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중국의 란싱이 쌍용차와 임의각서(MOU)를 체결하고 인수를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는 다음날 베이징에서 1년전 '쏘나타'에 이은 '엘란트라'(아반떼 XD) 신차 발표회를 개최하고 2008년까지 60만대 현지생산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연말에 터져나온 국내 자동차업계의 두 소식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곱씹게 만들었다. 우선 란싱의 쌍용차 인수는 '공격적 중국'을 연상시켰다. 이전 중국의 이미지는 '세계의 공장'이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신발, 가방, 옷과 섬유 등 중저가품을 대량 생산해 해외에 싸구려로 덤핑하는 도매상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란싱의 쌍용차 인수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파괴시킨 것이다.

   
▲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열린 자동차 전람회에서 중국 모델이 현대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의 합작사인 현대베이징기차가 2002년 12월 베이징 근교 순이 시 공장에서 첫 생산한 쏘나타 1호차가 선을 보이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중국의 거대 자본이 몰려온다' '국내 첨단 기업사냥'이란 제목의 경고성 기사를 내보냈다. 언론들은 중국의 '사냥감'으로 자동차와 액정표시장치(LCD), 반도체, 핸드폰, 이동통신 핵심부품 등을 들었다. 또 첨단 기술의 유출과 전략 산업의 이탈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무서운 중국의 급성장을 볼때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그간 국유기업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왔다. 국유기업들은 '샤강'(정리 실업)을 통해 '공룡 조직'인 국유기업의 불필요한 비게살을 제거하고 체중 감량을 단행해왔다. 가혹한 구조조정속에서 살아남은 국유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란싱은 그러한 과정을 겪은 기업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중국내 전략 산업의 인수와 합병은 정부의 통제와 지원아래 진행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기간 산업이다.  중국은 상하이, 창춘, 광저우 등 지역권역별로 한개씩의 자동차 생산업체만을 허용하고 있다. 란싱의 한국 진출은 중국 당국의 전략적인 '한국자동차 기술 유치' 계획아래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쌍용차가 성장 잠재력이 큰 레저용 차량(RV)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파워 1위인 점을 높이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란싱은 "쌍용차에 10억달러를 투자할 것"이란 청사진을 밝혔다. 중국 정부는 국영 은행을 통한 자금 지원의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 인수에 란싱이 얼굴 마담이지만 정부와 은행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있다. 이후 란싱과 같은 방식의 '한국 기업 사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 사냥의 목적은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 자동차의 엘란트라 생산 발표는 '블랙홀 중국'을 연상시켰다. 현재 자동차는 꼭 1년전 베이징 근교 순이 시에 쏘나타 생산공장을 만들었다. 현대는 쏘나타의 중국 진출을 "성공작"으로 자평하고 있다. 현대의 준 중형차인 엘란트라 중국 생산 개시는 이를 증명한다. 

   
▲ 베이징 중관춘에 위치한 삼성전자 상설매장에 중국 소비자들이 붐비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자본과 설비의 해외 이동을 의미한다. 이는 국내 산업의 공동화로 이어진다.  실제 삼성, LG와 현대 등 국내 대기업이 중국 투자 확대와 함께 중국으로 본부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의 흡인력은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한국 안산 공단과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 공단의 투자환경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칭다오의 생산직 노동자 월임금은 7만~11만2천원, 우리나라 안산 공단은 100만원선으로 10배에 달한다. 칭다오의 평당 토지 취득가는 4만8510원인데 안산 공단은 40배인 평당 200만원이다. 법인세는 한국이 27%이지만 중국은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소득세로 전환해 절반 가량인 15%를 징수한다. 공업용수 가격은 안산이 t당 260원인데 비해 칭다오는 182원으로 낮다. 게다가 안산 공단은 인력난으로 외국인 노동자 4만5천명을 고용하고 있는데 반해 칭다오는 16만명의 취업가능 인력이 상존해있다.

기업의 자본은 '벌이 꽃을 찾듯' 이윤을 쫓아 간다. 한국의 투자환경이 중국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면 한국 자본과 기업들의 '엑소더스'는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국내처럼 노동자 시위로 조업중단의 우려도 없는 '사용자의 천국' 중국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가입과 동시에 내수 시장을 개방했다. 중국에는 '공장'(factory)과 '시장'(market)이 동시에 있는 셈이다. 13억명의 인구 대국처럼 시장 규모와 잠재력도 무궁하다.  국내의 3D업종 기피는 기업의 자본이탈을 가속화한다. 이는 고학력 실업자의 양산이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최근 삼성 그룹은 중국의 명문대 생들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를 개최했다. 국내 기업들이 '현지화'를 중시해 중국 현지에서 한족 인력을 직접 뽑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확대는 국내 실업자 양산의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다.

   
▲ 엘지가 지난 9월 베이징 호텔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외부에서 작동가능한 최첨단 홈쇼핑 상품 발표회를 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약간 친해지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서울과 베이징중 어느쪽이 발전했나?"하는 것이다. "아직까진 서울"이라는 답변에 대부분은 실망을 금치못한다. 이는 '언젠가는 한국을 제칠 것'이란 중국인들의 또다른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것은 부단히 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또한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이 국내에  재투자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탈된 한국 자본이 국내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이 중국 투자로 오랜 '산업 공동화'에 시달린 끝에 최근에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국내의 부실 기업들이 살길을 찾아 외국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과연 '파는 것만이 능사'인지 냉정한 판단과 자성이 필요한 때다.  


   
하성봉 기자는 1987년 10월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체육부, 사회부 법조 기자를 지냈으며, 국제부 기자로  베이징 특파원을 거친 뒤 현재 국제부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1년 9월말~10월초 아프간 전쟁시 북부동맹 전쟁지역을 취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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