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창간 84주년을 맞은 5일자 사설에서 정치권력이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동원해 조선일보에 대해 총공격을 퍼붓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날 <포위된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오늘(5일) 한국의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중대한 고비에 선 상황속에서 창간 84주년을 맞는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5일자 특집 사설
조선일보는 "운명 공동체라 할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공격 당하고 위협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우선 "오늘의 위기는 양자가 함께 딛고 서 있는 공중이 정치권력의 상징 조작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대중과 군중으로 급속히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오늘의 언론상황에 대해 "정치권력이 독립언론에 대해 총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라며 △우선은 독립언론의 취재를 기피하고 차단함으로써 언론의 본질적 기능 수행을 봉쇄하고 △기사와 논평에 대해 무차별한 법정 소송 △코드 맞는 신문, 공영방송을 표방한 정권방송, 정부의 직·간접 보조를 받으면서 시민단체로 위장한 외곽단체를 동원해 독립언론을 포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공영방송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겨냥해 내보내고 있는 공격 프로그램, 두 신문사 사옥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확성기 데모와 플래카드 시위, 야비하고 저급한 언어를 버무린 인터넷 군중들의 돌팔매,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신문구독 거부 캠페인은 이들의 집요함을 말해주고 있다"며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이같은 독립언론의 선봉장들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공중을 군중심리와 대중심리에 의해 조종되는 대중과 군중으로 분해하려는 우민화 폭민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며 "이 결과 정치권력은 독립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코드 언론은 권력만을 추종함으로써 현대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상의 언론 부재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같은 위기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회는 거악의 온실이라는 오명 속에 휘말려 자기 방어의 의욕을 놓아버린 채 끝없이 표류하면서 침몰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그동안 기자협회보 등 외부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나, 최근 기자들 내부의 분위기와는 좀 배치되는 것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사설이 나오고서야 알았다"며 "전적으로 논설위원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체 간섭이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언론계 안팎에서는 현재 조선일보가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의 한 간부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조선일보가 이념적으로나 신문의 생존을 위해서나 개혁 세력과 최대한 각을 세움으로써 독점적인 위치를 확보하려는 것 같다"며 "중앙일보마저 조중동 카르텔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조선은 색채를 더 강화해서 그들의 공간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한겨레 손석춘 논설위원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이라크 파병만 예로 들더라도 한겨레는 반대해왔고 조선일보는 찬성해왔다"며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맞았던 신문은 오히려 조선일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손 위원은 이어 "(조선일보 스스로 독립언론이라 칭한 데 대해) 조선일보 스스로가 '권력'이면서 자신들이 권력을 비판해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사설 전문.

조선일보는 오늘 한국의 독립(獨立)언론과 대의(代議)민주주의가 중대한 고비에 선 상황 속에서 창간 84주년을 맞는다.

권력에 대한 감시를 사명으로 하는 독립언론과 절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사명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는 근대 시민사회가 탄생시킨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공중(公衆·public)을 그 토대로 해서 함께 출현한 기관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표현기관인 독립언론과 그들의 대표기관인 대의민주주의가 동시에 도전 받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운명 공동체라 할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왜, 누구에 의해, 어떻게 공격 받고 위협 당하고 있는가.

