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수씨가 29일 오후 2시에 기자회견을 한 후 ‘야인시대’의 이환경 작가와 장형일PD, SBS 프로덕션을 상대로 2억여원의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를 제기할 계획이다. 지난 달 18일 방영된 드라마의 내용이 고인이 된 아버지(최무룡)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문제가 된 방영분에는 당시 배우였던 최무룡 씨가 영화계의 거물이자 정치깡패였던 임화수에게 구타당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최민수 씨는 26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정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장면으로 진실과 배치되는 허구”라며 “SBS측에 몇 차례 사과문 게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적 대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측근에 따르면 최민수씨는 녹화테이프로 문제의 장면을 확인한 뒤 매우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환경 작가는 “최민수씨의 주장은 억지”라는 입장이다. “문제가 된 내용은 구타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사실이고 유지광의 자서전 ‘대명’에도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 그는 “아버지 얘기라 이해는 하지만 있었던 것을 없었다고 할 순 없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정확한 거니까 그때 밝히자”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미 소송에 대비해 증인과 관련 자료를 확보해 둔 상태다.

 SBS측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최민수씨는 9월 초에 새로 선보인 SBS주말드라마 ‘태양의 남쪽’의 주연이고 이환경 작가는 시청률 높은 ‘야인시대’의 작가이기 때문에 섣불리 한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 두 사람의 시비에 곤혹스럽지만 일단 사태추이를 지켜본다는 생각이다.

 이환경 작가와 SBS는 지난 달 1일에도 임화수의 유족들에게 같은 이유로 고소를 당했지만 승소한 바 있다.

최민수씨 일문일답

최민수씨가 오늘(29일)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SBS 드라마 '야인시대' 방송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회견에는 이종무 변호사와 매니지먼트를 총괄하는 원석호 실장이 함께 자리했다. 최민수는 간간히 변호사와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했지만 표현의 자유에 관한 질문에서는 잠시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오늘 기자회견에는 40여 명의 취재진들이 참석했다.

-이환경 작가와 장형일PD, SBS프로덕션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관한 소송을 냈는데.
"SBS는 공익 차원을 넘어 권한을 남용한 것이다. '모래시계'로 SBS와 인연을 맺었지만 이 사건으로 신의가 상했다. 이환경 작가는 작가로서 양심과 자질을 상실했다. 그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상상력은 좋은 것 같다. 이환경 작가도 가정이 있을 테니 심한  말은 안 하겠다. 한편으론 불쌍하다."

-언제 방영 사실을 알게 되었나.
"지난 8월 18일 방영된 내용을 매니저가 알려줬다. 당시는 SBS주말드라마 '태양의 남쪽' 촬영 중이어서 그냥 넘겼었는데, 며칠 뒤 녹화테이프를 확인해보고 소송을 결심하게 됐다. "

-방송계 일부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얘기도 있는데.
"이번 소송은 대중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방송을 제작할 때 가져야 할 윤리도덕적 측면이란 게 있다. 이건 범법적 행위다. 문화예술인 집안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었는데 유린당한 기분이다."

-애초 사과로 끝날 수도 있는 문제였다고 들었다.
"SBS측에 유감표명을 해서 그 쪽으로부터 사과문을 내겠다는 약속까지 받았다. 이미 사장의 오더까지 떨어진 사항이었다. 그런데 3주가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나중에 이환경 작가가 집필을 거부하겠다고 했다는 소릴 들었다."

-이환경 작가 측은 방영된 내용이 사실이고 증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납득할만한 증거가 있다면 고소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증거자료를 넘겨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말을 바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니 나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확인해 봤더니 전혀 사실 무근이었다."

-이환경 작가와 SBS 측이 사과한다면 고소를 취하하겠나.
"대화의 시간과 공간이 있었는데도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SBS는 조직이고 나는 혼자지만 내가 주식회사고 회장이고 수위다. 명예는 굉장히 중요하다. 합의 부분의 여지는 이제 없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차리게 모두 (감방에) 집어넣고 싶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할 말이 있다면.
"오늘 새벽에 다 얘기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언론에 밝혀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판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야인시대'는 시청률을 의식한 악의적인 묘사를 일삼았다. 이건 드라마의 허용범위를 넘어섰다. 불법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송은) 반드시 승소한다. 아니면 이 나라를 내가 떠날 거다. 여기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소송에 이겨서 합의금을 타게 되면 대중문화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다."

-결과에 상관없이 '태양의 남쪽'에는 계속 출연할 건가.
"계속 출연할거다. 이 점이 이환경 작가와 내가 다른 부분이다."

김상만 기자 hermes@mediatoday.co.kr

이환경 작가와의 일문일답

이환경 작가와의 일문일답은 최민수 씨측이 기자회견을 갖기 전인 28일 오후에 이뤄졌다.

-최민수 씨 측이 기자회견을 갖는다. 알고 있었나?
"몰랐다. "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는데.
"(최민수씨가)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수용할 수는 없지 않나.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는데 당시 현장에 있었던 증인도 있고 유지광 자서전 ‘대명’에도 실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풀이를 하려면 해라. 하지만 법이 있으니까, 법은 정확한 거니까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본다. "

-증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장형일PD가 신상옥 씨가 있었던 신필름 출신이다. 그가 잘 아는 인사가 김희갑씨가 구타당한 것처럼 최무룡 씨도 같이 끌려와서 맞았다고 확인해 준 것이다. "

-최민수 씨측에서 자료를 요구했지만 다시 자료가 없다고 번복했다는데."그건 잘 모르는 부분이다. SBS측에서 중재한다고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일이 생기자 장형일PD가 먼저 증인도 다 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

-최민수씨측은 당초 사과 정도만으로 끝내려고 했었다는데 들은 바가 있나.
"전해들은 얘기로는 최민수씨가 사과방송을 해주지 않으면 ‘태양의 남쪽’ 촬영을 거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거의 방영이 불가할 정도까지 갔었다고 하더라. 공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SBS측에서 최민수씨가 사과방송을 요구한다고 하길래 나도 그러면 ‘야인시대’ 안 쓰겠다고 했다. 아버지 얘기라 자식으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있었던 것을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김희갑씨 구타사건에 관해 얘기하면서 굳이 최무룡 씨까지 다뤘어야 했나.
"최무룡씨는 당시 유명한 배우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공인이었던 만큼 극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임화수씨의 유족에게도 같은 이유로 고소를 당했었는데 심경이 어떤가.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유족들에게 심적으로는 미안하다. 하지만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쓸 것 안 쓰고 움츠리면 그게 어떻게 작가인가. 잡가지. 그런데 자꾸 이런 일에 휘말리다보니 힘이 든다. 앞으로는 이런 문제가 될 소지의 드라마는 쓰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 MBC에서 현대그룹을 다룬 드라마 ‘가신들’(가제)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도 현대에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걱정이다.(웃음) "

-이번 소송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우리도 변호사가 있지 않은가. 이미 제출할 자료를 확보해 두었다. 법정에서 이길 자신 있다. "

김상만 기자 herme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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