늘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치환 자신이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을 한답시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세상 속에 모든 노래의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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