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간 양안 문제는 복잡하다. 양안 통일은 한반도만큼 험로가 가로놓여있다. 그러나 성격은 다르다. 남북은 ‘민족’을 중시하나 대만은 ‘국가’를 중시한다. 지난 3월20일 대만 총통 선거는 잠재된 양안 문제를 폭발시켰다. 대만 사태는 고등법원이 오는 5월10일 재 검표 실시를 결정하면서 소강상태다. 사상 초유의 재 검표 시비는 민진당의 천수이볜(53·陳水扁) 총통이 롄잔(連戰·67)의 국민·친민당 연합 후보에 2만9518표 차로 박빙의 승리를 거두면서 불거졌다. 국민당쪽은 또다시 집권에 실패하자 즉각 재 검표를 요구하며 ‘부정 선거’시위에 돌입했다. 투표일인 20일 밤엔 100만명이 ‘선거 불복’시위를 벌였다. ‘총통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는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천 총통피격사건·엄청난 무효표 등 대만 총통 선거 양안문제 불거져

   
▲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선거를 하루앞둔 3월 19일 타이난(臺南)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도중 장난감총에 피격돼 가벼운 상처를 입고 병원에 옮겨졌다. 국민당쪽은 중국의 대만공격 위기감을 조성해 ‘동정표’를 유발하기위한 천 총통의 자작극이라며 수사를 요청했다.
국민당은 ‘부정 선거’의 근거로 천 총통 피격사건을 꼽는다. 천 총통쪽이 선거전날 ‘동정표’를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것이다. 선거전 여론조사에서 80만 표를 앞섰던 롄잔쪽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논란끝에 미국의 대만계 감식반을 불러 조사한 결과 현장의 납 총알에서 검출된 미량의 혈흔이 천 총통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범인검거는 오리무중으로 자작극의 의혹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있다. 무효표가 33만 7297표로 많은 것도 의혹으로 제기됐다. 무효표가 총 투표수의 2.5%로 엄청나게 많다. 후보간 표차 보다 11배가 넘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2000년때의 1%보다 두 배 이상된다. 롄잔쪽은 30만여장이 판독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됐다고 주장한다. 또 피격 사건 뒤 군·경·공무원 20여만명에게 내린 24시간 비상 경계태세도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반 민진당 공무원 상당수가 투표할 기회를 박탈했다는 것이다.

천 총통의 재임이 확정되더라도 긴장의 불씨는 남아있다. 대만내 정국은 양안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다. 중국은 민진당의 재집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는 ‘독립파’인 천 정권이 대륙으로부터 이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 천 총통은 집권 4년간 갖가지 독립적인 조처를 취했다. 대만은 여권, 무역 기구 명칭에 ‘타이완’을 사용한데 이어 군부의 간행물, 군복, 무기류에도 ‘중국’이란 명칭을 없애고 대신 ‘중화민국’으로 바꿨다. 지난 3월20일 총통 선거일에 실시한 ‘방어성 국민투표’도 같은 맥락이다. 질문은 ‘중국이 대만을 겨냥한 미사일을 철거하지 않으면 대만의 미사일 등 방어무기 구입에 동의하나? ’‘정부가 중국과 협상을 재개해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양안관계 설정에 동의하나?’ 등 두가지다. 두 질문의 투표율은 각각 45.17%, 45.12%로 유효투표율(50%)을 넘지 못해 자동 부결됐다. 천 총통의 ‘독립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천 총통은 3월30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2006년까지 헌법 개정을 마무리 짖겠다”고 밝혀 대만 독립의지를 재확인했다.

중국,  ‘일국양제’(一國兩制) 틀 속 대만독립 원치않아

   
▲ 천수이볜(陳水扁)은 ‘대만의 아들’(臺灣之子)라고 불릴 정도로 본성인(本省人·대만출신)이 주축이된 대만인들의 대표로 독립파인 민진당을 이끌며 총통선거에서 재임에 성공했다. 천의 재임은 대륙종속을 원치않는 대만인들의 정서를 대표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입장은 단호하다.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란 틀 안에 대만을 묶으려 한다. 대만 독립을 원치 않는 중국은 강온 전략을 구사한다. 중국은 대만을 대륙에 부속된 한 개의 성(省)으로 규정한다. 절대 독립된 국가로 보지 않고 외교 활동도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에 관한 한 중국의 정책은 ‘하나의 중국’이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에 이어 대만을 ‘하나의 중국’이란 우산아래 품고자한다. 중국은 대만과 수교국을 어떻게든 갈라서게 만든다. 중미 도미니카가 지난 3월 23일 대만과 단교를 선언하고 중국과의 수교를 선언했다. 이로써 대만과의 국교관계를 유지한 나라는 26개국으로 줄었다.