이것을 꿰뚫어 보는 투철한 인식이야말로 독립언론을 지켜내고 대의민주주의의를 방어해야할 이 시대의 선결(先決)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오늘의 위기는 양자가 함께 딛고 서있는 공중이 정치권력의 상징 조작에 따라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대중(大衆·mass)과 군중(群衆·crowd)으로 급속히 교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언론 상황을 둘러보면 위기의 인과(因果)관계가 한눈에 드러난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핵심 사명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다. 언론은 이를 통해 여론 형성에 참여하고, 이같이 형성된 여론이 권력의 자기 수정(修正)을 촉구하는 과정이 언론과 권력의 선(善)순환 과정이다. 권력과의 적정 거리를 확보한 독립언론의 존재 없이는 이런 순환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 이후 이 나라의 상황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치권력이 독립언론에 대해 총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공격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다. 우선은 독립언론의 취재를 기피하고 차단함으로써 언론의 본질적 기능 수행을 봉쇄하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대통령 취임 이래 어떤 언론을 회견 상대로 골랐는지를 보면, 권력이 기피하는 언론과 총애하는 언론의 지도를 당장 그려낼 수가 있다. 비판적 독립 언론의 존재와 취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권력의 독립언론을 상대로 한 다음 공격 수단은 기사와 논평에 대해 무차별한 법적 소송을 제기하고, 코드 맞는 신문, 공영(公營)을 표방한 정권방송, 정부의 직·간접 보조를 받으면서 시민단체로 위장한 외곽단체를 동원해 독립언론을 포위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겨냥해 내보내고 있는 공격 프로그램, 두 신문사 사옥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확성기 데모와 플래카드 시위, 야비하고 저급한 언어를 버무린 인터넷 군중(群衆)들의 돌팔매, 전국을 순회하고 있는 신문 구독 거부 캠페인은 이들의 집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같은 독립언론 공격의 선봉장들은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공중을 군중심리와 대중심리에 의해 조종되는 대중과 군중으로 분해하려는 우민화(愚民化) 폭민화(暴民化)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 결과 정치권력은 독립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코드 언론은 권력만을 추종함으로써 현대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실상의 언론 부재(不在)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오늘 독립언론이 직면한 위기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과정과 배경에서다. 정치권력이 직접 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헌법과 국회와 법원을 건너뛰어 국민과 직거래하고자 하는 갖가지 움직임과 헌법기관의 판단과 결정을 예사로 무시하는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이 나라의 위기의 실체를 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민주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거악(巨惡)의 온실이라는 오명 속에 휘말려 자기 방어의 의욕을 놓아버린채 끝없이 표류하면서 침몰해 가고있다. 그 결과 지난 1년의 국정 운영은 경제·사회·교육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안보 정책까지 포퓰리즘에 오염돼 왔다.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은 무대 위의 소수 기획자(企劃者)와 무대 아래의 군중이 결합한 포퓰리즘의 결말이 무엇인가를 다시 확인 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60년 전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난 이후 좌ㆍ우의 유혈투쟁과 전쟁과 독재와 혁명과 민주화라는 우여곡절을 통과해 세계의 최빈국(最貧國)에서 오늘에 이른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다. 이 숨가뿐 역사, 땀에 적은 역사는 결코 ‘불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좌절된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권력자의 자의적(恣意的) 역사 해석으로 훼손될 수 없고, 훼손되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목의 ‘역사 뒤집기’가 의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 정통성에 대한 역사 투쟁과 독립언론과 대의민주주의를 향한 정치투쟁을 결단코 좌시하지도, 결코 이에 굴복하지도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가 국정(國政)의 왜곡, 국익(國益)의 손상, 국위(國威)의 추락으로 혼란 속에 낭비했던 지난 1년은 다음 반세기(半世紀)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운명적 시간의 귀한 한 토막이다. 오는 1년, 또 그 다음 1년을 이렇게 헛되이 흘려 보낸다면, 그로해서 동북아의 낙오자가 돼버린 후손들이 결코 오늘의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비바람을 맞으며 84년의 굴곡과 신산(辛酸), 영광과 성취를 상처와 훈장으로 온몸에 새겨온 조선일보는 이제 다시 작고도 큰 독립언론의 사명을 재확인하려 한다.

그것은 할말을 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독립 언론의 외길을 걸어가겠다는 다짐이다. 국민과 독자들의 공감과 성원만이 독립언론의 유일한 기댈 곳임을 절절히 느껴온 우리는 국민과 독자의 공감과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길도 오직 이 길밖에 없다고 믿는다.

조현호·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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