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샤(三峽)는 더 이상 웅장하지 않았다. 싼샤의 깎아지른 웅장한 자연미는 싼샤댐의 건설로 사라졌다.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자연미’를 포기했다. 지난해 6월 1일 싼샤댐 물 채우기 공사를 직접 취재하면서 받은 느낌이다. 중국 당국은 산 계곡의 ‘평평한 호수’와 동글동글한 섬이 많은 ‘섬 세계’로 전혀 다른 인상을 줄 것이라며 밝히고 있으나 까마득히 깎아지른 ‘구 싼샤’의 맛은 사라졌다.

지난해 6월 물 채우기 공사 싼샤의 웅장한 자연미는 사라져

   
▲ 싼샤(三峽)댐의 건설로 이전 싼샤의 깎아지른 웅장한 자연미는 사라졌다. 중국 당국은 산계곡의 ‘평평한 호수’와 동글동글한 섬이 많은 ‘섬 세계’로 전혀 다른 인상을 풍길 것이라며 밝히고 있으나 까마득히 깎아지른 ‘구 싼샤’의 맛은 사라졌다.
싼샤는 창장(長江)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최대의 관광 명소다. 창장은 쓰촨(四川)성 이빈 에서 출발해 상하이(上海)까지 흐르는 6300여km를 내달리는 중국 최장의 강이다. 중국인들은 창장을 길다란 용(龍)에 비유한다. 용은 상(祥)서러운 동물로 통한다. 중국은 창장이 중국 경제 도약의 행운을 가져다줄 ‘큰 용’(大龍)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는 용머리(龍頭)에 해당한다. 중국 경제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용머리를 한번 흔들면 몸통에 이어 꼬리까지 흔들릴 것이란 ‘선부론’(先富論)을 주창했다. 먼저 동부 연안이 개발된 뒤 이 경제력이 우한(武漢) 등 중부에 영향을 미치고, 이어 서부지역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논리이다. 선부론은 장쩌민(江澤民)에 이어 후진타오(胡錦濤) 현 국가 주석까지 금과옥조로 섬기고 있다. 싼샤댐 개발은 중국 경제 도약을 위한 중국 당국의 승부수다. 중국은 싼샤댐 건설로 21세기 중반 중국 경제를 미국과 맞먹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야심 찬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싼샤댐 건설은 중국 역사상 ‘창청’(萬里長城)에 버금가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꼽힌다. ‘창청’이 외부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한 대공사였다면‘싼샤댐’은 중국 경제의 폭발적인 도약을 위한 프로젝트다. 창장은 남미의 아마존강, 아프리카의 나일강에 뒤이은 세계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창장이 해마다 바다로 밀어내는 수량은 1억㎥, 중국내 강물수량의 37%를 차지한다. 수자원이 풍부하며 미국, 캐나다와 일본 등 3국의 수자원 총합에 해당한다. 창장은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해 칭하이(靑海), 시짱(西藏), 윈난(雲南), 충칭(重慶), 쓰촨(四川),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장시(江西), 안후이(安徽), 장쑤(江蘇), 상하이 등 11개 성·시·자치구를 거치며 유역면적이 180만㎢에 이른다. 싼샤댐이 위치한 곳은 싼샤의 바로 하류 지점이다. 이는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에서 상류로 48km 올라간 지점이다. 창장 싼샤는 상류로부터 취탕샤(瞿塘峽·협곡 길이 8㎞), 우샤(巫峽·44㎞), 시링샤(西陵峽·76㎞) 등 세 곳을 일컫는다. 샤오산샤(小三峽)는 우샤에서 갈라지며 역시 싼샤의 상류에 있다.

싼샤댐 건설 중국 역사상 ‘창청’(萬里長城)에 버금가는 대규모 토목공사

   
▲ 싼샤(三峽)댐의 등장은 중국 중심을 관통하는 큰‘물길’이 새로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류에서 바라본 댐 오른쪽의 5계단식 도크는 충칭(重慶)까지 3천~5천t급(최대 1만t급) 선박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진은 공사 현장과 조감도(아래).
중국의 싼샤댐 공사는‘우공이산’(愚公移山)의 기적을 떠올리게 한다. 싼샤댐 건설은 해마다 범람하는 홍수피해를 막고 발전(發電)과 농·공업 관개 용수 등 다목적용으로 시작됐다. 싼샤댐 건설은 1919년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기반으로 한 중국 민주혁명의 선구자인 쑨원(孫文)이 처음 주창했다. 이 논의는 마오쩌둥(毛澤東)으로 이어져 1958년 2월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내외전문가 100여명을 이끌고 현장을 답사한 뒤 현재의 댐이 세워진 싼더우핑(三斗坪) 지점을 결정했다. 1983년에서 1991년 7월 국무원과 관련 부서들간의 논의를 거쳐 1994년 12월 리펑(李鵬) 전 총리가 정식기공을 선언했다. 싼샤댐의 전 공정은 2009년까지 18년에 걸쳐 완성된다. 댐이 완공될 경우 댐 길이는 약 2.3㎞, 댐 높이는 185m가 된다. 정상적으로 175m까지 저수가 가능하며 저수량은 393억㎥, 홍수 방지용 총 용량은 221.5억㎥에 달한다. 또 저수된 물은 100m의 낙차로 총 발전용량은 1768만kw에 달하며 연 평균발전용량은 시간당 840억kw에 달해 남미의 이타이푸 수력발전소에 앞선다. 발전기 한 기당 발전량은 70만kw로 압록강 수풍 발전소의 발전량과 맞먹는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는 상하이 등 화둥(華東)과 화중(華中) 지역, 구이저우(貴州) 등 동부 연안 지역에 공급된다. 총 투자액은 댐 건설에 571억위안(약 8조5천억원·1991년 기준)이 투입됐다. 싼샤댐 물 창고의 면적은 1084㎢에 달한다.

