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안이 결국 한나라당의 집요한 방해로 27일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한나라당의 이 같은 행태는 결국 친일옹호세력이라는 실체를 자인한 것이라는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국회 법사위는 26일 밤늦게까지 토론을 벌여 결국 우여곡절 끝에 원안에서 대폭 수정된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무수한 논란을 겪어온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은 본회의를 거쳐 무난히 최종 통과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신문들은 27일자에서 일제히 특별법 통과를 낙관하며 그동안의 경과, 법 통과 이후 전망, 법안의 의미 등을 상세히 다뤘다.

그러나 27일 오전 한나라당은 본회의 상정 법안을 최종 확정하는 교섭단체간 논의에서 다시 제동을 걸었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들은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하던 관례를 깨고 한나라당은 극히 이례적으로 친일진상규명특별법과 6.25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특별법 2개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보류시켰다. 국회 의사국은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두가지 특별법안의 본회의 상정이 보류됐다고 밝혔다.

26일 법사위 논의에서도 논란은 여전했다.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장으로 특별법 통과를 막아온 김용균 의원은 이날도 법안통과를 주장해온 독립유공자 단체회원에게 "괴한" "독립운동을 당신이 했나" 등의 막말을 써가며 '온몸을 던져' 법안통과를 적극 제지했다. 김 의원은 또 "특별법 추진 세력에는 배후가 있다"면서 "최용규 ,이종걸, 김희선 의원 등은 배후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우선 사과하라"는 주장을 펴 이들 의원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민주당 조재환 의원은 또 특별법 조항 가운데 하나가 한나라당의 박근혜 의원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라고 구체적인 친일행위를 적시한 특별법 2조10항에 대해 "이는 박정희 전대통령을 친일파로 몰아 결국 한나라당 대표로 부상하고 있는 박근혜 의원을 공격하기 위한 정략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며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희선 의원은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에는 여야가 같이 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흥분했고 이종걸 의원도 서류뭉치를 책상에 던지며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라며 한동안 분을 삭이지 못했다. 조 의원은 계속된 김희선 의원의 해명요구에 "다 아는 얘기 아니냐, 서로 정직하자"며 오히려 김 의원에게  비아냥대는 태도를 보였다.

친일청산에 오랫동안 노력해온 민족문제연구소측은 한나라당에 대해 "친일옹호세력"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갖은 어려움 끝에 어렵사리 태어난 특별법을 누더기를 만든 것도 모자라서 한나라당은 이젠 노골적으로 특별법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한나라당은 스스로 친일옹호세력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천명한 셈"이라고 밝혔다.

27일 본회의에는 상정이 무산됐으나 오는 3월2일 이번 임시국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김희선 의원실 관계자는 "3월 2일 열릴 본회의에 다시 상정을 추진할 예정이며 만약 한나라당이 계속 법안 상정을 보류시킨다면 의안변경신청을 내서 어떻게든 상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 20인 이상의 서명을 받아 의안변경 신청을 하게 되면 본회의 상정이 보류된 법안에 대해 교섭단체간 협의와 무관하게 본회의에 해당 법안을 상정시킬 수 있다.

김 의원을 비롯한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소속 회원들은 또 27일 본회의가 끝난 뒤 박관용 국회의장을 면담하고 조속한 법안통과에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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