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에서도 최근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소출력 라디오방송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하면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906년 라디오방송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으니 라디오라는 매체가 발명된 지 꼬박 한 세기가 됐다. 그러나 TV가 등장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라디오의 영향력은 많이 약해진 게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비교하며 라디오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다시 라디오에 주목하고 있다. 인터넷으로부터 소외돼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지만 라디오는 값싼 수신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방송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인 미디어운동 진영에서는 라디오를 제3의 발명이라며 추켜세우고 라디오가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성적소수자·장애인·비주류 문화를 대변하는 라디오 방송도 설립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라디오 운동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에서도 최근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소출력 라디오방송을 활성화하기로 합의하면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방송위는 규제완화 등을 골자로 한 관련법 정비와 함께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시범운영을 시작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는 작은 커뮤니티

기존 FM방송이 500W에서 10kW의 대출력을 이용한 방송이라면 공동체 라디오는 10W 이내의 소출력을 이용한 FM방송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1W의 경우 1∼2km 반경 안에서 청취가 가능하다. 미디어운동진영은 최소 7∼8km 내에서 청취가 가능한 10W 정도의 출력을 보장해야 공동체 라디오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50W에서 100W까지 허용하기는 하지만 많은 제약이 따른다.

공동체 라디오는 방송목적에 따라 크게 지역방송과 안내방송(미니 FM)으로 나뉜다.

지역방송은 지역 특성에 맞는 방송을 통해 지역의 소리를 전달하거나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공동체의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것이고, 미니 FM은 관광지나 박물관, 경기장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을 말한다. 미니 FM 서비스는 이미 2002년 월드컵 당시 경기장 내에서 실시된 적이 있다.

   남아공에만 100개 라디오 활동 중

세계공동체라디오방송연합의 스티브 버클리 의장은 지난 4월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 주최의 강연회에 참석해 “세계에 공적 소유와 사적 소유로 나눠진 두 가지의 주요한 미디어 형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상업적 민영미디어의 영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시청자의 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의 빈곤층의 요구나 관심사는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이런 불평등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이 바로 공동체 라디오 운동이며 세계의 모든 지역과 국가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이미 선진국뿐만 아니라 일부 제3세계에서도 허용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92년부터 공동체 방송을 시행해 생활·행정·여행·뉴스 등 다양한 지역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의 RSLs(Restricted Service Licences), 호주의 LPON(Low Power Open Narrow casting) 등도 비슷한 성격의 라디오 서비스다. 인종문제가 심각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독점 방송사에 대항해 시민들이 공동체 라디오방송을 만들기 시작했고, 현재 100개가 넘는 공동체 라디오가 활동중이다.

네팔의 마단포카라라고 불리는 시골마을에서는 전화와 전력이 닿는 몇 명의 사람들이 시골의 농업 공동체를 대상으로 방송을 하고 지역 발전에 대한 토론 등을 중계하는 등 공동체 라디오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시민단체 ‘커뮤니티’, 정부 ‘안내방송’ 무게

미디어운동진영은 공동체 라디오의 성공을 위해선 비영리·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과 출력이 최소한 10W는 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방송위나 지자체의 안정적인 지원 등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도 공동체 라디오가 비영리·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방송위는 연말 안에 10여 개의 시범방송 사업자를 선정하고 일정부분 지원도 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단체 간에 서로 다른 입장 차이도 있다. 라디오를 통해 소수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커뮤니티 구축이 시민단체의 궁극적인 바람이라면 정부는 국민편익을 위한 방송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 방송정책실의 박장원 선임조사관은 “소외계층을 위한 방송을 막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지역밀착형 방송이나 국민편익을 위한 방송”이라며 한 예로 “신촌이나 대학로의 거리문화를 소개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송”을 들었다.

출력에 대한 부분도 논의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는 최소한 출력이 10W 이상 돼야 한다고 보는 반면, 방송위는 도심의 경우 1∼2W 이내, 지역의 경우 10W 이내로 허가할 방침이다. 그러나 2W 이내의 경우 청취권역이 넓지 않아 공동체 방송보다는 안내방송 위주의 미니 FM 정도의 서비스만 가능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디액트의 홍교훈씨는 “공동체 라디오 운동은 시민이 직접 방송 제작에 참여하는 퍼블릭 액세스 개념의 하나”라며 “방송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적인 법제 마련과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위한 방안, 다양한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역 미디어센터 건립 방안 등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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