중국은 대만에 폭넓은 자치권을 제의해놓고 있다. 홍콩(香港), 마카오에는 인민해방군이 주둔중이다. 그러나 대만쪽에는 50년동안 군사권 허용 등의 제안을 내놓고 있으나 민진당은 거부한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 선언’만 하지 않는다면 홍콩, 마카오 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대만포용 정책을 쓰고 있다. 이는 장기적인 통일 전략이다. 즉 대만기업과 대만인의 대륙투자를 적극 유치중이다. 이는 상당히 성공하고 있다. 대만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대륙에 투자한 액수는 1천억달러로 추정된다. 나아가 중국은 전면적인 양안교류인 ‘대3통’(大三通)(通商, 通航, 通郵)을 환영한다. 대만은 이를 중국의 ‘경제 종속정책’이라며 경계한다. 민진당은 ‘대3통’을 경계해 2001년 1월부터 ‘소3통’(小三通)을 실시중이다. ‘소3통’은 대만의 최전선인 진먼다오(金門島), 마쭈다오(馬祖島) 및 펑후다오(澎湖島)와 중국의 남부 푸젠(福建)성간에 직접 교류를 허용하는 것이다. 민진당은 대륙의 의도를 알면서도 대륙 투자 등 경협을 피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중국은 야당인 국민당의 집권을 기대한다. 우선 국민당은 당헌에 ‘일국론’(一國論) 정책을 표방한다. 국민당은 장제스(蔣介石)가 마오쩌둥(毛澤東)과의 내전에 패해 1945년 대만으로 쫓겨나면서 표방한 본토 수복 노선을 아직 포기 않고 있다. 국민당은 대륙을 ‘통일 대상’으로 보며 ‘대만 독립’노선이 강하지 않다. 이는 중국이 민진당 대신 국민당에 호감을 갖는 결정적 이유다. 다 같은 ‘一國論’이지만 중국은 대륙 중심, 국민당은 대만 중심 통일이란 점이 다르다. 실제 국민당은 총통선거 패배 뒤인 2000년 10월 국민당과 ‘제3차 국공합작’을 추진했다. 국민당의 양안 교류를 통한 긴장완화로 국내 입지확장이 목표다. 중국 당국은 국민당을 통해 대만 독립의 저지가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국민당은 대표를 중국에 보내 고위급 학술포럼, 상하이-타이베이 자매도시 결연과 대3통 추진 등 중국 공산당과의 ‘전략적 제휴’를 추진했다.

   
▲ 롄잔(連戰) 국민당 후보가 2000년에 이어 또다시 총통선거에서 패배하자 지지자들이 재검표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국은 본토 수복의 꿈을 안고 ‘一國論’노선을 접지않고 있는 국민당의 집권을 오히려 원한다.
또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에서 ‘한 민족, 한 문화’임을 강조한다. 중화민국 건국의 아버지인 쑨원(孫文)을 공동으로 떠받드는 것에서 동일한 뿌리를 찾는다. 중국이 대만에 집착하는 것은 정치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대만은 동남아와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해양의 길목이다. 또한 대만 경제력을 흡수할 경우 미국과 당당히 겨룰 힘을 갖추게 된다. 문제는 민진당의 상승세다. 민진당이 두 차례 총통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대만내 국민들의 기류를 반영한다. 민진당은 농촌지역인 남부, 국민당은 도시지역인 북부로 지역분할이 돼 있다. 민진당은 젊은층과 서민층, 국민당은 50대이상의 노년층이 지지세력이다. 민진당은 본성인(本省人·대만 본토 출신), 국민당은 외성인(外省人·대륙출신)을 권력기반으로 삼는다. 민진당은 ‘친일파’가 많고 국민당은 ‘친미파’가 많다.

롄잔의 국민당과 연합한 친민당 주석인 쑹추위(宋楚瑜)는 능숙한 영어를 구사한다. 쑹의 가족들은 모두 미국 공민권을 갖고 있다. 천수이볜 총통의 “롄잔과 쑹추위는 대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공격이 먹혀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롄과 쑹은 이번 선거에서 이를 반박하듯 선거운동 도중‘대만땅’에 입맞추는‘애국 쇼’를 연출했다. 그러나 본성인들은 15%인 외성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반감이 있다. 본성인들은“외성인들은 중국대륙으로 돌아가라”라고 구호를 외칠 정도다. 국민당은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온 뒤 일당 독재와 계엄령, 부패와 축재로 민심을 잃었다. 이는 국민당이 2000년 51년만에 권력을 잃은 뒤 민진당에 잇따라 무릎을 꿇은 배경으로 작용했다. 천 총통은 선거 뒤“대만 주체의식의 승리”라고 평가할 정도가 됐다.

미국 대만개입 중국 긴장…고가 무기판매 등 중국 견제

   
▲ 중국은 대만이 독립의 길을 걸을 경우 대만을 무력공격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실제로 중국은 리덩후이(李登輝)의 첫 총통 직선전인 1995~1996년 대만해협에 미사일로 대만독립을 경고하고 나섰다. 대만은 중국의 무력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무기 구입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대만개입 또한 중국을 긴장시킨다. 미국은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면서 대만관계법을 근거로 대만에 고가의 무기판매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향한 ‘한계선’을 넘을 경우 무력공격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선거 뒤인 3월22일 푸젠(福建), 광둥(廣東), 저장(浙江) 성 등 대만과 가까운 해안지역 성 정부에 대해 비상 근무령을 내렸다. 이는 대만 위기사태가 악화될 경우 대만에 대해 군사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중국은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의 첫 총통 직선직전 1995~1996년 대만 경고의 의미로 대만 해협에 미사일 위협을 가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항공모함을 파견해 일촉즉발의 위기가 일었다. 중국과 대만은 한동안 긴장관계가 불가피하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100만무효표연맹 등 새 정치세력이 힘을 얻었다. 이는 양안 관계가 더욱 복잡한 과정을 겪을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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