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지면과 조직운영에 대한 내부비판에 이어 이번에는 정치부 차장급 중견기자가 중요한 시기마다 '큰 사고'가 터져 후배들이 가슴앓이를 해왔다며 '안티'를 제압하려는 발상은 실효성이 없고, 공정한 지면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에서 차장급 중견기자가 내부 문제점을 노보를 통해 지적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조선일보 정치부 김창균 기자(차장대우)는 지난 23일 발행된 '조선노보' <조선일보, 그리고 '안티'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라는 글에서 "21일 저녁 노보 편집위원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선일보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하는 심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며 "'조선일보 문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돼온 역사적 산물"이라고 밝혔다.

김 기자는 "생각해보면 지금 후배들이 느끼는 고민이랄까 위기감 같은 것들은 현재 부장급 이상 선배들이 15년 전 가졌던 문제의식, 그래서 조선일보에서 노조를 결심을 하게된 배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며 "그 때 벌써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해결하려는 본격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으니 문제가 악화된 형태로 재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 조선일보 김창균 차장이 노보에 <조선일보, 그리고 안티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라는 글을 게재했다.
"'안티' 제압발상 실효성 없어"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안티조선 등에 대해 김 기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공격해주면 내부에서 반성하고, 문제제기를 하는데 도움이라도 되겠는데, '왜곡, 편파'라고 하면서 드는 사례며 논리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왜곡, 편파'니 우선 감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라면서 "좀 더 공정한 지면을 만들어 안티가 서식할 수 있는 자양분을 없애고,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점점 늘어나도록 하는 정공법 외에 다른 길은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에 대한 안티조선측의 공격이 먹히는 이유에 대해 김 기자는 "조선일보가 보수라는 가치 자체가 아닌, 보수 정파와 이해를 맞추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라며 "우리는 '편가르기' 풍토를 개탄하지만, 정작 밖에서는 '너희야 말로 내편, 네편을 정해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식의 기사 판단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식의 비판이 돌아온다"고 분석했다.

거기에 대고 '다른 매체는 우리보다 훨씬 더하다' 식의 반론을 펴는 것은 언론계 전체를 향한 침뱉기가 될 수 있을지언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 시기마다 '큰 사고' 터져 후배들 가슴앓이"

김 기자는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라면서 "'운동장에 뛰어들었다는 오해를 받지 말자' '감정적인 지면을 만들지 말자'고 얼마나 많이 다짐해왔느냐. 그럼에도 중요한 시기마다 큰 사고가 한 두 건씩 터지고, 그 때문에 후배들이 '가슴앓이'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조선일보 속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관성이 남아있고, 그런 관성으로부터 지면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그 책임은 국장, 부장, 데스크들만의 몫일 수는 없다. 매일 매일 지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뭔가 지나치다 싶으면 '이건 아닌데요'라고 제동을 거는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배도 선배들에게 제동걸려는 노력해야"

김 기자는 한 사례로 이번 총선 기간 중 가판 1면과 3면에 나간 기사에 대해 한 후배가 지나치다고 문제제기를 한 뒤 사회부, 정치부, 편집부 10여 명의 후배들의 견해를 들어 시내판에선 기사가 2면으로 모아진 경우를 들었다.

사내 언론가 막혀있다는 내부비판에 대해 김 기자는 "앞서 막힌 길을 뚫어보려고 노력하는 후배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며 "15년 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 회사를 긴장상태로 몰아 넣었던 초대 집행부들은 지금 논설위원들이다. 적어도 귀를 막고 있는 선배들은 아니다. 왜 시도도 안해보고 말문을 닫고 있느냐"고 꼬집었다.

다음은 김 기자가 노보에 기고한 글 전문.