2003년 6월 1일은 1998년부터 계속돼온 2기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든 것으로 댐 물 채우기가 고도 135m까지 이뤄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사스 상황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는 당시 국내 기자로서는 유일하게 현장 취재를 했다. 당시 관영 가 카메라로 싯누런 물이 차 오르는 지점을 비추며 현장 중계를 했으며“중국의 새 역사가 열렸다”는 현장기자의 격앙된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졌다. 싼샤댐은 22개의 수문중 19개의 문이 닫혔고 수심은 순식간에 불어나 135m에 이르렀다. 제3기 공사는 2003년 8월부터 시작돼 2009년에 마무리된다. 싼샤댐 건설로 상류 400㎞ 유역의 13개 도시, 1500여 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됐다. 현재 상당 부분이 물에 잠겼으며 수몰 예정지의 113만명이 고향을 등지거나 떠난다. 이중 70만명은 산둥(山東)성, 상하이 등지로 옮겨갔다. 이민들은 20년에 걸쳐 완료된다.

중국 중심 관통 ‘물길’생겨 ‘물류의 혁명’ 기대…‘홍수 걱정’ 단번에 해소

싼샤댐의 등장은 중국 중심을 관통하는 큰 ‘물길’이 새로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류에서 바라본 댐 오른쪽의 5계단식 도크는 3천~5천t급(최대 1만t급) 선박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얕은 수심으로 충칭(重慶)까지 1천t급 배밖에 갈 수 없었던 종전에 비해 ‘물류의 혁명’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거대한 배들이 상하이, 난징(南京), 우한(武漢) 등 창장 연안의 도시들을 따라 중국의 중심부인 충칭을 오가게 되는 것이다. 창장은 이창에서 충칭까지 시속 80km의 쾌속정으로 12시간을 달려야 할 정도의 거대한‘물길 고속도로’로 새로운 중국판‘아우토반’이 생겨나는 셈이다.

   
▲ 싼샤(三峽)댐 건설로 창장은 비닐봉지, 나무토막과 건축 폐자재 등 쓰레기들로 환경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간 수몰지구 주민들을 이주시킨 뒤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은 폭파와 소독을 거친 뒤 트럭으로 운반했으나 일부는 그대로 물속에 수몰됐다.
이와 함께 싼샤댐은 해마다 골칫거리였던 ‘홍수 걱정’을 단번에 해소해 줄 것이라는 꿈도 낳았다. 싼샤는 하류로 2.3㎞ 떨어진 곳에 지난 81년 건설한 거저우바(葛州土+覇) 수력발전소(271만kw)와 수위 조절에 나서게 돼 후베이성 우한 등 하류의 도시들은 만성적인 홍수 공포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러나 싼샤댐 건설로 창장은 비닐봉지, 나무토막과 건축 폐자재 등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댐 건설과 관련해 중국 안팎에서는 환경오염 악화와 생태계 파괴 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그간 수몰지구 주민들을 이주시킨 뒤 가옥과 건축물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작업을 진행중이다. 거대 콘크리트 구조물은 폭파와 소독을 거친 뒤 트럭으로 운반했으나 시일이 촉박해 일부는 그대로 물 속에 수몰됐다. 캐나다 국제환경감시단체인 ‘프로브 인터내셔널’은 싼샤댐 건설로 충칭시에서 창장으로 유입되는 연간 11억8천만t의 각종 하수는 앞으로 34%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중 정화처리되는 것은 공업폐수의 28%, 생활하수의 8%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숱한 유물·유적 수몰과 생태계파괴·환경오염 등 난제 해결 과제

   
▲ <삼국지>(三國志) 에서 류베이(劉備)가 죽으면서 주거량(諸葛亮) 에게 후사를 부탁했다는 바이디청(白帝城) 등 유적과 각종 고사들이 싼샤(三峽)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해있다.
숱한 유물들도 물밑으로 사라진다. 소설 <삼국지>의 무대인 창장 중·상류는 장페이먀오(張飛廟)와 유비가 죽으면서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했다는 바이디청(白帝城) 등 유적과 각종 고사들이 얽힌 역사 현장들을 품고 있다. 댐 건설 때문에 장페이먀오는 원래 자리에서 32㎞ 서쪽으로 옮겼으며, 바이디청은 앞 계단까지 물이 차 오른다. 주거량(諸葛亮) 비석, 미인 왕자오쥔(王昭君)과 초 나라 시인 쥐위안(屈原)의 고향으로 사당이 있는 쥐위안츠(屈原祠)도 물에 잠겨 이전했다. 창장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함께 아직도 유물발굴이 이어지고 있는 곳으로 발굴되지 않은 숱한 유적들은 영원히 수장될 처지에 놓여 있다.

또 거대한 인공호수가 야기할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수 많은 동식물이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역에 사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물 흰 돌고래’인 창장 바이툰(長江白豚)과 진쓰허우(金絲개사슴록+胡·금실원숭이)등 각각 100마리도 안 되는 국가 1급 보호동물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천연 산림자원의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싼샤 지류 샤오싼샤(小三峽)의 천혜의 경관이 물 속에 잠기게 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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