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저널 일다(www.ildaro.com)가 2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일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지난 22일 한겨레에 실렸던 김규항씨의 인터뷰를 거론하며 "언론인의 양심으로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거절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겨레는 지난 22일 <여성운동, 보수화를 경계하라 다시 여성계 비판 말문 연김규항씨>라는 제목으로 김씨의 이른바 '중산층 여성 페미니즘 비판론'을 여성면 주요기사로 실었다.

   
▲ 한겨레 4월22일
이 기사는 "2년 전 '중산층 페미니즘'과 여성계 일부에서 나온 '박근혜 연대론'을 비판했다가 여성계로부터 마초(원래 뜻은 초남성성을 과시하는 남성으로, 성차별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남성을 통칭-편집자 주)로 낙인찍힌 뒤 페미니즘은 물론 다른 주제로도 "제도권 매체에 글이나 강연을 사절"해 왔던 칼럼니스트 김규항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고 인터뷰 배경을 밝혔다.

이어  "김씨는 이번 총선에서 중산층 엘리트 여성운동권이 여성 국회 진출 확대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는 대개 그들의 지위가 높아졌다는 점을 말하는 것일 뿐이지, 전체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볼 수는 없다"며 다시 '중산층 엘리트 페미니즘 운동의 지나친 주류화'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등의 내용을 실었다.

일다의 조이여울 편집장은 김규항씨의 인터뷰가 나간 뒤 한겨레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자 이를 거절하고 26일 일다 사이트에 <김규항과 한겨레의 '여성운동 물먹이기' >라는 제목으로 한겨레와 김규항씨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혔다. 

조이 편집장은 "한겨레의 김규항씨 인터뷰 기사를 보고 가장 분노스러웠던 점은, 해당 기사가 지금까지 정말 힘들게 제기해 온  일다의 여성정치세력화 논의와 여성운동 내부에 대한 비판 이슈들을 재료 삼아, 한겨레 측의 새로운 시각인양 생색을 냈을 뿐 아니라 마초 남성 지식인의 여성운동진영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해주는 데 사용했다는 점"이라며 김씨와 한겨레를 비판했다.
 
조이 편집장은 "김규항씨를 비롯해 좌파 진보지식인이 여성운동을 향해 '부르주아 엘리트' 운운하는 것은 사회의 성별 권력 구조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그에 대항할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여성운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결코 '여성 민중'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여성운동이 '부르주아 엘리트' 운동이라는 자신들의 견해를 정당화시킬 때에만 '여성민중'을 논한다"며 김규항씨의 논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조이 편집장은 "한겨레신문이 여성정치세력화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페미니즘=중산층 엘리트 여성운동=보수화'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김규항씨에게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는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시 미국 대통령이나 북한자유법안을 만든 이들의 견해를 물을 것인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이 편집장은 "공교롭게도 해당 인터뷰 기사를 쓴 기자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하겠다고 요청을 해 온 기자여서 언론인의 양심으로 인터뷰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성 인사들 중 한두 사람의 언행으로 인해 여성계 전체, 심지어 여성운동계 전체가 매도당한다. 이는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여성운동계가 어떤 타격을 입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언론의 무책임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이 편집장은 "한겨레가 나름대로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면 더 이상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운동계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를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여성주의와 여성운동을 쉽게 폄하하는 태도에 있어선 조중동과 같은 보수 언론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사를 쓴 한겨레 김성재 기자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  등을 비롯해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보내자는 것과 여성신문 등 일부 여성언론들이 박근혜 대표 선출과 전여옥씨의 대변인 임명에 대해 핑크리더 시대라고 호평한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던 걸로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2년 대선당시 박근혜 연대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김규항씨를 인터뷰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기자는 "여성운동 외부에서도 여성운동을 비판할 수 있다. 자신들의 시각과 맞지 않는다고 싣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일다의 인터뷰 거절은 기대했던 일다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김규항씨는 인터뷰가 나간 후 참세상의 한 게시판에서 "인터뷰를 수락한 건, 지식연예인 노릇을 재개하진 않더라도 ‘절필하지 않는 이상, 대중적 소통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그 첫 시도는 그간의 경과에 대한 심각한 오보다. 다른 주제라면 기자에게 전화했겠지만, 여성문제이니 만큼 기사 전체가 악의적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한겨레의 전 여성담당 기자들은 기자가 아니라 ‘페미니즘의 호위병’으로서 기사를 쓰곤 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규항씨는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가 대선 출마하면 찍어주겠다'는 프리미어 최보은 편집장의 발언에 대해 씨네21 칼럼서 '중산층 페미니즘론'을 들고 나와 여성운동 전반을 비판해 여성운동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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