조선일보, 그리고 '안티'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노보 글 쓰기가 신문보다 몇 배는 힘든 것 같습니다. 애매한 사내 위치, 미묘한 시점 등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 둘이 아니고, 그래서 몇 번이나 노트북을 열었다 닫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서로 할 말을 미루게 되는 분위기가 진짜 문제다 싶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21일 저녁 노보 편집위원 후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선일보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답답해 하는 심정들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후배들의 고민에 대해, 그런 고민을 조금 더 오래 하면서 정리해 온 생각들을 나눠볼까 합니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조선일보 문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돼 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오늘, 내일 누구와 담판을 짓거나, 혹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닙니다. 어쩌면 10년을 기다린다는 인내심으로, 그것도 이 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는 일관된 자세를 유지해야 겨우 실마리가 잡힐 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는 20년 이상 정상의 위치를 지켜왔고, 거기서 비롯된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왔습니다. 그 영광의 그림자 속에서 오늘의 문제들이 싹트고 자라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 후배들이 느끼는 고민이랄까 위기감 같은 것들은 현재 부장급 이상 선배들이 15년 전 가졌던 문제 의식, 그래서 조선일보에서 노조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배경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때 벌써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해결하려는 본격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렀으니 문제가 악화된 형태로 재현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신문에 대한 최종 평가는 독자가 하는 것이며, 부수 1위가 우리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것 아니냐'고 자위하면서 문제들을 회피해 온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안티의 공격들에 어떻게 대응할 지가 당장의 고민입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공격해 주면 내부에서 반성하고, 문제제기를 하는데 도움이라도 되겠는데, ‘왜곡, 편파'라고 하면서 드는 사례며 논리가 그보다 훨씬 심각한 ‘왜곡, 편파'니 우선 감정부터 앞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도발을 통해 조선일보를 흥분시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도록 유도하는 게 그들의 전략일 것입니다.

안티를 설득하겠다든지, 반대로 지면의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발상은 모두 실효성이 없는 접근법입니다. 우리가 어떤 지면을 만들더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공격할 것입니다. 좀더 공정한 지면을 만들어 안티가 서식할 수 있는 자양분을 없애고,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점점 늘어나도록 하는 정공법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안티들이 몇 마디 한다고 발끈해서 대응하고, 그래서 조선일보 전통 독자층으로부터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오면 뿌듯해 하는 것은 바둑으로 치면 속수(俗手)중의 속수입니다.

조선일보가 공격을 받고, 그것이 먹혀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조선일보가 보수라는 가치 자체가 아닌, 보수 정파와 이해를 맞추고 있다는 인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편가르기' 풍토를 개탄하지만, 정작 밖에서는 "너희야 말로 ‘내 편, 네 편'을 정해놓고, 유·불리를 따지는 식의 기사 판단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이 돌아옵니다. 거기에 대고 "다른 매체는 우리보다 훨씬 더하다”식의 반론을 펴는 것은 언론계 전체를 향한 침뱉기가 될 수 있을 지언정,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아닙니다.

이런 식의 문제제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운동장에 뛰어 들었다는 오해를 받지 말자', ‘감정적인 지면을 만들지 말자'고 얼마나 많이 다짐해 왔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시기마다 큰 사고가 한 두 건씩 터지고, 그 때문에 후배들이 ‘가슴앓이'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조선일보 속엔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관성이 남아있고, 그런 관성으로부터 지면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책임은 국장, 부장, 데스크들만의 몫일 수는 없습니다. 매일 매일 지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뭔가 지나치다 싶으면 "이건 아닌데요”라고 제동을 거는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합니다.

이번 총선 기간중 어느 날, 가판 1, 3면에 나간 기사에 대해 한 후배가 다가와 "이건 좀 지나칩니다”라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판이 나올 때까지 사회부, 정치부, 편집부 10여명의 후배들에게 견해를 물었습니다. 한결같이 "지나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의견은 부장과 국장에 전달됐고, 꼭 그것 때문 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내판에선 2면으로 통폐합됐습니다. 전 그날 "대다수 후배들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 말을 않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내 언로가 막혀있다는 노보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만, 그에 앞서 막힌 길을 뚫어보려고 노력하는 후배들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15년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서 회사를 긴장상태로 몰아 넣었던 초대 집행부들은 지금 논설위원입니다. 그때 아슬아슬한 수위의 노보 기사를 쓰고 만평을 그렸던 장본인들이 정치부장, 사회부장입니다. 적어도 귀를 막고 있는 선배들은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부장들이 어려우면 저 같은 중간다리도 있습니다. 왜 시도도 안 해보고 말문을 닫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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