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루판(吐魯番)은 과거 화려했던 역사가 숨쉬고 있다.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였던 투루판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로 한족과 유목 민족들의 쟁탈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곳은 훠옌산(火焰山)을 중심으로 가오창구청(高昌故城), 자오허구청(交河故城), 바이쯔커리커첸푸둥(栢孜克里克千佛洞)와 아쓰타나구펀췬(阿斯塔那古墳群) 등 유적들이 서로 맞물려 지나간 역사를 말해준다.
풍부한 물·중요한 지리적위치 한족과
유목민족들의 쟁탈의 무대
이들 성곽들을 돌아보면 작고한 고복수의 ‘황성옛터’가 생각난다. 화려했던 옛 영화는 간데 없고 부서지다 남은 폐허만이 당시의 화려한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흙무더기로 남은 부서진 성곽의 벽과 기둥을 보노라면 여행길 나그네의 고독이 한없이 밀려든다. 이곳은 이전 한 시대의 화려한 역사가
존재했으나 지금은 ‘무’(無)라는 극명한 대조로 인해 더욱 인상적이다. 흙벽돌로 만들어진 이런 고성의 흔적이 남은 것은 투루판의 지극히
건조한 기후로 인해 가능했다. 저녁 석양에 비친 흙무더기로 남아있는 고성들의 잔해는 거대한 조각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퍼지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 투루판(吐魯番) 자오허구청(交河故城)은 말그대로 ‘하천속의 고성’이다. 야얼나이쯔거우’(雅爾乃孜溝) 하천에 여의도처럼 높이 20m의 외로운 섬이 우뚝 서있다. 이 섬위에 화려했던 당시 관공서와 사찰 등의 벽과 잔해들이 예술 조각품처럼 운집해 있다. 입구에는 자오허구청(交河故城)의 전경 모형이 전시돼 있다. 자오허구청은 물위에 큰 버드나무 잎 혹은 항공모함이 떠있는 형상이다. | ||
자오허구청(交河故城)…‘하천속의 고성’
하천가운데 세워진 천연 요새
자오허구청의 특징은 흙을 파서 건물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곳의 기본 설계 구도는 당나라의 장안성과 유사하다. 놀라운 것은 성내에 우물, 관청, 불교사찰,
불탑, 거리와 골목, 여관 및 수공업장, 주택가, 연병장, 참호와 사원의 보살상 등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다. 사원의 면적은 5천㎡, 불탑은
101개가 모여 있다. 하늘에서 볼 경우 자오허구청은 큰 버드나무 잎이 물에 떠있는 형상이다. 길이가 1650m이며 폭이 300m로 다른
성곽과 달리 성벽이 없다. 20~30m 높이의 섬이 하천가운데 세워진 천연 요새로 외부의 침략이 쉽지 않은 지형적 장점이 작용했다.
성에는 동문과 남문이 두개 있고 남문이 정문이다. 위구르(維吾爾)족들은 ‘야얼청’(雅爾城)이라 부르는데 이는 중국어의 발음이 같은
‘야얼청’(崖兒城·낭떠러지 성)에서 온 말이다.
가오창구청(高昌故城)은 투루판의 남동쪽으로 40여㎞ 떨어진 곳에 있다. 뒤쪽으로 붉은 빛의 훠옌산이
늘어서 있고 누런 황토 빛의 유적이 대조를 이룬다. 가오창(高昌)은 투루판의 가장 오랜 지명으로 성벽의 높이는 11.5m 정도다. ‘가오창’은
기원전 1세기에 세워졌으며 자오허구청보다 100년 정도 늦다. 서한(西漢)때 병력을 파견해 ‘가오청비’(高昌壁)을 만든 것이 처음이다.
북사·서역전(北史·西域傳)에 “지세가 높고(高), 생활이 창성(昌盛)하다”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한(漢), 위(魏), 진(晋)왕조가 병력을
파견해 농토를 지키고 흉노(匈奴)들의 침입을 막은 것으로 돼 있다. 남북조(南北朝)에서 수당(隨唐)때는 ‘가오창쥔’(高昌郡)을
설립했다.
가오창구청(高昌故城)…고대 서역에서 존재하는 유적 중
최대규모
▲ 가오창구청(高昌故城)을 둘러볼 때는 워낙 넓어 당나귀가 끄는 수레를 타야 한다. 이곳 역시 당나라 장안성과 마찬가지로 설계됐으며 흙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외성, 내성,궁성의 벽들과 봉화대, 불탑 등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 ||
아쓰타나구펀췬(阿斯塔那古墳群)은 가오창구청(高昌故城) 북쪽에 위치한 공동묘지다. 군의 장수, 흉노의 귀족과 고위 관리에서 서민까지 500여 개의 묘가 모여있다. 아스타나(阿斯塔那)는 위구르어로 ‘수도’(京都)란 뜻으로 가오창청(高昌城)에서 3㎞ 밖에 안 떨어져 붙여졌다. 이곳은 서진(西晋)초부터 당(唐)대 중기까지의 공동 무덤이다. 놀라운 것은 무덤 속의 주검들과 유품들이 부패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보통 매장할 경우 시신들과 유골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부패한다. 그러나 이곳은 특별히 건조한 기후로 인해 부패 박테리아가 생존할 수 없다. 따라서 주검들은 수분만 빼앗긴 채 머리카락과 눈동자, 근육과 뼈가 그대로 남아있다. 흙 속에 묻힌 이곳의 주검들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마른 명태처럼 바싹 마른 형태로 될 뿐이다. 한때 부귀영화를 누리던 인간들의 마른 육신과 고스란히 남은 머리카락을 바라보면 인생의 허무가 그대로 밀려온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죽고 나면 한줌의 흙과 마른 육신으로 남는 것을….
아쓰타나구펀췬(阿斯塔那古墳群)…주검·유물들 온전히 남아있는 ‘지하
박물관’
▲ 아쓰타나구펀췬(阿斯塔那古墳群)은 가오창궈(高昌國)의 귀족과 고급 관리 및 서민들의 공동묘지다. 이곳 무덤속은 건조한 기후로 시신과 유물들이 썪지않고 고스란히 남은 불가사의한 ‘지하 박물관’으로 불린다. 이곳은 부부 부덤 등 몇곳을 공개해놓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